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잔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연주한다>
▣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난 더위에 약하다. 불어난 살집에 체질이라도 바뀐 걸까? 언제부턴가 여름만 되면 땀을 달고 산다. 뙤약볕이 내리꽂히는 거리를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럴 때면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음악 대신 시원한 바람이라도 슝~ 하고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마저 든다.
요즘 뜨거운 거리에서 즐겨듣는 음악이 있다. 시규어 로스의 새 음반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잔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연주한다>. ‘승리의 장미’라는 뜻의 시규어 로스는 아이슬란드 국민 밴드다. 북극과 맞닿은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생각만 해도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선입견 때문인지 몰라도 시규어 로스의 신비로운 미성 보컬과 어우러진 몽환적 사운드를 들을 때마다 서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을 받곤 한다.
이들 음악을 두고 록에서 진일보한 ‘포스트 록’이라고 하거나 누구는 대자연과 우주의 소리 같다 해서 ‘스페이스 록’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장르를 따지는 건 무의미할 것 같다. 기타를 첼로 활로 켜고 드럼 스틱으로 베이스를 두드리며 스스로 창조한 ‘희망어’로 노래하기도 했던 이들이다. 그저 듣고 느끼면 그만이다. 이들 음악엔 특별한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이들이 2006년 월드 투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벌인 무료공연 투어를 담은 다큐멘터리 DVD <헤이마>(집으로)도 권한다. 아이슬란드 풍광과 하나가 된 음악 속에서 헤엄치다 보면 피서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