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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회창, 고건, 반기문은 왜 실패했나

관료 출신들의 대선 도전 실패기… 높은 지지도에 등 떠밀리고 소명감 느끼고

제1380호
2021.09.10
등록 : 2021-09-10 19:38 수정 : 2021-09-12 11:28
2002년 11월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윤석열, 최재형, 김동연. 이 셋은 문재인 정부에서 최고위 관료를 역임하다가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선배 관료 출신 정치인인 이회창, 고건, 반기문. 이 셋 또한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선거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관료 출신 인사라는 점이다.

관료 출신 정치인들의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에 뛰어든 뒤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가 검찰총장에 재직할 때인 2020년 4월 검찰이 범여권 인사 고발장을 야권에 전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는 2020년 4월3일과 8일 야당 인사로 추측되는 인물에게 두 차례 텔레그램을 통해 고발장과 증거자료를 보냈다. 이 자료를 전달받은 이에게는 ‘전달된 메시지-손준성 보냄’이라는 표시가 떴다. 두 번째로 보낸 고발장은 미래통합당에 접수되고 넉 달이 지나 판박이 내용으로 검찰에 제출되기도 했다.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한 ‘윤석열 검찰’은 2020년 10월15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두 번째 고발장의 요지대로 검찰 기소까지 이어진 셈이다.

핵심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지부진한 진실 공방이 계속 이어진다면 최악의 정치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윤 전 총장의 개입 여부까지 확인된다면 직권남용 이슈로 번질 수도 있다.

여기서 하나 궁금증이 생긴다. 관료들은 왜 정치를 비판하며 최고권력을 넘보고 있을까. 특히 문재인 정부 최고위 관료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관료 출신 정치인들이 번번이 대통령을 꿈꾸다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_편집자주

관료와 정치인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정무직 공무원인 국무총리나 장관은 관료인가, 정치인인가? 관료를 하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은 관료인가, 정치인인가? 출신과 경력을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회창, 고건, 반기문 세 사람의 공통점은 대통령선거에 도전했던 관료 출신 인사라는 것이다. 이들은 왜 대통령선거에 도전했을까? 왜 실패했을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판사 출신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법관이던 그를 감사원장, 국무총리로 발탁했다. 1996년 총선거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정치에 들어와서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 지나친 네거티브 선거를 지양한다. 둘째,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정치’를 청산한다. 이회창 총재에게 3김 정치는 권위주의적 행태와 지역주의를 의미했다. 셋째, 대통령이 되겠다. 그가 회고록에 쓴 내용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가 세 번째인 것이 이채롭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2007년 1월 고건 전 국무총리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위해 기자회견장을 찾았다가 지지자들이 막아서자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판사에서 관료로, 관료에서 대선주자로
“총선이 끝나자마자 나는 대선주자군의 한 사람으로 등을 떠밀리다시피 거론되기 시작했고, 가끔은 차기 후보의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기도 하면서 이제는 후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당시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이회창 전 총재는 1997년 대선 낙선 이후 ‘집권 야당’의 총재로 5년 동안 ‘이회창 대세론’에 안주했다.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 또 낙선했다. 왜 또 떨어졌을까? 그는 정치공학적 설명을 거부하고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후보 개인의 유권자를 설득하는 능력과 유권자에 대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고 단정했다. 설득력과 이미지 싸움에서 졌다는 설명이다. 그런가? 2007년 대선에 또다시 출마한 이유는 “선진화의 조건인 법치주의와 대북정책의 변화를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세 번째 출마했을 때는 아예 당선 가능성이 없었다는 의미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내무부 관료를 오랫동안 하고 김영삼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를 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2기 민선 서울시장을 했다. 노무현 정부 첫 국무총리로 기용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기간인 2004년 3월12일부터 5월14일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고건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은 2004년 5월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뒤 1년6개월 정도 지나서였다.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국민들로부터 과분한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활동도 안 하고 출마 의사도 표시를 안 했는데 지지율 1위를 달렸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명박·박근혜·정동영·손학규 등 여야의 경쟁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선두주자였다. 2005년 말 2006년 초 내가 짊어져야 할 역할이 있다고 판단했다. 소명의식을 느꼈다. 나는 2007년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새로운 정치를 해야겠다.’”

고건 전 총리는 국민대통합 신당을 추진했다. 정치인들에게 원탁회의를 제안했지만 호응받지 못했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지지율은 하강곡선을 그렸다. 2007년 1월 그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출마 뜻을 번의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직업정치인이었다면 고맙다고 수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정치인이 아니었다. 국민의 지지에 부응해야겠다는 소명의식에 정치를 시작했을 뿐이다.”

“언론은 ‘새 정치를 표방한 제3후보의 정치적 좌절’ ‘권력의지가 약한 비정당 정치인의 중도하차’라고 했다.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유령처럼 떠돌았던, 화려하고 허탈한 대망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주자 차출론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민주당 쪽에서 먼저 나왔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화려한 명함, 그리고 충청도 출신이라는 지역 때문이었다. 그 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차기 주자가 마땅치 않았던 친박근혜 세력에서 반기문 총장 대선 출마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2017년 대선에 출마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한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2016년 하반기 내내 ‘반기문 대망론’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2016년 12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 기자회견에서 대선 도전 의사를 묻는 질문에 “유엔에서 배운 것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내 한 몸 불사르겠다”고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상황이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은 대선 출마를 위해 2017년 1월12일 귀국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3주 뒤인 2월1일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이유는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됐다.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회창, 고건, 반기문 세 사람의 대선 출마에는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나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한 것이다. 높은 지지도에 취해서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등을 떠밀렸다”고 했고, 고건 전 총리는 “소명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표현이 조금 다를 뿐 같은 의미다. 2012년 안철수 교수, 2021년 윤석열 검찰총장도 똑같은 말을 하고 대선에 뛰어들었다.

2017년 1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귀국 인사를 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막스 베버가 했던 충고
실패한 이유는 뭘까? 이회창 전 총재는 출마했다가 떨어졌고, 다른 두 사람은 스스로 접었다. 차이가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마찬가지다. 세 사람 모두 막스 베버의 충고를 간과했다. 막스 베버는 관료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전문 관료는 데마고그(선동가)가 아니며 데마고그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데마고그가 되려 한다면 대체로 그는 매우 나쁜 데마고그가 되고 만다. 진정한 관료는 그의 본래적 사명에 비춰볼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단지 ‘행정’만 하게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비당파적 자세로 행정을 해야 한다.”

국민의힘 경선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뛰어들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제3지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세 사람 모두 막스 베버의 충고를 무시했다. 세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