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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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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가진 사람들이 더 행복할까

이무석 전 전남대 의대 교수가 말하는 종교적 삶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형상은 부모상과 연결돼”
등록 2018-03-15 16:52 수정 2020-05-02 19:28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의 작가 리처드 도킨스의 말이다. 숱한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의 공격에도 종교는 원시시대부터 번성해왔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기 전에 ‘호모 릴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였다.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삶이 예측 불허한 고통의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를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할까? 이른바 ‘처치고어’(churchgoer)라는 기계적이고 실용적으로 종교를 지닌 사람도 종교가 없는 사람보다 행복할까? 어떤 사람은 맹목적으로 신을 믿는데, 어떤 이들은 왜 본능적으로 신을 거부할까? 어떤 자세로 종교를 가져야 행복에 기여할까?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많은 칼럼과 강연을 통해 종교적 삶을 설파한 이무석 전 전남대 의대 교수에게 물었다. 국내에 5명뿐인 국제 정신분석가인 그는 ‘정신분석’이란 단어가 낯설던 때부터 정신분석을 해왔다. ‘자존감’이란 말이 드물던 시대에 책 을 펴냈으며, 17만 부가 팔린 등 여러 베스트셀러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연구에 의하면 신앙이 있는 사람이 병에 잘 걸리지 않고 혹 걸려도 잘 치료된다. 종교가 있다는 건 마치 어린아이가 낯선 동네에 갈 때 든든한 아버지와 함께 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다만 “종교로 낮은 자존감을 치유받을 수도 있지만 종교를 통해 자존감을 보상받으려 하면 과도한 자기도취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 “고급 종교는 인격을 성숙시키며 어른으로 살게 한다”고 말했다.

든든한 보호자가 있느냐 없느냐 신앙 활동이 삶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즉, 종교의 유무와 행복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다. 연구에 의하면,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보다 병에 잘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 병에 걸려도 치료가 더 잘된다고 한다. 의사들의 96%가 신앙이 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비교적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종교가 있다는 건, 마치 어린아이가 낯선 동네에 갈 때 든든한 아버지와 함께 가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깡패가 나타나도 아이는 두렵지 않다. 인생은 낯선 동네와 같다. 그 동네에는 깡패도 많다. 실패와 좌절, 절망과 억울함, 그리고 질병 등이다. 정신의학에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불안을 ‘죽음에 대한 불안’이라고 한다. 죽은 뒤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일 뿐이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를 많이 본다. 어떤 환자는 두려워하며 죽지 않으려고 발악을 한다. 공포에 질려 죽어가는 분들도 있다. 신앙을 가진 환자들은 오히려 회진 온 의사를 위로한다. 편하고 밝은 마음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떠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신앙을 갖게 된 의대 교수도 있다. 신앙이 있건 없건, 누구나 병에 걸리고 인생의 시련을 겪는다. 든든한 보호자가 함께 있다는 게 무신앙자와 신앙자의 큰 차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역경 속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

평소 신앙이 없던 사람이 시련을 겪으며 신앙의 길로 접어드는 일이 많다. 왜 그런가.

인간은 자신의 무력함에 직면할 때 신을 찾게 되고, 자기 능력의 한계를 발견할 때 도움을 줄 대상을 찾는다. 그래서 실패의 순간은 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만사형통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신의 형상은 부모의 이미지와 연결됐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을 자비와 사랑의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처벌과 응징의 신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부모상과 연결돼 있다는 거다.

그렇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믿고 있는 신의 이미지는 유아기 때 부모의 이미지’라고 말했다. 개인이 가진 신의 이미지는 부모 이미지와 연결돼 있다. 단순 논리로 획일적인 결론을 내는 것은 위험하지만, 인간은 마음의 상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기에 부모 이미지를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한 여성 심리학자는 하나님과 대화를 많이 하고 친근한 관계를 갖고 사는 분이었는데 그 관계의 특성이 유년기 자기 아버지와 가졌던 관계와 같았다. 좋은 아버지와 사랑받는 딸의 관계가 신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유년기에 부모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실감하지 못한다. 자신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은 나를 싫어하실 거야’라고 생각한다. 처벌하는 부모를 가진 사람은 ‘징벌자 하나님’만 생각나고 두려워서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낮은 자존감 회복하려는 심리적 시도그럼 부모를 불신하는 사람은 신도 불신하기 때문에 신앙을 갖기 어려운가.

그렇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 얘기만 나오면 화를 내거나 혐오감을 느낀다. 이런 부정적 반응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데, 하나님을 내면의 부모상이나 다른 상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혐오스러운 부모’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신앙을 갖기 어려운 심리적 환경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생애 초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랑받지 못하면 자존감이 약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하니까, 이를 통해 낮은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을 듯하다. 신앙 활동은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심리적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은 이들은 열등감이 심하고 자신을 쓸모없는 하찮은 존재로 본다.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무시하는 듯해 괴로워한다. 이런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기독교에선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귀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매우 매력적이고 치유적인 가르침이다. 하지만 종교로 낮은 자존감을 보상받으려다 반작용으로 과도한 자기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종교적 과대망상에 빠질 위험이 높다.

“고급 종교는 성숙한 인격을 갖게 돕는다”‘종교가 있는 게 삶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실용적인 필요성으로 종교를 가져도 삶에 큰 영향이 있을까.

실용적 필요성으로 만들어진 신앙은 자기암시 정도의 효과밖에는 의미가 없다.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히면 믿음은 공중분해된다.

종교 때문에 가정도 버리고 재산도 다 갖다 바치는 광신교도에겐 어떤 심리적 문제가 있을까.

광신도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종교로 풀려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죄책감이 심한 사람들은 처벌 불안이 심하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죄 행위를 한다. 자기 처벌적 행위, 즉 자학 행위를 한다. 전 재산을 바치거나 자기 성기를 면도칼로 자르는 일도 있다. 자학 행위를 통해 스스로 벌을 받았다고 위안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죗값을 치렀다고 믿으며 죄책감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심리적 이유는 무엇인가.

사이비 교주를 이상적인 인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전능한 인간상(Omnipotent Object)을 교주에게 투사하면 교주가 신이 된다. 이런 내적 대상이 유아기 때 부모상이다. 유아기 때 아이들에게 아빠나 엄마는 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다. 이런 심리 과정은 무의식에서 일어나기에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무의식은 비합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남들은 이해 못하는 신앙의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설득이 안 돼, 논쟁이 무의미하다.

종교가 정서적 안정 외에 인격적 성숙에도 영향을 끼치는가.

고급 종교는 성숙한 인격을 갖게 돕는다. 성숙한 인격이란 어른다운 인격을 말한다. 어른이 아이 같은 미숙한 행동을 하면 병든 인격이 된다. 아이들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웃을 사랑할 줄 안다. 진정한 신앙심을 가진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성숙한 인격을 지닌 어른이 될 수 있다.

선생은 모태신앙인가.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의과대학에 들어간 뒤 ‘한국대학생선교회’(CCC)라는 기독교 동아리 활동을 했다. 겨울 수련회 때 라는 전도 소책자를 통해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했다. 믿음이 좋은 아내가 신앙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신앙은 단칼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그루의 나무처럼 씨앗이 심어져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듯이 자라는 과정을 밟는다.

신앙을 가진 뒤 삶에서 달라진 점이 있나. 신앙이 없었다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앙이 없었다면 내적 평안이 없었을 것이다. 허무하고 우울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든든함이 있다. 내가 무능하고 부족해도 나를 사랑하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을 모시고 있다. 나는 의과대학에 다닐 때 결핵에 간염까지 질병이 겹치는 시련을 겪었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먹으면 간이 나빠져서 구토증이 왔고, 간을 지키려 결핵 약을 끊으면 각혈을 했다. 가난한 고학생이던 내게 진퇴양난의 절망적 상황이었다. 내과 교수님은 “살 궁리나 하게”라고 충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뒤 병이 나았고, 의사도 됐다. 당시 나는 기도할 수 있었기에 절망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환자들의 심리를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의사가 되었다. 이후 나는 불행한 일을 당하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시고자 하시는 계획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라고 반문한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죽을 때 주께서 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 이제 나하고 같이 천국으로 자리를 옮기자”라고 하실 것이기에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신앙이 있으면 완벽하게 행복하고 평안한가.

오해 없기 바라는 것은, 지금 내가 완벽한 평안을 누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때때로 엄습하는 현실적 좌절과 분노, 우울과 불안은 순간순간 나를 공격한다. 하지만 신앙 덕분에 기도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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