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기레기는 언제 태어나는가

비윤리적 특종은 상을 받지만, 윤리적 낙종은 비난받는 언론 조직문화 바뀌어야

제1383호
2021.10.13
등록 : 2021-10-13 22:27 수정 : 2021-10-14 11:21
‘검-언 유착 의혹’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2020년 7월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1년 7월16일 서울중앙지법은 이 전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이 전 기자의 행위가 ‘취재 윤리 위반’이라고 명시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오래전 지은 죄를 고백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언론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일을 하지만, 한때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자로서,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습니다. 공개된 지면에 개인적 이야기를 꺼내는 건 감히 용서를 구하거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 부끄러운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기자 신분 감추고 고인 친구 행세
어느 날 경찰서에 갔다가 스무 살 젊은이가 희귀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눈치 없이 회사에 보고했는데, 덜컥 기사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곧바로 낭패감이 밀려들었습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게 가슴 아픈 사연을 캐묻는 일이 즐거울 기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기사를 쓰려면 취재를 안 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한 시간 넘게 장례식장 주위를 서성거리며 망설이다 궁색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기자 신분을 감추고 고인의 친구 행세를 하자는 거였습니다. 환우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났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꾸며냈습니다.

거짓말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취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고인의 삼촌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어수선한 빈소 앞 공기는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어설픈 연기를 하느라, 팩트를 머릿속에 저장하느라 바빠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겨를은 없었습니다.

기사를 모두 마감한 뒤에야 비로소 감당할 수 없는 회의와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런 표현을 쓰는 데 반대하지만, 당시엔 그런 단어도 없었지만 그날 그 빈소에서 저는 ‘기레기’였습니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신문협회 등이 채택한 신문윤리강령의 신문윤리실천요강 제2조는 ‘기자는 신분을 위장하거나 사칭하여 취재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굳이 취재 윤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제가 유가족에게 해선 안 될 짓을 했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겠지요.

제가 구제 불능의 ‘쓰레기’였기 때문일까요? 그 상황에서 모두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하진 않을 테니, 제게 잘못이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딱히 도덕적이지도 않지만, 비양심적인 거짓말쟁이도 아닙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독자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어쩌다 수준 이하의 ‘기레기’가 돼버린 걸까요?

취재원 압박 채널A 기자, 경찰 사칭 MBC 기자…
돌이켜보면 제가 조직의 지시와 규범을 너무 잘 따른 게 문제였습니다. 저는 열심히 취재하고 마감을 지켜서 신문 제작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 성실한 회사원이었습니다. 데스크의 불호령과 선배들의 무용담을 가슴에 새기며 취재 테크닉을 배워가던 햇병아리였습니다.

언론사 조직에는 특유의 문화가 있습니다. 언제나 무리한 취재를 짧은 시간 안에 해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집요하게 질문하고 확인할 것을 요구하며, 스스로 물러나는 건 기자답지 못하다고 가르칩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 특종을 만들어 오는 기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비윤리적 특종은 상을 받지만, 윤리적 낙종은 비난받습니다.

이건 제가 몸담았던 조직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윤리보다 성과를 우선시하는 문화는 언론계 전반에 굳어져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기자라면 누구나, 잠시라도 ‘기레기’가 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거짓말하고, 신뢰를 배반합니다. 그 사람이 ‘쓰레기’라서가 아닙니다.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에 익숙해지면, 평상시에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촉박한 마감과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결정적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윤리를 저버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취재·보도 윤리를 어긴 언론인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취재원을 회유·압박한 채널A 기자와 경찰을 사칭한 MBC 기자가 대표적입니다.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는 취재 목적임을 밝히지 않고 인지장애가 있는 고령의 취재원에게 접근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한 인터넷 매체는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기사를 쓴다고 속여 성소수자 부모들을 인터뷰한 뒤 혐오의 언어로 가득한 기사를 써서 비판받았습니다.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모두 중대한 언론 윤리 위반입니다. 기자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맞습니다. 그러나 개인 일탈로 규정하며 기자를 단죄하는 것으로 논의를 매듭지어서는 곤란합니다. 윤리를 위반한 기자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게 아닙니다. 개인을 징계하는 수준에서 끝나면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조직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언론 윤리는 기자 개인의 윤리가 아니라 언론사 조직의 윤리가 돼야 합니다. 취재 윤리에 대한 검증과 보상이 가능하도록 조직의 운영 방식과 업무 시스템을 혁신해야 합니다. 과정은 묻거나 따지지 않을 테니 특종만 물어오라는 리더십은 퇴출돼야 합니다.

윤리강령에 ‘데스크’ 후속 편이 필요해
데스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언론사별로 구비된 윤리강령에는 데스크가 어떻게 할지를 규정하는 후속 편이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윤리강령 실천이 가능하도록, 수칙에 따라 취재해도 불이익이 없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어떻게 알아냈느냐”를 물어보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단독이라 해도 과감히 쓰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우여곡절을 겪은 채널A가 ‘취재 윤리·멘토링 에디터’직을 신설했습니다.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뉴스룸의 모든 간부가 윤리 에디터가 돼야 합니다. 한 명에게 책임을 지우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취재 윤리를 강조할 때마다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일축하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써가면서 어떻게 기사를 쓰냐는 겁니다.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말하는 기자들이야말로 정말 현실을 모르는 분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최근 들어 언론 윤리가 전보다 자주 이슈가 되는 건 시민과 독자의 눈높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언론을 손가락질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위선’입니다. 언론이 정의와 도덕을 말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시민은 윤리적 언론을 원합니다. 이제 취재 윤리를 엄격히 준수하지 않는 언론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워질 겁니다. 다름 아닌 생존을 위해서라도 언론사는 취재 윤리에 더 민감해져야 합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