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김창석의 오마이논술 목록 > 내용   2007년06월27일 제666호
출세하려면 글부터 쓰라

▣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저 유명한 ‘DNA 이중나선 이론’은 두 명의 합작품이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두 명 가운데 실무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더 뛰어났던 사람은 크릭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왓슨만 기억한다. 왓슨이 <이중나선>이란 책을 썼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책을 두고 “대중적이고 솔직담백하고 멋지고 후련한 책”이라고 했다. 왓슨은 글쓰기 능력 때문에 20세기 가장 위대한 과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됐다.


△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글쓰기는 사회적 발언권을 얻는 지름길이다. 마키아벨리. 조그만 도시국가 피렌체의 평범한 관리였다. 직무능력은 뛰어났지만, 귀족이 아니어서 고위직 진출이 무망했던 그가 역사적 인물인 된 건 순전히 <정략론>과 <군주론> 덕분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없었더라면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탄생하지 못했을 거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과학콘서트>와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가 각각 30만 부와 7만 부 팔리는 성공을 거두면서 두 책의 저자인 정재승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젊은 과학자’에서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로 변신했다. ‘자신의 전공 분야 내용을 글로 써서 대중과 소통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름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글쓰기는 개인의 문화자산이자, 개인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적으로 높일 수 있는 핵심 노동이라는 인식이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시대의 화두인 ‘통합논술’이라는 괴물 때문에 이런 추세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된 뒤에 글쓰기가 더 중요해진 건 주목할 일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메일을 쓰고, 미니 홈피와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최근 한 조간신문을 보다가 ‘와이프로거’(wife+blogger)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누적 방문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블로그를 운용한 전업주부들이 돈도 벌고 명예도 얻어 ‘한국판 마사 스튜어트’를 꿈꾼다는 내용이었다. ‘글쓰기 지수’(WQ·Writing Quotient)는 머지않은 장래에 사회적 성공을 낳는 하나의 기준이 될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서울에 다니는 중·고교 학생들은 올해부터 내신시험에 등장한 서술형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50%나 된다. 주관식 문제보다 더 길고 자세한 글쓰기를 요구하는 시험이다. 아직까지는 개발이 덜 된 탓에 ‘주관식 문제의 변형’ 수준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니 논술 형태의 시험으로 자리잡아갈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된 글로 표현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시험 때마다 혼쭐이 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싫어할 일이 아니다. 글쓰기 시험에 익숙해진다는 건 ‘통합논술’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아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 써놓고 보니 이렇게 요약될 듯싶다. ‘출세하려면 글부터 쓰라.’ 정확히 맞다. 아, 역시 난 좀 천박하다. 그래도 난 ‘꿩 잡는 매’가 좋고, ‘실사구시’가 좋다. 사족 하나. 섹스 칼럼 쓴다고 꼭 섹스를 잘해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글쓰기 칼럼을 쓴다고 글을 잘 쓰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 뜻에서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부탁 말씀이 하나 있다. 혹시 엉성한 제 글을 우연히 대하시더라도 ‘네가 그런 글 쓸 자격이 있느냐’고 따져 묻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