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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치어리더’ 구교환

현실을 위로하고 위안을 느끼게 하는 배우·감독·경구 제조기·치어리더 구교환
등록 2021-10-25 11:10 수정 2021-10-25 23:42
씨네21 오계옥 기자

씨네21 오계옥 기자

“고통받고 걱정하는 시간도 모두 작업하는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주연과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 <메기>를 개봉한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구교환이 말했다.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뤘다가 몰아치듯 하는 나를 늘 비난해왔는데, 구교환의 음성으로 무심하게 툭 던져진 저 답변이 그동안 품고 살았던 죄책감에 얼마나 큰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독립영화계 아이돌’로 <꿈의 제인> <메기> 등에서 자신만의 움직임과 목소리, 연기로 팬덤을 구축해온 구교환은 2020년부터 영화 <반도> <모가디슈>, 드라마 <디피>(D.P.) 등을 거치며 대중성의 기반을 넓혀왔다.

구교환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멋지다. 배우로서도 자신만의 리듬감으로 매번 구교환이지만 구교환이 아닌 서 대위(영화 <반도>), 태준기 참사관(영화 <모가디슈>), 한호열(드라마 <디피>)이 되지만 감독, 각본가 등 창작자로서 그가 만들어낸 작품 세계는 현실과 깊이 맞닿아 그 현실을 보여준다. 그 현실이 위로를 준다. 관객으로서 내가 ‘위로받고 위안을 느꼈다’는 표현이 맞겠다.

2015년작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그의 오랜 연인이자 ‘좋아요’ 1만 개를 주고 싶은 감독 이옥섭과 공동 연출하고 공동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영화를 하고 싶지만, 중장비 기사 자격증을 따서 굴착기를 운전하는 구교환(구교환 분)과 가죽공예를 하고 싶어 이탈리아로 유학 갔다가 포기하고 돌아와서 교환의 조언으로 역시 중장비 기사 자격증을 따기로 한 조성환(조성환 분). 늘 흔들리는 꿈을 붙들고 살아온 두 청년이 ‘흔들리던’ 육교가 사라져버린 노량진에서 육교를 기억하는 장면을 찍어줘서 고마웠다.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음성도 그랬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신 영화 <방가? 방가!>의 육상효 감독님이 하신 말이 기억나는데요. ‘꿈이 바뀐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운 건 꿈이 없어진 것이고 더 부끄러운 건 꿈을 핑계로 삶을 망가트리는 것이다.’” 이런 경구들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꿈을 바꾸고, 꿈이 뭔지 몰라 흔들리며 살아왔던 나 자신을 다독였다. ‘꿈을 취미로 하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영화 작업을 하게 됐다며 연락해온 교환의 목소리를 듣고 멈춰버린 성환의 굴착기는 어찌나 쓸쓸하던지.

사람들은 영화 <반도>와 드라마 <디피>를 보고 구교환에게 빠져 구교환과 이옥섭 감독이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2×9HD]구교환×이옥섭’(이엑구)을 방문해 그의 옛 작품들을 섭렵하며 배우이자 감독 구교환을 발견한다. 유머러스함, 리듬감, 목소리 등 구교환과 ‘덕통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는 많지만, 나는 그가 여러 방식으로 전하는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게 맞다. 밀어붙여라”(영화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스페셜 피처 부분)라는 메시지로 사고가 난 것 같다. 오늘도 세상살이에 연료가 될 응원 한 줌을 ‘이엑구’ 채널에서 찾는다.

덧. 지난 글에서 <갯마을 차차차> 주연을 맡은 배우 김선호에 대해 썼습니다. 보이는 이미지에 기대어 누군가를 ‘찬양’하는 글을 쓰는 일의 위험함을 느꼈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해 확정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배우 김선호는 사과했습니다. 피해자와 독자께 마음 깊이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리담 칼럼니스트 dorisleew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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