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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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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도원의 먹성과 한 치 앞을 모르는 묵언수행

정신줄 놓고 마시는 명륜동 LP바 ‘도어즈’
등록 2018-03-27 09:19 수정 2020-05-02 19:28
X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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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틀러’(제865호 ‘자웅동체와 사당동 프리덤’ 참조라고 매번 쓰지만 이렇게 쓴다고 누가 찾아서 볼까 싶다)의 재림이었다. 멧돼지 같은 덩치에 솥뚜껑 같은 손으로 학교 다닐 때부터 일진을 빼먹지 않은 녀석이었다.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한다고 해서 전씨 성을 따 전두환 또는 돈틀러라고 했다.(그래서 지금도 전화 오면 살짝 땀이 나고 코를 벌름거리게 된다. 어릴 때 일진이 뭐라고.)

돈틀러는 주말에 서울대병원에 볼일이 있어 서울에 온다고 했다.(어쩌라고? 속으로만.) 온 김에 대학로에서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그냥 왔다 가면 안 되겠니? 역시 속으로만) 주말 저녁, 개인 외출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컸다.(무슨 군대니? 혼잣말로) 와잎에게 녀석의 상경을 알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무슨 부모니?) 와잎은 간만의 주말 외출이라며 가즈아~를 외쳤다.(내 친구지 네 친구니? 그리고 비트코인 아직도 하니?) 녀석은 ‘짐승남’의 원조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짐승의 일은 고기와 술을 먹는 것이었다. 짐승 같은 주인의 학정에 녀석의 똥꼬가 치질로 성을 낸 것이 7년 전 일이었다. 피를 토한 괄약근은 좀처럼 수축되지 않았지만 짐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혼자 책 보고(게임하고) 공부하고(또 게임하고) 있겠다는 아들 녀석을 집에 두고 나왔다.(벌써 이렇게 큰 것인가? 낼모레 군대 가도 되겠구나~) 와잎은 오랜만에 대학로에 간다고 신이 났다.(난 얼마 전에도 갔지롱~) 먼발치의 녀석은 살이 더 쪄 보였다. 아주 0.1t은 족히 돼 보였다.(앞에서는 얘기하지 못하고) 와잎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돈틀러는 배가 고프다며 근처 삼겹살집으로 우릴 이끌었다.(돼지가 돼(뒈)지려고 돼지를 먹는구나~ 얼굴은 전혀 배고파 보이지 않는데~ 묵언수행으로) 영화 의 곽도원을 닮은 녀석은 혼자서 2인분에 된장찌개에 밥까지 말아드셨다.(배고파서 불렀니? 혼자 고기 먹기 신공도 가능할 거 같은데~ 곡성이 아니라 먹성이구만~ 와잎에게 카톡으로)

돈틀러는 배가 부르다(배가 안 부르면 사람이냐?)며 간단한 안주에 한잔 먹을 곳을 찾았다. 배부른 돼지를 20년 단골집인 명륜동 ‘도어즈’로 인솔했다. 디제이 형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골라 앉았다. 콜드플레이의 (In my plac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곽도원은 이런 곳이 다 있었냐며 좋아했다.(예전에도 왔거든~) 도어즈는 신청곡을 LP판으로 틀어주는 오래된 명소. ‘내 청춘의 3할 정도가 여기에 있었다’라고 말하려는데 와잎이 “여긴 생맥 없지?”라고 물어왔다.(색맹이니? 안 보이니?)

우리는 에일맥주를 가져온 뒤 안주로 한치를 주문했다. 내가 “한 치 앞도 모르는구먼~”이라고 말장난을 하는 순간, 돈틀러와 와잎은 신청곡 종이를 찾으러 가버리고 없었다. 돈틀러는 터보의 , 와잎은 핑클의 . 둘은 신나서 1990년대 가요들을 써내려갔다.(그게 다 나오나 봐라~ 여기 형님은 아무거나 틀어주지 않아~ 음하하) 그러나 이게 뭔 일. 둘이 신청한 노래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온 단골을 위한 배려였다. 둘은 안무를 따라 한다고 꿀렁꿀렁 찧고 까불었다. 난 고개를 파묻고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한테 전화 좀 해서 말려봐, 아들~.” 그날의 술자리는 대학로 부근 어묵집에서 소주 3병을 먹고서야 끝이 났다.

X기자 xreporter21@gmail.com(써도 메일도 안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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