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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알려지지 않았던 복음

한국 시장의 도움 없이 정상에 오른 김연경은 누구인가… 다시 오지 않을 ‘연경 타임’을 즐겨야 하는 이유
등록 2016-08-18 04:59 수정 2020-05-02 19:28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스포츠는 ‘저 너머’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과연 가능할까’ 싶은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오직 노력과 땀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불가능한 세계다. 아주 가끔씩 그렇다. 그래도 스포츠엔 정해진 룰이라는 최소의 하한선이 있다. 룰이 항상 공평하진 않더라도, 이토록 불공평한 세상에서 그나마 그만큼 공정한 세계가 그곳 말고 달리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스포츠라는 마약에 취하는 이유다.

2007년의 질문을 되짚다

불가능한 세계로 우리를 이끌었던 이름들을 기억한다. 김연아의 스케이팅, 박태환의 수영 그리고 김연경의 스파이크. 2000년대 후반부터 선물처럼 한반도에 주어진 황홀한 시간의 끝자락에 우리가 있다. 1988년생 김연경, 89년생 박태환, 90년생 김연아, ‘우연히’ 이어서 태어난 이들이 선물한 시간의 끝자락에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있다. 세계에서 배구 가장 잘하는 선수를 다시 가질 수 있을까? 배구처럼 세계화된 구기종목에서 말이다.

최소한 지난 4년, 런던올림픽 전후부터 김연경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배구선수다.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냉정한 잣대인 세계 최고의 연봉이 증명하는 것보다, 더욱 영예로운 증거는 지난 7월 국제배구연맹(FIVB)이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처음으로 선정한 ‘선수위원회’ 10인 명단에 김연경 이름이 올랐단 것이다. 2000년대 스피드 배구로 브라질의 전성기를 이끈 필호 길베르토, 러시아 배구 여제 예카테리나 가모바, 미국 비치발리볼 선수 케리 월시 같은 전설이 함께 오른 명단이다. 홍콩에 팬클럽이 있고, 타이에 팬덤이 있지만, 유독 한국엔 덜 알려진 레전드, 김연경의 위치다.

“대표선수가 목표였는데 이뤘거든요. 언젠가는 다른 나라에서 뛰는 것이 목표예요. 이탈리아리그에서 뛰었다고 하면 ‘와~’ 하거든요. 저도 그런 소리 듣고 싶어요.” 2007년 흥국생명 소속이던 19살 김연경은 그렇게 답했다. 에 ‘스포츠 일러스트’(제645호 ‘그 스파이크의 경쾌함이여’)를 쓰던 시절 “외국에서 뛰고 싶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질문은 했지만, 정말 가능할까, 의심했다. ‘아시아 배구선수가 가능하겠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은 한국리그에 이어 일본리그를 평정하고, 터키리그에 진출했다. 이탈리아리그가 재정난에 부딪히면서 김연경이 이적하던 당시 터키리그는 세계 최고의 리그로 떠올랐다.

김연경 말처럼 이적만으로 ‘와~’였지만, 이적 뒤에는 ‘와우!’였다. 2012년 터키의 빅클럽 페네르바체에는 당시 최고의 배구도사 2명이 있었다. 당시 이름만으로 압도적인 러시아의 류보프 소콜로바, 미국의 톰 로건이 김연경과 겹치는 포지션인 ‘윙 스파이커’로 함께 영입됐다. 외국인 센터는 브라질의 파비아나 클라우지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팀 선수였다.

외국인 선수 3명만 리그 경기에서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연경은 후보가 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김연경은 압도적 경기력으로 주전을 꿰찼다. 나아가 유럽리그 진출 첫해에 팀을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정작 한국에선 최우수선수로 뽑힌 2012년 런던올림픽 전까지, 이런 소식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똥볼’ 처리, 배구 지능
김연경은 프로선수 초기 치명적인 무릎 수술을 3번이나 받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세계 정상의 선수로 성장했다.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하단 왼쪽), 2007~2008 프로배구 V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하단 오른쪽).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김연경은 프로선수 초기 치명적인 무릎 수술을 3번이나 받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세계 정상의 선수로 성장했다.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하단 왼쪽), 2007~2008 프로배구 V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하단 오른쪽).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일본의 기무라 사오리, 중국의 왕이메이. 아시아 배구 라이벌 국가의 에이스들도 비슷한 시기에 터키리그에 진출했다. 기무라 사오리는 페네르바체의 라이벌 바키프방크에 영입됐지만, 후보를 전전하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왕이메이도 뚜렷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오직 김연경만이 터키리그에서 2011~2012 시즌부터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김연경은 단순히 한 팀의 에이스가 아니었다. 올림픽에 나오는 각국의 에이스들이 즐비한 리그에서 최고 득점을 놓치지 않았고, 마침내 2014~2015년 팀을 터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챔피언 결정전 바키프방크와의 경기는 김연경이 왜 세계 최고인지 증명했다. 몇 해째 라이벌 바키프방크에 밀리던 페네르바체가 또다시 패배에 몰린 상황에서 ‘김연경의 타임’이 시작됐고, 드라마 같은 역전 우승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김연경은 최우수선수는 물론 득점상, 공격상을 휩쓸었다.

좋은 볼을 잘 때리는 선수는 많지만, ‘똥볼’을 잘 처리하는 선수는 드물다. 김연경은 리시브(서브한 공을 받아넘기는 것)가 잘돼서 빠르게 이어진 토스를 처리하는 능력도 좋지만, 리시브가 잘 안 되거나 랠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어려운 볼 처리 능력이 탁월하다. 김연경은 강심장이라 승부가 결정되는 클러치 상황에도 강하다. 터키리그, 유럽챔피언스리그 등에서 김연경은 비교 불가 능력을 반복해서 증명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2015~2016년 유럽챔피언스리그 6강 디나모 모스크바와 2차전에서 김연경은 33점을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팬들은 “리즈(최고 전성기)를 경신한 경기”라고 평한다. 리베로의 리시브를 대신하고, 그림 같은 디그(길게 떨어지는 공을 받아내는 것)를 해낼 만큼 백코트 장악 능력도 뛰어나다. 이렇게 팀의 공격과 수비에 균형을 맞춰주는 선수로 거의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한 해만 선수 가치를 못해도 가차 없이 재계약에 실패하는 터키리그에서 5~6년째 살아남은 이유다.

그래서 해마다 터키리그 우승을 다투고,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노리는 페네르바체가 몇 해째 김연경을 중심으로 팀을 꾸린다. ‘오늘은 좀 부진한데’ 싶어도, 경기가 끝나고 기록지를 확인하면 못해도 20득점은 하는, 웬만해선 공격성공률 4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항상성’을 유지한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연타를 섞는 배구 지능도 정상급이다. 이것이 팬들이 ‘갓킴’(God+김연경)을 찬양하는 이유다. 유튜브( Youtube.com)에서 찾아보면 우리가 몰랐던 주옥같은 경기들을 볼 수 있다.

김연경은 자수성가 스타일이다. 언니의 성공은 한국 시장에 빚지지 않았다. 한국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MLB),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에 진출하는 경우, 한국 시장이라는 배경이 고려된다. 그러나 페네르바체 경기는 한국 스포츠채널에 한두 해 빼고는 중계도 되지 않았다. 터키리그에 진출한 기무라 사오리 선수의 팀에 일본 기업 스폰서가 붙었던 것과 대비된다. 그렇게 기대하고 밀어주는 배경이 있어도, 아시아 선수가 유럽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터키리그 진출 초기에 세터가 볼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훈련할 때 무시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김연경의 반응은? “나도 같이 무시했다.” 코트에서도, 밖에서도 기죽지 않는 성격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나의 기적, 여럿의 우연
2012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4위 팀에서 최우수선수(MVP)가 나온 그 어려운 일을 김연경이 해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2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4위 팀에서 최우수선수(MVP)가 나온 그 어려운 일을 김연경이 해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인터뷰에서 ‘빵’ 터지는 카리스마도 넘친다.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한국팀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지카바이러스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저는 당분간 임신할 생각이 없어서”라고 답한다든지, “선수촌에서 보고 싶은 선수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이제는 그들이 저를 보러 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받아치는 여유가 넘친다. 이런 카리스마가 공중파 시청률 30%를 넘긴 리우올림픽 경기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녀를 향한 여성들의 ‘걸 크러시’가 폭발하고 있다.

하나의 기적에는 여러 개의 우연이 겹치기 마련이다. 박지성의 교토 퍼플상가처럼 김연경의 JT 마블러스는 세계시장으로 가는 통로가 됐다. 김연경은 터키로 가기 전 2년을 일본리그 JT 마블러스에서 뛰었다. 배구선수로서 기본기를 더욱 다지는 시간이었다.

박지성에게 거스 히딩크가 있었다면, 김연경에게는 제 호베르투 감독이 있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브라질 여자배구를 금메달로 이끈 호베르투 감독이 페네르바체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김연경을 스카우트했다. 당시에는 ‘잘하는 아시아 선수’ 정도로 여겨졌던 김연경의 잠재력을 알아본 감독이 있어 세계 최고로 성장하는 길이 열렸다. 리우에서 브라질 기자들이 호베르투 감독에 대해 묻자 그녀는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답했다. 호베르투가 다음 시즌 페네르바체 감독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2014년 10월7일치 제1031호 문화 ‘“배구 완전체” 김연경, 정상을 향한 독주’에서 썼듯이, 경기도 안산의 배구 소녀 김연경은 ‘다행히’ 중학교 때까지 키가 작았다. 165cm가 되지 않았던 선수는 작은 키를 만회하려고 리시브를 거듭하고 토스를 반복했다. 이렇게 다져진 기본기에 고등학교 시절 갑자기 ‘폭풍 성장’하는 하늘의 선물이 더해져 192cm의 세계적 선수가 나왔다. 일부러 하려고 해도 하지 못하는 ‘합’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노력한 결실을 올림픽 무대를 통해 보고 있다. ‘아시아인이 가능해?’라는 선입견을 하나씩 넘어온 언니는 리우올림픽 직전 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배구 인생을 “오후 1시”에 비유했다. 오후 2시로 넘어가는 절정의 시간에 리우가 있다.

전설의 마지막 한 조각

한국과 일본의 리우올림픽 경기가 열린 다음날, 일본 아침방송 자막은 ‘사오리·에리카 vs 월드 No.1’이었다. 김연경과 일본 두 노장의 경쟁이었단 것이다. 일본 배구경기 해설자가 지난해 배구 월드컵에서 세르비아의 보스코비치 선수가 뛰어난 경기력을 보이자 “지금은 김연경이 세계 최고지만, 다음으로 세계 최고가 될 선수”라고 해설할 정도다.

이정철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100년이 아니라 200년이 지나도 김연경 같은 선수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한국의 무관심 속에 혼자 힘으로 정상에 오른 여성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자신의 전설을 완성할 마지막 한 조각, 올림픽 메달을 위해 뛰고 있다. 지금은 연경 타임, 놓쳤던 만큼 더욱 열심히 즐기면 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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