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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라의 밀라노레미파솔

짝다리도 모르던 고문관, ‘강철부대’ 되다

헨델 오페라 공연 중 ‘진짜 군인’ 소리를 듣고 ‘짝다리 짚던’ 시절을 회고하다

제1383호
등록 : 2021-10-13 22:46 수정 : 2021-10-1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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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오페라 <이집트의 줄리오 체사레>의 한 장면. 스칼라극장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19년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헨델의 오페라 <이집트의 줄리오 체사레>(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준비할 때의 이야기다. 클레오파트라 느낌의 의상과 분장을 살포시 기대했으나, 수백 년 지난 이야기도 현대적으로 표현해내는 연출가 로버트 카슨 덕분에 우리 배우들은 현대식 군복을 차려입고 로마와 이집트 군인을 연기했다.

합창하는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은 4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에 비해 그리 길지 않았다. 문제는 처음 등장할 때 짧지만 굵게, 군기가 바짝 든 줄리오 체자레의 정예 군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연습을 꽤 반복해봐도 연출가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제각각 군인의 대환장 종합세트
한껏 풀어져 노닥거리는 척하다가 “장군님이 도착하셨다!”라고 하면 후다닥 무대 중앙으로 모여들며 노래를 부른다. 여기까지는 ‘아이고, 잘한다’ ‘우리가 최고다’ 여기며 뿌듯하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일단 두 줄로 맞춰 서는 것부터 들쭉날쭉하다. 그리고 ‘차렷’ 경례, 우향우해서 무대 뒤로 발맞춰 나가기까지.

왼손 경례부터 다리 쩍 벌리고 서기, 손발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나가기 등 해야 하는 동작들은 ‘대환장 종합세트’였다. 연출팀과 안무가들까지 합세해 세세하게 자세를 교정해나 갔다.

이윽고 잠시 쉬는 시간. 연출가를 포함한 몇몇 동료가 쑥덕인다. “쟤네는 진짜 군인 같아.” 그 ‘쟤네’는 러시아에서 온 친구 올가와 대한민국 출신인 나를 칭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우리에게 와서 “본국에서 군대에 다녀왔냐”고까지 물었다.

한국에서 초·중·고를 다닌 사람이라면 해봤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맨 앞줄 정중앙 친구가 “기준!” 하고 앙칼지게 외치면 한 팔 간격으로 넓어졌다가 좁아졌다가, 앞으로 옆으로 ‘나란히’ 하던 기억. 키가 큰 편이라 거의 뒷줄에 선 나는 맨 앞 ‘기준’과의 거리만큼이나 자세가 늘 혼란스러웠다. 그 긴 시간 들던 의문은 “이걸 도대체 왜 해야 하는 걸까”.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갔던 수련회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천사가 되거나 혹 악마가 될 수 있는’ 빨간 모자의 교관님들에게 행동과 자세를 교정당했다. 식판을 들고 밥을 기다리는데 빨간 모자의 천사악마 교관이 어금니를 물고 “짝다리 짚지 않습니다… 짝다리 짚지 않습니다!!”를 크레셴도(음의 세기를 점점 세게)로 내 귓가에 대고 소리질렀다. 나는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교관은 “모두 나 때문”이라며 연대 책임을 물어 우리 조 친구들에게 단체 기합을 줬다.

내가 나중에 울먹이며 “짝다리가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교관은 한숨을 푹 쉬며 가버렸다. 한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조금 더 준 게 중학생 아이에게 그리 큰 죄였을까. 아니면 우리네 골반 건강을 지켜주고자 함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군대는커녕 고문관에 더 가까운 사람이 이곳에서는 군인 같다는 소리까지 듣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한국에서 세상 제일 어려운 건 인사
블랙앤화이트가 어우러진 교련복을 입는 세대는 아니었지만, 내 고교 시절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교련 과목이 존재했다. 기억에 남는 수업은 ‘삼각건 묶기’ 등이다. 조신한 여학생을 양성하기 위한 담당 과목 선생님들의 협박에 가까운 훈계 말씀도 기억난다. 우리네 건강에 도움이 될 이야기도 있었겠지만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몇몇 이야기는 어른이 된 지금 떠올리면 실소를 자아낼 지경이다. 나중에 결혼해서 시어머니랑 같이 목욕이라도 하게 되면 어른들은 너희 가슴만 봐도 결혼 전 성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나. 관심법을 마스터한 궁예가 떠오른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지만 대학 시절 해외동포로 오해받은 적이 더러 있다. 사라라는 이름 때문이었을까, 성인이 된 자유를 만끽하느라 만주 벌판 같은 등판도 시원하게 까고 다녔기 때문일까? 혹자들은 위아래 경계가 희미했던 것도 큰 이유라 했다. 교수님들께도 스스럼없는 편이었고 동생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선후배 간 기강 잡는 문화가 없는 편이었기에 나 같은 사람도 편안히 잘 다녔지만 다른 학교에서 예체능을 전공하는 친구들은 집합이라는 것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엎드려뻗쳐 같은 기합 받기부터 손찌검까지 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선배님들을 만나면 얼른 뛰어나가 인사해야 한단다. 이 기본 중의 기본이 잘 안 되면 ‘집합’해야 했다.

선생님들에게는 또 다른 종류의 ‘인사’를 잘해야 한단다. 비싼 등록금을 이미 냈더라도 학기 마치면 잘 가르쳐 주셨으니까, 논문 쓰기를 마치거나 졸업하게 돼도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사는 의례적인 간소한 선물을 넘어선 학생 쌈짓돈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금전적인 것을 의미한다. 시간과 정성으로 보필하는 방법도 있다. 교수님의 개인 운전사가 되어 모든 일정을 함께하고 뒷바라지해주는 학생도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실력과 인품이 훌륭한 선생님도 많이 계시니 혹여 이 글을 보는 음악도가 있다면 당신에게 좋은 스승을 만날 행운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두오모 한복판에서 어색한 인사를
이탈리아어에도 존칭이 존재하지만, 부모님 또래 어른이나 선생도 좀 친해지면 어김없이 “Tu”(너)라고 불러달라는 제안이 날아온다. 여권에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시절에는 나같이 위아래 없는 애도 그게 영 불편했다. 이곳에서는 배우자의 부모님에게도 당연히 이름을 부르고 Tu라고 칭한다.

이곳에서의 삶도 만 10년이 넘어가 그동안 먹은 피자 판수가 제법 쌓였으니 흰머리 노인에게 ‘뚜뚜’ 하고 양 볼에 키스하는 두에 바치도 한결 몸에 익었다. 문제는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 두에 바치로 인사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다. 팔순 된 할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뚜뚜’ 하다가 나보다 한두 살 많은 한국인에게 극존칭 쓰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낀다. 간극을 줄여보려고 허리는 굽히지 않고 최대한 착한 표정으로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해보지만 속으로 ‘버릇없다고 욕하려나’ 하며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 오늘도 시내에서 우연히 한국인 연장자를 마주쳤다. 급작스러워 뇌가 생각할 틈이 없던 바람에 친구에게 하듯이 손은 흔들며 허리는 구부린 우스꽝스러운 인사를 밀라노 두오모 한복판에서 선보였다.

밀라노(이탈리아)=박사라 스칼라극장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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