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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왜 유가족은 산재 전문가가 되는가

제1366호
2021.06.04
등록 : 2021-06-04 17:30 수정 : 2021-06-07 10:23

고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를 처음 뵈었을 때 ‘아들이 아버지를 정말 꼭 닮았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눈빛이요. 사진 속 선호씨의 눈빛이 유독 또렷하고 야무지게 빛난다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눈빛도 참 형형했습니다. 그런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자꾸만 폭발하듯 쏟아져 내렸습니다. 커다란 등이 자꾸만 들썩입니다. 취재할 때 취재 대상과 늘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하지만, 상상할 수조차 없는 슬픔 앞에서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선호씨의 죽음이 알려진 뒤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일터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5월26일엔 한 화물노동자가 세종시의 화장지 생산업체에서 화물을 내리다 300㎏에 달하는 파지 더미가 쏟아져 그 더미에 깔려 숨졌다고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누리집에는 일터에서 사망한 이들의 소식이 매일같이 올라옵니다. “우리 애가 아르바이트 가는 줄만 아는데 거기서 일하다 다쳐서 돌아오거나 죽어서 못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이재훈씨의 말처럼, 이 수많은 사망자의 유가족 중 그 누구도 출근한 가족의 죽음을 예상한 이는 없었을 테지요.

한국은 유독 ‘떨어지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끼이는’ 재래형 산재가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700쪽 넘는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이 치밀한 조사를 토대로 22개 권고안이 발표됐는데, 이 중 17개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매일의 죽음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의 변화는 더딥니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나 산재 비율이 높은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을 유예 또는 제외(5명 미만 사업장)한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처럼요.

현실이 이러니 자꾸만 유가족이 ‘산재 전문가’가 됩니다. 김용균재단의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에는 산재 사고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사고 소식을 들은 직후와 이후 현장·경찰조사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유가족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심리적 외상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상세하게 기술돼 있더군요.

“우리는 여기 남아 너의 안타까운 사고가 잊혀지지 않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볼게. (중략) 부디 떠난 그곳에서는 편히 쉴 수 있으면 좋겠고 먼 훗날에 우리 다시 만나자. 그때 만날 때는 네가 떠난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너를 보내고 어떻게 지냈는지 친구들 다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자.”

5월28일 열린 고 이선호씨 추모 촛불문화제에서 낭독된 선호씨 친구의 편지입니다. 그의 말처럼 이제는 유가족 어깨 위의 짐을 모두가 나눠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결국 국민”(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이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는 곧 우리 모두의 권리기도 하니까요. 선호씨와 친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때, 그때는 친구의 바람처럼 세상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길 바라봅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