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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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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를 허하라

분단의 상징 DMZ 꿰뚫는 동서 남북 통로에 이어

한반도 중앙을 연결하는 평화의 길 내자
등록 2018-04-24 09:03 수정 2020-05-02 19:28
북한 열차가 2007년 5월17일 동해북부선을 따라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강원도 고성 제진역에 도착했다. 공동취재사진

북한 열차가 2007년 5월17일 동해북부선을 따라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강원도 고성 제진역에 도착했다. 공동취재사진

“예엣~! 50m라고 했습니까?”

“왜 그리 놀라십네까? 너무 넓습네까?”

“아닙니다. 50m면 너무 좁은 거 아닙니까?”

“철도랑 도로 놓는데 50m면 충분하지 무슨….”

“그래도 좀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통신선도 놓아야 하고.”

“그럼 얼마나 더 넓히면 되겠소?”

“동쪽은 100m, 서쪽은 250m는 되어야….”

남북은 2000년 6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15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해 열린 제1차 남북 장관급회담(2000년 7월29~31일 서울)에서 ‘경의선 철도의 끊어진 구간을 연결’하는 데 합의했다.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2000년 8월29일~9월1일 평양)에서는 문산~개성 도로 공사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50여 년 만에 열린 남북의 길

남북한 간 철도·도로 연결 공사는 군사적으로 민감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DMZ)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군의 협조가 필수다. 이전까지 DMZ는 정전협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DMZ 내 구간을 개방해 철도와 도로를 건설하는 문제는 유엔사와 사전 협의가 필요한 복잡한 문제였다. 국방부는 유엔사로부터 대북 협상권을 위임받아 남북이 직접 협의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합법적 기반을 만들었다. 또 북한과 유엔사 간에 DMZ 내 개방구역을 남북관리구역으로 설정하는 데 합의했다.

2002년 9월17일 남북은 마침내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 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협상에 나서기 전 우리는 북한이 남북관리구역의 폭을 넓게 주장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북한이 남침 진격로를 확보하기 위해 지뢰를 제거하려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라 예측하고 나름 마지노선을 준비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북한은 동서 모두 폭을 50m로 한정하자고 주장해 우리 협상단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북한이 오히려 우리 군이 폭을 넓게 요구해 북으로 진격로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결국 우리가 북한을 설득해 개성으로 향하는 서쪽에는 서울~신의주 철도와 문산~개성 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폭 250m의 공간이 열렸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동쪽에는 동해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폭 100m가 뚫리게 됐다.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남북은 이 지역 내 지뢰를 제거했다. 우리는 북한 지역의 지뢰 제거도 도왔다. 50여 년 만에 약 250km의 군사분계선과 DMZ에 350m 구멍을 뚫고 잘려나간 철도와 도로를 다시 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남북으로 열린 공간을 통해 개성공단이 숨 쉴 수 있었고, 금강산도 육로로 가볼 수 있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역사적인 장면도 바로 이 길 위에서 이뤄졌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 제1조 1항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2km의 지역을 DMZ로 정하고 있다. 폭 4km의 DMZ는 굴레처럼 한반도의 허리를 휘감고 있다.

DMZ 유연화가 평화체제 첫걸음

한반도 중심에 놓인 DMZ는 그 이름이 무색하리만큼 세상에서 가장 무장화되고, 지뢰가 조밀하게 묻힌 땅이다. DMZ는 비무장지대라는 명칭과 달리 오히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고 충돌 가능성을 가중해왔다. DMZ로 인해 남북 만남이 가로막혔고 마음마저 단절됐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통해 평화를 만들려 해도, 남북이 경제공동체를 구현해 공동 번영하려 해도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DMZ를 피해갈 수 없다.

4월27일에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관심과 기대로 가득하다. 곧이어 열릴 북-미 정상회담에 디딤돌과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단순히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마중물이나 건널목에 그쳐서는 안 된다. 비핵화와 북-미 관계 결과에 남북관계의 미래가 결정돼서는 안 된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는 남북관계만의 특별한 내용이 담겨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6·15 공동선언 정신을 계승하고 10·4 공동선언의 이행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에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 남북 기본협정을 체결하고 다양한 분야와 수준에서 남북대화를 정례화해 남북관계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북한을 제재하는 국면에서 남북이 경제적으로 깊은 결실을 맺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고 군사적 신뢰를 쌓는 노력 먼저 해야 한다. 종전 선언이나 평화체제를 가능케 하려면 무엇보다 현재의 정전체제를 정상화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DMZ를 태생적 목적에 맞게 비무장화하는 것이다. 정전협정 제1조 1항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남북 종전 선언을 한다 해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정부가 그리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세 축인 동해벨트, 서해벨트, DMZ벨트를 현실화하려면 반드시 DMZ를 유연화해야 한다. 이미 DMZ의 동과 서엔 각각 한 곳씩 지뢰를 제거한 남북 연결통로가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중앙을 지나는 3번 국도와 경원선 지역에 지뢰를 추가로 제거해보면 어떨까. 이곳을 뚫는다면 남북이 서로에게 남침과 북진의 진격로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과거 미국과 소련의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미·소 양쪽 모두 상대방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기로 한 조약)처럼 역설적으로 군사적 신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DMZ벨트를 현실화하려는 첫걸음이자, 동해벨트와 서해벨트를 관통하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 통로는 앞으로 러시아가스관이 평택항으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DMZ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남쪽이 먼저 DMZ의 남쪽 2km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런다고 우리 안보에 구멍이 뚫리거나 군사적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이미 많은 전방 GP(감시초소)는 무인화됐다. 또 휴전선을 지키는 데는 첨단감시와 방어시설로도 충분하다. 옛날처럼 ‘손에 손 잡고’ 경계근무를 서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국민이 불안감을 느낄 순 있다. 실제와 상징 사이의 틈을 극복해야 한다.

휴전선 남쪽 지역 2km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만들어보자. 이를 통해 우리 마음속 두려움과 걱정으로부터 2km 멀어질 수 있다. 북한을 향해 진정한 신뢰의 발걸음을 두 발짝쯤 내딛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DMZ를 비무장지대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DMZ를 허하면 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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