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침대부터 송이버섯까지…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변해온 남북 선물 교환사
▣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선물에는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무조건 비싸다고 상대를 감동시킬 수 없다. 지나치면 뇌물이다. 외교관계도 마찬가지다.
선물은 문화외교의 연장이다.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리처드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판다 두 마리를 선물했다. 미국으로 간 판다는 미-중 우호의 상징이 됐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상 외교에서 우리는 어떤 선물을 고를까? 아무래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상징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신라시대 왕관 모조품(2002년 김대중), 도자기(2003년 노무현), 전통 활(2008년 이명박) 등이 선정됐다. 남북관계에선 어떤가? 선물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변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남쪽은 입히고, 북쪽은 스트립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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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6월13일 북한으로 귀환하는 어부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직후 선물로 받은 옷을 남쪽으로 벗어 던진 뒤 팬티 차림으로 북쪽 판문각 계단을 오르고 있다.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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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6월13일 판문점에서 난데없는 스트립쇼가 벌어졌다. 그날은 북한 어부들을 송환하는 날이었다. 유엔사 쪽과 북한군 사이에 인수·인계 준비가 끝나고, 버스 문이 열렸다. 어부 8명은 고급 신사복을 입고, 들기도 힘들 만큼의 선물 보따리를 들고 분계선을 넘었다. 북쪽 군사정전위원회 장교가 이들을 모아놓고 뭐라 지시를 했다. 그러자 어부들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서 남쪽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시계도 풀어 던지고, 구두와 양복도 벗어던졌다. 러닝셔츠까지 벗어던지자, 이제 하나 남았다. 어부들은 정치장교에게 묻는 듯했다. 공동경비구역에는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다행히 팬티는 걸칠 수 있었다. 그들은 맨발로 판문각 계단을 올라갔다.
이런 풍경, 처음은 아니다. 1960년 7월30일 북한의 어뢰정 1척이 남북 교전으로 침몰되고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승무원들을 송환할 때도 비슷했다(〈JSA 판문점〉 이문항 지음, 소화 펴냄, 2001). 남쪽은 굳이 양복을 입혀 선물을 들려 보냈고, 북쪽은 스트립쇼로 대응했다. 요즘은 달라졌다. 표류 어부 등 송환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왔을 때의 옷차림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남북 당국 차원에서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대화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남쪽에서 어떤 선물이 북쪽으로 갔는지는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가보면 알 수 있다. 1978년에 문을 연 이곳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계 178개국의 국가수반이나 저명인사에게 받은 21만여 점의 선물이 전시돼 있다.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왔다. 필자도 두 번 가봤다. 스탈린이 보낸 방탄 기차, 장쩌민이 보낸 수예화와 도자기 꽃병, 피델 카스트로가 보낸 악어가죽 가방이 눈길을 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미국 사람들의 선물도 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마이클 조던이 사인한 농구공을 보냈다.
국제친선 전람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곳은 남쪽 인사들의 선물을 모아놓은 ‘남조선관’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선물을 보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은(銀) 담배함과 재떨이 세트, 은 칠보 꽃병을 보냈다. 1972년 5월 박성철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다. 김일성 주석에게 보내는 선물로 비서진은 전자제품을 선택하려 했으나, 박 대통령은 그럴 것 없다며 조선자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의 선물은 다기 세트와 금수저가 전시돼 있다. 1985년 허담이 김일성 주석의 밀사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허담은 김 주석이 원래 선물을 하려다 “얼마 안 있다가 올 텐데, 그때 평양에서 서로 선물을 교환하자”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적극적이었다. 대신 허담은 자신의 명의로 전두환 대통령에게 곱돌 찻잔 세트와 자개 화병을 선물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허담에게 텔레비전과 VTR 각 한 대, 양복지와 한복지 한 벌, 남녀 손목시계 등을 주었다. 선물 중에는 ‘솔’ 담배 스무 갑도 포함됐다. 담배 선물이 자연스러운 시절이었다.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 받은 선물 중에도 북한의 귀한 성천담배가 포함돼 있었다.
평화통일 진돗개와 단결자주 풍산개
노태우 대통령의 백자 선물도 전시돼 있다. 유일하게 김영삼 대통령의 선물은 없다. 재임 기간에 변변한 남북회담을 한 적이 없었으니, 선물을 교환할 기회도 당연히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물로는 60인치 TV가 전시돼 있다. 물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건넨 선물은 VCR나 전자오르간 등이 더 있지만, 아무래도 뜻깊은 선물은 남북 양쪽의 명견인 풍산개와 진돗개였다. 암수 한 쌍씩 북으로 간 진돗개의 이름은 ‘평화’와 ‘통일’이었고, 북에서 보낸 풍산개의 이름은 ‘단결’과 ‘자주’였다. 개 이름에는 남과 북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단결이와 자주는 남쪽으로 내려와 이름이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개 이름을 ‘우리’와 ‘두리’로 지었다. 2007년 말 기준으로 평화와 통일이는 7년 동안 40여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대부분 북한 각지의 동물원으로 흩어져서 자라고 있다. 우리와 두리 역시 서울대공원으로 보내졌고, 그동안 28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몇 번 일반 분양을 한 적이 있는데, 경쟁률이 대단했다고 한다. 풍산개 자체가 귀하지만, 정상회담 선물이라 믿을 수 있는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남조선관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경제인들이다. 방에 들어서면 우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보낸 검은 다이너스티 승용차가 눈에 띈다. 1989년 정주영 회장이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준 선물이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이 밖에도 시계 200개, 트럭, 불도저, 지게차 등을 주었다. 남북관계가 활성화되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선물들은 일본의 니가타항에서 원산항으로 들어가야 했다. 남조선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선물은 에이스침대가 보낸 침대와 가구 세트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대형 TV,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노트북 컴퓨터와 가전제품, 구본무 LG 회장의 자서전 등도 눈에 띈다.
남쪽 언론사 중에는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의 선물이 전시돼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동아일보>다. 김일성 주석이 ‘보천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내용을 담은 1937년 6월5일치 호외 동판에 금을 입힌 것이다. 1998년 10월 김병관 회장 등이 방북했을 때 준 선물이다. 김일성 주석의 항일투쟁을 정권의 정통성으로 삼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할 때 적절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가장 보수적인 신문 중 하나인 <동아일보>가 이런 선물을 했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1998년 9월에 준 보석이 박힌 손목시계도 전시돼 있다. <한겨레>의 선물로는 2001년 2월8일과 9월17일 두 차례 방문 당시 준 나무밥상, 만년필, 한겨레 창간호 동판 등 3점이 진열돼 있다.
그러면 북한은 주로 어떤 선물을 보냈을까? 들쭉술이나 도자기류 등이 일반적이나, 대표적 선물은 송이버섯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인 9월11일 김정일 위원장은 추석 선물로, 함경북도 칠보산에서 생산된 송이버섯 3t을 보냈다. 10kg들이 300상자였다.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대표단과 8월 방북했던 남쪽 언론사 사장단을 비롯해 267명에게 1상자씩 돌아갔다. 남은 33상자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에게 보냈다. 전두환 대통령은 “아웅산 사건 이듬해에 북한에서 보내온 수해물자를 받은 적이 있다”며 흔쾌히 송이를 받아서 주위에 나눠줬다. 그렇지만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낸 송이버섯은 포장된 채로 비서실에 방치됐다. 이후 먹었는지 버렸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매우 흡족해하면서 은수저 1세트를 답례로 북쪽 일행에게 전달해달라며 통일부에 맡겼다. 2007년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은 칠보산 송이 4t을 보냈다. 정부는 사회 각계 지도층과 소외계층, 이북5도민회 관계자 등 3800여 명에게 1kg 정도씩 나눠줬다.
시혜로 접근한다면 해법은 없다
남북관계에서 주고받은 선물이 어디 물건뿐이겠는가? 물건은 의전 절차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회담의 성과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한반도 평화 정착보다 귀중한 선물이 있겠는가? 요즘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으로 시끄럽다. 이명박 정부의 대응 방식을 보면, 마치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을 시혜로 생각하는 것 같다. 관광 중단을 압력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역시 이들 사업을 남쪽에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시혜로 접근한다면 해법은 없다. 호혜로 접근해야 한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제대로 만들어서 바로 우리 아들딸들에게 선물로 물려주어야 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