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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이태원 참사 검은 날들을 보내며 묻는다

제1439호
2022.11.21
등록 : 2022-11-21 15:20 수정 : 2022-11-24 18:21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다. 11월5일은 7년 전 세상을 떠난 내 친구의 생일이다. 이날부터 12월2일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 올 때까지의 근 한 달 동안 내 마음은 온통 검은색이 된다.

7년 전 그때 친구와 나는 여행 중이었다. 사회단체에서 일하던 우리는 휴가를 맞추기가 까다로웠으므로 따뜻한 나라로 겨울여행을 떠나자는 계획을 오랫동안 짰다. 즐겁기만 할 예정이던 여행지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친구는 이틀의 사투 끝에 세상을 떠났다. 또래에 비해 많은 죽음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죽음 앞에 나는 완전히 무방비였다. 내 앞에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어 우왕좌왕하는 사이 장례는 끝났고, 모든 게 후회스러워서 매일 술을 먹거나 울기만 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실제 몸이 경험하는 통증에 대한 표현임을 알았다.

그 말이 정말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지난 7년 동안, 지금도 시시때때로 나는 그 시간을 복기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나, 나는 그때 뭘 했나, 뭘 해야 했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는, 음식은…. 그때마다 똑같은 지점에서 마음이 엎어진다. 단 한 가지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살아남은 이 시간을 미워하게 된다.

친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응급실에 있는 친구를 향해 급히 달려온 친구의 부모님을 만난 뒤 나는 친구가 왜 그렇게까지 좋은 사람이었는지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친구의 곁에서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 친구 엄마는 뜻밖에도 나를 위로했다. 자책하지 마라, 네 탓이 아니야,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 혼자 있었다면 어쩔 뻔했니.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다 믿지 못한다. 이 말을 믿자는 마음이 솟으면 제 속만 편해지려는 내가 징그러웠고, 살아남았다고 생각씩이나 하다니 이조차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지난 7년을 되돌아보면 내가 밉고 싫을 때마다 나를 다독여준 것은 언제나 그때 친구 엄마의 말이었다. 만에 하나 그 말이 정말일지도 모르니까 정신을 차리자고 주문을 건다. 흔들리는 마음에서 깊게 내린 닻처럼 친구 엄마의 말이 천천히 나를 붙잡아줬다.

죽음은 참으로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다. 이 손상의 크고 작음을 분별할 도리는 없지만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일수록 상처 입은 사람들이 고립되기 쉽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회적 참사 앞에 사과를 요구한다. 나눈다고 해서 내 몫의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는 일어난 사실과 사건의 이름을 정리하는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참사에 대한 사과가 위로인 까닭은 말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시작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 정치적 손익계산에 따라 공방을 일삼는 말들 속에는 그런 위로가 없었다. 마땅하고 순순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계속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든다.

위로하는 마음을 묶어줄 닻은
참사 나흘 뒤 하얀 소국을 든 나에게 한 할머니가 말을 건넸다. “거기에 가시나봐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그는 다시 말했다. “나도 오후에 친구들과 가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죠.” 참사 현장에 비가 내리자 자원봉사자들이 비닐로 메모와 꽃을 덮었다. 장례를 마치고 올지 모를 유가족에게 시민들의 위로가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검은 날들을 보내며 묻는다. 아프게 떠난 이들을 생각하며 꽃 한 송이 겹쳐놓기도 저어한 시민들의 눈물은 어디로 가야 하나. 서로를 위로하는 이 마음을 묶어줄 닻은 무엇일까.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