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집 등록문화재 지정하기까지, 건축가와 문화재단과 언론이 뒤엉킨 코미디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이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건이었다/ 수많은 꿈이 지나가야 할 통과의례의 난해/ 그 난해의 현대였다….’
시인 고은이 인물시집 <만인보>에서 평했듯, 건축가·문인·화가였던 이상(1910~37)은 당대 문화판을 뒤흔든 기행들로 천재의 신화를 쌓았다. 평론가 장석주씨는 아예 이상의 등장 자체를 ‘한국 현대문학 사상 최고의 스캔들’이라고 단언했다. 문제작 ‘오감도’처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밀교 염송 같은 암호와 의식의 막간을 떠다니는 문구들을 신문 연재 작품에 써갈겨 독자들의 격분을 샀다. 기생 금홍 등 숱한 여인들과의 퇴폐적 연애로 염문을 뿌렸고, 다방을 룸펜 문인들의 아지트로 운영했다. 도망치듯 도쿄로 떠났다가 불온한 용모 때문에 옥살이하고 급기야 결핵에 폐가 녹아 스러져갔던 이 모더니스트는 평생 자기 내면을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었다.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백부 집에 양자로 들어가 눈치를 보았던 불우한 성장사, ‘세상에 맞지 않는 옷’이었던 그의 삶은 후대 제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편집됐다. 소설 <날개>의 서두에서 “박제가 된 천재”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필연적으로 그의 별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건축동네에서 근대 예술사에 균열을 일으킨 이 돌연변이 작가에 얽힌 민망스런 스캔들이 벌어졌다. 지난 5월 중순 언론들은 일제히 서울 통인동 154-10번지에 있는 이상의 옛집이 등록문화재 말소 과정을 밟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4년 창작 산실을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던 이 집이 이상이 3살부터 24살까지 살던 백부의 집이 아니라, 이상이 떠난 뒤인 1933년 필지가 쪼개지면서 집장사들이 지은 집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2003년 말 소설가 현진건의 옛집이 철거된 뒤 근현대 문화예술인들의 옛집에 대한 보존 여론이 거세지자, 충분한 고증 없이 등록 작업을 밀어붙이다 사달이 생긴 것이다. 문화재청은 가옥대장, 지번 등에 대한 충분한 조사연구와 검토가 없었다는 사과성 해명을 내놓았다.
문화재청이 1차적인 책임자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2004년 이상 집터 가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때까지 1~2년 동안의 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 문화재청만 십자가를 짊어질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2003년 1월 중견 건축가 김원씨가 김수근문화재단을 설득해 천재 시인 이상이 스무 해 동안 살아온 집을 매입했다는 사실이 몇몇 일간지와 주간지 등지에 크게 보도됐다. 이 집의 내력이 알려지면서 건축학도들 사이에 비공식 답사코스가 됐다거나, 매입 한옥을 문화사랑방, 기념관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재단 쪽의 복안이 소개됐다. 이듬해 현진건 고택 철거 논란이 쟁점화하면서 재단의 통인동 한옥 매입은 고무적인 선행으로 부각됐다. 등록문화재 지정에는 재단 쪽의 한옥 매입과 이에 대한 대대적 보도가 결정적 요인이 된 셈이다. 한옥 등록 당시 기초조사에 나선 전문위원들 중에도 건축계 인사들이 많았다. 지난해에는 문화유산 보존모임인 ‘아름지기’가 통인동 집의 복원사업에 합류했다는 소식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자신의 상금을 이상 기념관 사업에 기탁했다는 내용 등이 크게 보도됐다. 하지만 이번 등록 말소로 통인동 집에 얽힌 숱한 미담 기사들은 의미 없는 거품이 되어버렸다.
건축동네에서는 재단이 2003년 문제의 한옥을 사들일 당시에도 이상이 살던 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고 전한다. 옷가게, 한자학원으로 쓰이는 지금 가옥은 좁은 필지에 들어선 도시형 한옥인 데 반해, 이상의 집에서 같이 하숙했던 지인의 증언에는 넓은 집터에 안채와 사랑채만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입 당시나 문화재 등록 당시 문헌기록들을 조금만 세심하게 보았더라면, 코미디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후문이지만, 아름지기나 재단 쪽은 서울시, 문화재청 쪽과 별도로 최근 필지 확인 과정에서 이 가옥이 이상과 연고가 없음을 뒤늦게 파악하고 전전긍긍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나와 총독부 건축기사로 일했던 이상에게 건축은 예술혼의 태반과 같았다. 후대 건축동네의 기념사업은 선의야 어떠했든, 결과적으로 이상의 발자취에 불필요한 흠집을 낸 격이 됐다. 베일에 싸인 작가의 고독한 내면세계를 대중과 소통시키는 과제도 이번 스캔들로 더욱 멀리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명분과 욕망에 도취돼 기본 사실 확인조차 없이 여론몰이를 했다는 비판에서 재단과 언론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상이 살지도 않았던 집을 그의 문학혼이 깃든 집으로 포장한 치명적 실수에 대해 언론과 재단 쪽은 더불어 십자가를 져야 한다. 계속되는 김수근문화재단의 침묵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통인동 집터 자체는 여전히 역사성을 지니는 만큼 이제라도 매입 과정의 오류를 해명하고, 보존 활용 방안에 대해 문화동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