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래 문화와 북한을 방문한 가수들… 신화와 베이비복스의 춤에 당황하던 관객들도 윤도현 ‘놀새떼’ 노래에 박수 보내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2000년 7월쯤 기업인들과 평양을 방문했다. 대동강가에 있는 옥류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북쪽 여성 접대원들이 노래를 불렀다. 술도 한 순배씩 돌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남쪽 손님들도 노래를 했다. 몇 순배가 더 돌고, 얼떨결에 어떤 분이 지목됐다. 찰나의 순간에 그분은 분위기에 맞을 것으로 생각되는 노래를 불렀다. 한 소절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장내가 술렁였다. <한 많은 대동강>이란 노래였다.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 많은 대동강아’ 그런 가사다. 잘못 골랐다. 그만두기도 계속하기도 뻘쭘한 순간이었다.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북쪽 인사들이 퇴장해버렸다. ‘도발’이라고 화를 내면서.

△ ‘남쪽 놀새떼’ 윤도현밴드가 지난 2002년 9월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아리랑>을 부르던 윤씨가 눈물을 보이자, 평양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정을 나눴다. (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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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도 히트한 <심장에 남는 사람>
평양을 방문할 때, 노래를 잘 골라야 한다. <한 많은 대동강>처럼 전쟁 이후 ‘수복’의 의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면 낭패를 본다. 남북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많이 변했다. 자주 북쪽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제 한두 곡쯤 북쪽 노래를 안다. 어떤 노래가 많이 불릴까? 가장 먼저 남쪽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노래는 <휘파람>이었다. 1990년 평양에서 열렸던 2차 총리 회담 때의 일이다. 남쪽 기자가 <휘파람>이라는 노래를 듣고 북쪽 기자에게 물었다. “이런 노래가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의 도시 평양에서 유행할 수 있나?” 그러자 북쪽 기자는 “왜 평양은 사람 사는 도시가 아닌 줄 알았나? 이 보라우요,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라도 있을 것 다 있는 법이오.” 이 노래는 경쾌하고 발랄하며 가사가 쉽고 간결하다.
리종오가 작사·작곡한 <휘파람>과 같은 노래를 북쪽에서는 ‘생활가요’라고 한다. 혁명성이 강조되는 ‘무거운 노래’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 감정을 다룬 노래들이다. 리종오가 있던 ‘보천보 경음악단’이 유행시킨 생활가요에는 이 밖에도 <반갑습니다> <도시처녀 시집와요> <려성은 꽃이라네> 등이 있다. 모두 남쪽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노래들이다.
불멸의 애창곡을 또 하나 든다면 <심장에 남는 사람>이다. 지금도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다.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서정성 깊은 노래다. 한번 들으면 곧바로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노래다. 물론 남쪽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남녀의 이별을 다룬 노래는 아니다. 1989년 제작된 같은 제목의 영화 주제곡이다. 타이어 공장에 초급 당 비서로 부임해온 젊은 당 간부의 동지애를 표현한 노래다.
이 노래의 열성팬들은 다양하다. 2000년 10월13일 일명 ‘고대 앞 사건’이 있었다. 강연을 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을 고려대 총학생회가 정문에서 막았다. 학생들은 ‘나라를 말아 잡수신’ 대통령에게 후문이나 쪽문을 통해 들어가면 막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분의 좌우명이 ‘대도무문’(大道無門) 아니겠는가? 정문으로 가겠다고 우기면서, 그렇게 14시간 동안 자동차 안에서 버텼다. 그런 대치 상황에서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겸 고려대 재단이사장이 나타났고, 자동차 안에 들어가서는 “김정일을 너무 욕하지 마라. 북에도 좋은 노래가 있으니 한번 들어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노래가 바로 <심장에 남는 사람>이다. 1998년 10월 김 회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물한 ‘조선영화음악’이라는 CD 안에 들어 있던 노래였다. 김 회장은 그 노래가 너무 좋아 차에서 즐겨 듣는다고 말했다. 10월16일 상도동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너그 회장한테 술 좀 그만 먹고 다니래라. 대낮에 취해갖고 내 차 안에 들어와 노래 듣자고 하던데, 생각해봐라. 내가 그때 노래 듣게 됐나?”라고 성을 냈다. 그리고 ‘고대 사태는 김정일과 김대중의 불순한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합작품’이라고 비난했다.
김연자와 조용필 단독 공연
그러면 북쪽에서 인기 있는 남쪽의 대중가요는 무엇일까? <아침이슬>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같은 노래는 이미 북쪽 노래방에 입력돼 있을 만큼 대중화됐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남쪽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방북 공연도 줄을 이었다. 북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쪽 가수는 누구일까? 2000년 8월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이미자, 김연자, 은방울자매를 꼽았다. “남자 가수는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물었을 때, 김 위원장은 나훈아와 조용필을 좋아한다고 했다.
김연자의 공연이 가장 먼저 성사됐다. 2001년 4월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야간열차를 타고 함흥으로 갔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그곳에서 현지 지도를 하고 있었다. 함흥에서 공연이 끝나자, 김정일 위원장은 “패티김과 이미자, (일본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장점이 모두 들어 있다”고 칭찬을 했다. <노동신문>은 2001년 4월13일치에 장문의 공연평을 실어 “창법에 민족 정서가 짙고, 기교와 형식이 매우 세련되었다”고 극찬했다. 김연자는 2002년에도 평양 단독 공연을 했다.
물론, 2002년 이미자의 공연이나 조용필의 공연도 성공적이었다. 조용필은 2005년 단독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들 공연에서 평양 시민들의 적극적 공감을 얻은 노래들은 아무래도 일제시대의 옛날 노래들이다. 북한에서는 ‘계몽기 가요’라고 한다. 주로 1920년대 초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나라 잃은 설움을 담은 노래들이다. 1960년대 이런 노래들은 종파주의 혹은 봉건주의의 잔재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해방 전 가요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돼, 1996년 12월에는 <계몽기 가요 선곡집>이 출판되기도 했다. 지금도 노래집이 지속적으로 발간되고 있다.
‘계몽기 가요’야 우리도 잘 아는 노래들이다. 지금도 선술집에서 흔히 부르는 노래들이다. 김연자 공연에서 평양 시민을 울린 노래는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다. 2005년 조용필 공연 때도 마찬가지다. <단발머리>나 <못 찾겠다 꾀꼬리> 등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곡을 부를 때는 관객이 조용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를 때 달라지기 시작해서 <봉선화> <황성 옛터>를 부를 때 관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양 관객이 선호하는 장르는 아무래도 록이나 발라드보다 전통 트로트다.
함께 부를 노래가 더 많아져야 한다
신세대 댄스가수들의 평양 공연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아직 어색해 보인다. 2003년 10월 평양 류경체육관 개관식 때의 일이다. 이선희가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고, 설운도가 <황성 옛터>와 <찔레꽃>을 부를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댄스가수 ‘신화’와 ‘베이비복스’의 공연이 이어지자 객석은 얼음이 됐다. 상상해보라. 무대에서는 화려한 ‘백댄서’들과 더불어 신나게 몸을 흔드는데, 관객은 얼이 빠진 듯 박수도 잊고 굳은 표정으로 무대 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노래할 맛이 나겠는가? 많이 어색했을 것이다. 당시 베이비복스는 리허설 때 배꼽티를 입고 무대에 올랐으나, 북쪽의 요청으로 다른 의상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2002년 9월 윤도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처음 필자도 좋아하는 <너를 보내고>를 불렀을 때, 객석은 조용했다. 윤도현은 당황했다. 마이크를 잡고 “저희 음악이 생소하겠지만 남한의 놀새떼가 신나게 노는 모습을 귀엽게 봐달라”고 하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놀새는 북한말로 ‘오렌지족’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 필승 코리아>를 개사한 <오 통일 코리아>를 불렀다. 관객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아리랑>을 부르다 울컥해져 눈물을 흘렸다. 관객은 노래를 마저 부르지 못하고 눈물을 닦는 윤도현에게 박수를 보냈다.
2008년 초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 공연을 했다. 가능성을 보여준 ‘음악 외교’였다.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대중가요의 교류 역시 마음의 벽을 녹여왔다.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 분단 이전의 노래는 함께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남과 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흔치 않다. 유일한 노래를 든다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 것이다.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 필요한 시대다. 합창의 핵심은 화음이다. 평화를 위한 합창, 통일을 위한 합창을 부를 날은 언제쯤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