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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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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피폭 없는 꿀, 와이 낫!

방사성물질 든 지하수를 벌이 마신다면…

건강한 벌·깨끗한 꿀 위한 원전 없는 삶
등록 2017-10-13 14:10 수정 2020-05-02 19:28
벌이 물을 마시고 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벌이 물을 마시고 있다. 위키미디어코먼스 제공

내가 나고 자란 땅은 도시였다. 그것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였다. 그래서 나에겐 도시 아닌 곳에 대한 환상과 향수와 선입견이 있다. 평화로우며,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치열하지 않아도 본성대로 살 수 있는 곳.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내 사고가 편협하게 굳은 것은 아닐까 자주 생각했다.

양봉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도시에선 할 수 없는 것,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농사를 짓는다는 것만으로 끌렸다. 그에 더해 양봉은 도시에 부족한 꽃과 나무와 벌을 불러들이는 행위이기에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취미가 될 거라고 여겼다.

도시에 살아서 모르는 건 숱하다. 새벽 1시까지 지하철이 다니는 곳에 살기에 ‘어둠’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2012년 여름 경남 밀양 송전탑 농성 주민들을 취재하러 갔을 때 처음 ‘진짜 어둠’을 느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너무 흐릿했고 간격도 띄엄띄엄 넓었다. 그때 밀양 송전탑 논쟁은 도시와 시골의 싸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높은 건물은커녕 집도 상점도 드문 밀양을 지나치며 도시가 흡입하는 전기를 보내기 위해 국가 공권력이 시골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순간적으로 깨우쳤다.

잠시 잊고 살던 전력 문제를 떠올린 건, 원전 특집호에 벌과 원전에 대한 얘길 쓸 수 있겠느냐는 길윤형 편집장의 주문이 있어서다. ‘연결이 될까’ 주저하면서도 ‘와이 낫’을 외친 건 내가 자신감이 넘치는 인간이어서는 아니다. 양봉은 벌이라는 생명이 선물한 꿀이라는 음식을 얻는 행위다. 생명과 음식. 원전과 벌과 꿀. 각이 섰다.

국내 원전 위치를 고려할 때 꿀벌이 직접 외부피폭(방사성물질이 몸을 지나가는 상태)을 겪을 일은 드물 것이다. 원전은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 쓰고 다시 고온의 냉각수를 버린다. 그 때문에 원전 주변 동네에는 안개가 많이 발생한다. 건조한 기후에 살기 적합한 벌에게 원전 주변은 매력적인 서식 환경이 아니다.

하지만 내부피폭(호흡·피부·음식물을 통해 몸 내부에서 발생하는 피폭)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4년 김익중 동국대 교수 등이 쓴 책 (반비)를 보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참사로 국민이 경험한 피폭의 90%가 음식물을 통한 내부피폭이었다고 밝혔다. 우리가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한동안 방사선 ‘세슘137’의 이름을 외우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벌은 꿀을 만들기 위해 꽃이 만드는 꽃꿀과 물을 마신다. 양봉할 때 ‘유농약’ 농가 주변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농가에서 뿌린 농약이 지하수에 흘러들어 꽃과 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86년 인하대 석사논문 중에 ‘지하수 방사선량과 인체의 내부피폭선량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이 있었다. 2003년 전남 영광에선 발전소에서 사용한 오·폐수 3천t이 배출된 적도 있다. 물은 계속 흐르니, 옆 동네 사는 벌이 그 물을 마실 수도 있고, 안 마실 수도 있다.

원전 반대는 생명을 살리는 활동이다. 나는 벌이 우리에게 건강한 꿀을 줬으면 좋겠다. 벌도 제 생명을 누리고 환경에 적응해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부피폭이든 외부피폭이든 양쪽 모두 없어야 한다. 이미 망가진 환경(도시)에서 산다고, 온전히 깨끗하고 건강한 식품을 요구하는 건 위선이자 과욕이라는 나약함은 버리자. 원전 없는 삶. ‘와이 낫’!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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