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서정민의 뮤직박스 > 내용   2008년09월04일 제726호
아일랜드 밴드답다

스크립트의 <더 스크립트>

▣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고 아일랜드를 곱씹어봤다. 수백 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다 20세기 들어 독립한 나라. 그 과정에서 생겨난 이념 갈등의 골로 형이 동생을 죽이게 된 나라. 우리가 그렇듯 아일랜드인들도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봉인해뒀을 것 같다. 깊은 아픔일수록 아름답게 분출되는 법일까? 아일랜드는 음악 강국이다. 시네이드 오코너, U2, 크랜베리스, 엔야, 코어스부터 음악영화 <원스>까지. 아일랜드 음악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가슴으로는 느껴지는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최근 팝계는 아일랜드 밴드의 전통을 이을 대형 신인이 오랜만에 나타났다는 기대감으로 떠들썩하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3인조 밴드 스크립트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데뷔 앨범 <더 스크립트>는 나오자마자 영국과 아일랜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백인음악인 록과 흑인음악인 리듬앤드블루스(R&B)·솔을 접목한 마룬 파이브의 트렌디함, 제이슨 므라즈의 그루브 넘치는 보컬 플로, U2의 묵직하고도 진중한 사운드, 콜드플레이의 감미로운 멜로디 등을 한데 버무린 위에 자신들만의 강렬한 색깔을 덧칠했다. 아일랜드 밴드답다. 대본을 뜻하는 밴드명에 걸맞게 노랫말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첫 싱글 <위 크라이>는 가난한 미혼모 제니, 좌절한 뮤지션 존, 꿈을 상실한 주부 메리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사집을 보면 곡 하나하나가 한 편의 대본이다. 내 미천한 영어 리스닝 능력이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