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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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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테, 카이테, 카키마쿠루

착공 147일 만에 준공 허가 뒤 입주

조금 불편하지만 주택의 삶도 괜찮아
등록 2017-04-07 10:40 수정 2020-05-02 19:28
147일간의 여정 끝에 집이 지어졌다. 작은 정원으로 달빛이 떨어지는 주택에서의 삶은 괜찮다. 건축중심 제공

147일간의 여정 끝에 집이 지어졌다. 작은 정원으로 달빛이 떨어지는 주택에서의 삶은 괜찮다. 건축중심 제공

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1989년 만든 성장영화다. 꼬마 키키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엄마 피를 물려받았다. 고양이 ‘지지’와 이야기도 나눈다. 13살 되던 날, 키키는 자립을 위해 사람들의 마을로 ‘마녀 수행’을 떠난다. 성장통이 따른다. 어느 날, 키키는 빗자루 타는 법을 까먹는다. 사람들이 새로운 이들과 만나고 배우고 닮아가며 성장하지만 한편으로 그 때문에 정체성을 잃어가는 게 성장 방식인 탓이다. 우연히 만난 화가 우르슬라가 슬픔에 빠진 키키를 돕는다.

“마법도 그림과 비슷하구나. 나도 그림이 잘 안 그려질 때가 있어.”

“정말? 그럴 때 어떻게 해. 나, 예전에는 아무 까닭 없이 그냥 날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날았는지 모르게 됐어.”

“그럴 때는 막 버둥거리면서 그림을 그려보는 거야.”

그리고 우르슬라가 일본말로 이렇게 덧붙인다.

“카이테, 카이테, 카키마쿠루(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거지)”

‘길은, 가면 있는 것’이라 했다. 멈추지 않고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키키는 사색과 고요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끝내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

‘월급쟁이 집짓기’ 마지막 편이다. 굳이 키키 얘기를 한 것은 우리 집을 지은 사람들의 얘기가 하고 싶어서다. 집짓기에는 지면에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특히 시공 쪽은 애초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땅을 고르고, 뼈대와 벽체를 세우고, 지붕·창호를 올리고, 계단과 방을 만드는 일 등 대부분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어떤 공정을 봐도, 이들의 숙련도는 놀랍다. 크고 거친 목재를 깎고 자르거나, 위험천만한 전기를 다루는 일이 그렇다. 빈틈없이 타일을 잘라 붙이는 일, 벽지 바르는 일, 전등 매다는 일, 가구 짜는 일, 화장실 만드는 일, 페인트칠을 비롯해 입주 직전 청소와 건물 주변 정리까지 하나같이 솜씨가 놀랍다. 얼마나 힘든 시간과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면 저런 단계에 오를 수 있을까. 더는 앞길이 없는 듯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들도 우르슬라가 마법 주문처럼 외었던 ‘카이테, 카이테, 카키마쿠루’를 되뇌지 않았을까.

이들의 힘으로 집은 결국 완성됐다. 3월21일 구청에서 ‘건축물 사용승인서’를 내줬다. 준공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착공 뒤 꼭 147일이 걸렸다. 여전히 처리해야 할 것이 많다. 건축비 관련 잔금 처리 문제가 남았다.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 계산도 꼼꼼히 해야 한다. 건물 취득세를 낸 뒤 등기부등본도 만들어야 한다. 옆집 식구를 찾는 것도 ‘큰일’ 가운데 하나다. 집 안에는 커튼, 옷장, 소파, 식탁처럼 사야 할 것이 많다. 집을 옮기면서 유치원과 회사가 멀어진 것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적응해야 한다. 아파트와 달라서 생기는 불편함도 있다.

그래도 규격화되지 않은 집을 지은 덕분에 가족이 좋아하는 것이 많이 채워졌다. 큰아이는 2층 침대 위 칸에, 작은아이는 아래 칸에 자리잡았다.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고 나면, 이젠 혼자 방에서 자려고 엄마·아빠를 밀어낸다. 거실에 텔레비전도 없앴다. 어른, 아이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 한 뼘밖에 안 되지만 나무가 있는 정원도 좋다. 설렘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이겠지만, 그래도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괜찮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월급쟁이의 집짓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글을 읽어준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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