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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근력에서 성취감이 온다

스쾃·벤치프레스·데드리프트 3대 파워리프팅 하는 ‘스트롱걸즈’

제1382호
2021.10.03
등록 : 2021-10-03 23:54 수정 : 2021-10-04 10:26
2021년 9월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파워리프팅 체육관에서 ‘스트롱걸즈’ 회원들이 에스더 코치의 스쾃 시범을 지켜보고 있다. 류우종 기자

“오늘은 몇 ㎏부터 들어볼까요?”

9월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파워리프팅 체육관. 무게를 더하는 원판을 끼지 않은 20㎏짜리 바벨(역기) ‘빈 봉’으로 몸풀기를 끝낸 박소연씨가 다른 회원들에게 물었다. 파워리프팅은 이른바 ‘3대 운동’(스쾃,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을 할 때 바벨 무게의 합을 겨루는 운동이다. ‘운동 좀 하는 사람들’은 흔히 “3대 몇 드세요?”라고 서로 묻곤 한다. 박씨만 해도 최근 “스쾃 105kg, 벤치프레스 54kg, 데드리프트 115kg까지 3대 274kg을 들었다”.

2명만 와도 감사하다 했는데 20명이 오다
박씨 등 여성 회원 4명은 원판 수를 늘려가며 바벨을 올렸다. 이들은 ‘스트롱걸즈’ 회원이다. ‘스트롱걸즈’는 파워리프팅 52kg 체급 선수인 에스더 코치가 여성 전용으로 만든 수업 프로그램 이름이다. 2020년 7월부터 한 기수당 10~12명이 함께 운동해왔는데, 현재 10기까지 훈련 중이다. 기수는 매달 운영되는 수업 프로그램을 듣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이후에는 체육관 이용료만 내고 개별 훈련을 한다. 수업을 들은 회원들이 모임을 계속 유지하며 함께 운동한다는 점이 일반 헬스장과는 다르다. 이날 만난 박소연, 김규빈씨는 1년 넘게 ‘스트롱걸즈’에서 훈련 중이라고 했다.

‘스트롱걸즈’의 시작은 그저 바벨 운동을 좋아하는 여성들끼리 함께 운동하자는 취지였다. “2020년 5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회원을 모았다. 2명만 와도 감사하겠다 생각했는데 20명이나 왔다. 그렇게 매주 금요일 함께 훈련했는데,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분이 많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이 하는 운동이 따로 있고, 그저 다이어트나 예쁜 몸매를 위해 운동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면 최근에 흐름이 확 바뀐 걸 느낀다. 이제는 세고,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운동하려는 여성이 늘었다.”(에스더 코치)

최근 몇 년 새 운동하는 여성들 사이의 흐름이 바뀌었다. ‘S라인’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근력이 강해지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강조한 <마녀체력> <여자는 체력>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 같은 책이 잇따라 나오기도 했다.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파워리프팅 모임은 1~2년 전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스트롱걸즈’ 외에도 ‘레이디 리프터즈’ ‘래빗츠’ 등이 활동 중이다.

대학생 김규빈(22)씨는 마른 몸이 고민이었다. 주짓수(관절꺾기나 조르기 등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술) 체육관에 등록한 김씨는 힘이 너무 없어 상대방을 들기는커녕 조르지도 못했다. 차근차근 힘부터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스트롱걸즈’를 알게 됐다. 주위에선 김씨가 바벨을 들 수나 있을지 걱정했다. 가벼운 15kg 빈 봉도 겨우 들던 김씨는 지금 3대 운동 200kg 이상도 가능한 사람이 됐다. “힘도 세지고 몸도 탄탄해졌다. 미적인 부분을 위해 운동한 것이 아닌데 자연스레 더 보기 좋은 몸을 갖게 됐다.”

여성, 순간적 폭발 힘은 약하지만 지구력 강해
회사원 김연우(31)씨는 근력 운동만 5년차다. 그러나 파워리프팅처럼 무거운 것을 드는 고중량 운동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자처럼 몸이 커진다” “몸매가 안 예뻐진다”며 주위에서 만류했고 원판이 가득 쌓인 헬스장은 남성 전용 공간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다 ‘스트롱걸즈’를 만나 운동한 지 6개월째다. “체육관까지 왕복 2시간이 걸려 고민을 많이 했지만,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만족도가 높아 주 4회 나온다. 여성이 들 수 있는 무게에 자꾸 한계를 짓는데, 파워리프팅이야말로 꾸준히 하면 성장하는 게 보이는 운동이다.”(김연우)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발달하는 근육이 다르다. 남성은 여성보다 속근이 발달된다. 피부 가까이 있는 속근은 근섬유가 굵고, 낼 수 있는 힘의 크기가 크다. 반면 여성은 몸 안쪽에 있는 지근이 잘 발달하는데, 지근은 근섬유가 얇고 낼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힘은 약하다. 이 때문에 단시간에 힘을 써야 하는 고중량 운동은 여성에게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지구력과 회복 능력에 장점이 있는 여성들도 고중량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트롱걸즈’ 회원들이 발견한 파워리프팅의 매력은 ‘안 되는 걸 되게 한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박소연(27)씨는 “빈 봉도 후들거리면서 들던 내가 3대 (운동 합쳐서) 250kg 넘게 들 정도로 바뀌었다. 스스로 도저히 들 수 없을 것 같던 무게 들기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며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힘들었는데, 파워리프팅을 시작한 뒤엔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연우씨도 “파워리프팅을 하면서 마인드셋(마음가짐)을 다시 했다. 이 정도밖에 못 들겠지 겁내다가도 그 이상을 드는 나를 보며 성취감이 생겼고 정신력이 강해졌다. 그러자 체력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스트롱걸즈’는 단순히 수업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이들이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울타리다. 운동 동료에서 친한 친구들로 발전했다. 회원들은 수업이 없는 날에도 자주 체육관에 나와 훈련한다. 서로 영상을 찍어주고 응원하며, 함께 운동한다. “발바닥에 힘을 고루 줘야 한다” “복압을 유지해라” 등의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정확한 자세로 주어진 무게를 잘 수행한 회원에게는 박수를 쳐준다. 바벨 앞에선 친구도 동료도 없이 한없이 고독한 싸움을 하게 되는 파워리프터들이지만, ‘스트롱걸즈’ 회원들은 ‘원 팀’이다.

고독한 파워리프터, 하지만 우리는 ‘원 팀’
대학생 신유진(25)씨는 “운동도 좋지만 ‘운동 동료’를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스트롱걸즈’에 나온다”고 말했다. 박소연씨의 말이다. “일반 헬스장에선 남성들의 전유물인 렉을 차지하고 있자니 눈치 보이고 외로웠다. 중량을 올리니 ‘그걸 어떻게 들려고?’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시선도 많았다. 남성들처럼 운동 동료가 필요했다. 여기선 모두 함께 운동하고 서로 동기부여를 해준다. 그동안은 여성들 자신이 이런 커뮤니티를 원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운동엔 남자 운동, 여자 운동이 따로 있지 않다. “파워리프팅은 위험한 운동이란 인식에 무서워하는 여성이 많은데 맨몸으로 움직임을 배우고 조금씩 무게를 늘려가면 전혀 어렵지 않다. 파워리프팅은 노력하고 연습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운동이다. 여성은 순간적인 힘은 약하지만, 회복력이 좋기 때문에 더 오래 운동할 수 있다. 차근차근 천천히 연습하면 몸이 강해지고, 더욱 강해진 몸으로 운동하면 다치지 않고 오래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다.”(에스더 코치)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