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고 호기심 많은 ‘식용’ 오리에 압도당하다진료실 밖이 소란스러워 병원 접수대 쪽으로 나가보니 새가 서 있었다.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우뚝 선 새는 문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개를 안고 진료를 기다리던 보호자들이 당황해서 뒤로 물러서 있는 게 보였다. 새는 낯선 곳에서도 위축되지 않았다. 목을 ...2023-09-01 18:23
“병원 다녀와서 못 걷게 됐어요” 확인해보니열한 살 된 작은 요크셔테리어(요키)가 병원에 왔다. 이삼 주 전부터 통 움직이지 않고 걸을 때는 한쪽 다리를 종종 들고 다닌다고 했다. 우리 병원에는 처음 온 환자였다. 걷는 모양을 관찰하니 왼쪽 뒷다리에 체중을 덜 싣고 걸었다. 신체검사 중 엉덩이 근처에 손을 대니...2023-07-21 23:08
강아지 뿌꾸도, 노년의 뿌꾸도 내겐 처음이다지인들은 종종 우리 집을 ‘개새네’라고 부른다. 개와 새가 함께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정확히는 개 둘, 새 하나와 사람들이 함께 산다. 뿌꾸는 그 개 둘 중 하나이고, 내가 성인이 된 뒤 함께 살게 된 우리 집의 첫 강아지다. 11년 전, 3개월령의 몰티즈를 입양했다...2023-06-30 21:36
제 발로 동물병원 찾아온 강아지아토는 스스로 동물병원으로 걸어 들어온 개였다. 개들은 아파도 스스로 병원에 올 수 없다. 사람이 데려와야 치료받을 수 있다. 병원 앞까지 개를 데려와도 동물병원 문 앞에서 안 들어오겠다고 버티며 보호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개가 대부분이다. 소아과에 온 어린 환자들이 병...2023-06-09 19:38
“치매 걸린 시추가 날 몰라보는 게 나아요…해준 게 없어요”출근하니 누군가 병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 시간 30분 전부터 병원 앞에서 기다렸다고 말하는 그의 품에 축 늘어진 개가 안겨 있었다. 15살 시추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눈 주변부터 귀밑까지 퉁퉁 부었고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피고름으로 담요가 젖은 게...2023-05-19 16:41
그래, 반려동물은 내가 즐겁자고 태어난 게 아니야아미는 흰 털이 부드러운, 까맣고 동그란 눈을 가진 작고 예쁜 강아지였다. 아미를 처음 만난 곳은 예전에 근무했던 동물병원이다. 보호자는 개인 사정으로 아미를 키우기 어려워했고, 좋은 입양처를 찾아달라며 아미를 병원에 두고 갔다. 보호자가 아미를 병원에 두고 간 날, ...2023-04-21 15:51
1m 목줄보다 높이 뛰어오르렴집 근처 오랫동안 비어 있던 큰 건물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가 끝나면 새로운 사업장이 들어설 것 같았다. 인테리어가 끝나갈 무렵, 건물 앞을 지나가는데 못 보던 움직임이 보였다. 주차장 옆 도로변에 파란 지붕의 개집도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이제 3∼4개월 된 ...2023-03-31 20:50
슈나우저가 사라졌다 출입문도 열려 있었다동물병원에서 생기는 최악의 일 중 하나는 환자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람과 달리 동물 환자는 자기가 병원에 있는 이유를 모른다. 이들은 대부분 병원이라는 낯선 곳에 갇힌 상태를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탈출할 기회를 엿본다. 입원장 문이 열리면 작은 틈이라도 머리를 들이밀어...2023-03-02 15:31
노랑이와의 저 깊은 사랑“노랑이가 또 물렸어요, 어떡해요.”보호자는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온 것 같았고 노랑이는 보호자 품에서 조용히 몸을 떨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간호사 Y의 표정도 어두웠다. 한두 달 사이에 벌써 세 번째 물림 사고였다. 자세히 보니 노랑이 목덜...2023-02-10 23:07
네가 준 신뢰와 사랑에 응답하는 것*제1441호 ‘날개 잃은 천사가 내게로 왔다’(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2997), 제1444호 ‘너와 사랑을 나누는 아침을 기다려’(https://h21.hani.co.kr/arti/culture...2023-01-25 20:31
너와 사랑을 나누는 아침을 기다려*제1441호 ‘날개 잃은 천사가 내게로 왔다’에서 이어집니다. 사랑이는 자연의 시간에 가깝게 산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 반대로 나는 밤에 활동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약속은 주로 저녁에 잡았다. 자연히 아침에는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서너 번의 알...2023-01-01 23:57
날개 잃은 천사가 내게로 왔다나는 앵무새와 함께 살고 있다. 녀석을 만난 곳은 수의대 다닐 때 방학 실습을 했던 동물병원이다. 나는 학교 야생동물의학실에 소속돼 있었다. 많은 야생 조류를 만나면서 새에게 호기심과 경외심이 생겼고 새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방학 때 동물병원 실습을 나가기로 했다....2022-12-09 16:12
개·고양이는 ‘생명’이고 소는 ‘상품’인 걸까산과학 수업의 실습 시간이었다. 수의과대학에서 산과학은 축산동물의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과목이다. 실습으로는 소의 직장 검사를 한다고 들었다. 소 항문에 손을 넣어 직장 주변 장기를 촉진한다. 주로 암소의 직장 벽을 손으로 만져 직장 바깥에 있는 자궁 주변 상태를 파악...2022-11-21 01:10
포기하지 않은 마음에 안겨준 큰 사랑[시골수의사의 동물일기]수의과대학 본과 2학년 1학기 시험 기간이었다. 눈을 뜨니 창밖이 환했다. 정신 차리고 시계를 보니 아침 8시50분. 시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0분이다. 잠들어 있던 뇌에 찬물이 끼얹혔고 관자놀이에서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새벽 5시로 맞춰놓은 알람을 끄고 잤을 것이...2022-10-26 16:10
당신은 반려견 키울 자격 있나요?3개월 된 크림색 푸들, 크림이가 병원에 왔다. 크림이가 밥을 잘 안 먹은 지 일주일 정도 됐다. 척추뼈 마디마디가 두드러지게 눈에 보일 정도로 저체중이었다. 어린 푸들의 급격한 체중 감소? 건강하고 어린 푸들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2022-10-07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