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일러스트 에세이 목록 > 내용   2007년10월25일 제682호
잘난 사람들의 인정

▣ 그림·글 최규석

20대 미모의 여성이 가는 곳마다 남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고민 아닌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가령 동호회 모임에서 술자리라도 하게 되면 꼭 그 자리에 있던 연인들 혹은 남자들 사이에 자신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하는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다. 자기는 그냥 남자들이 베푸는 친절을 예의 차원에서 받아들인 죄밖에 없다고.


고민 참 하찮다 싶어 “니가 예쁘니까 그런 거 아냐”하고 쏴버렸더니 마치 뭐에라도 덴 양 깜짝 놀라며 한사코 자신은 예쁘지 않단다.
예쁘단 소리 자주 듣지? 미팅 후에 애프터 신청 거의 받지? 헌팅 당해본 적 있지? 이어지는 개별 질문들에 모두 ‘예스’라고 답하면서도 제 입으로 “예쁘다”란 소릴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끝내 잡아뗀다.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면 될 걸 뭘 그렇게 물고 늘어지냐 하겠지만,
그 순간 나는 그 친구가 ‘객관적인 지표로 볼 때 예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외모 외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모로 봐도 돈 들어올 구멍은 없는데 근사한 작업실에 가구까지 갖춘 친구에게
“집이 좀 사나 보구나”하면 절대 아니란다. 겨우겨우 기둥뿌리 뽑아서 장만한 거라고.
그런데 뽑을 기둥뿌리 있으면 좀 사는 거 맞잖아!

물론 더 예쁘고, 더 있는 사람들에 비해 못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겸손이 미덕인 것도 맞다.
하지만 내 외모에 만족하든 안 하든 여러 객관적 사실들이 내가 준수한 외모를 가진 인간임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는데도
외모에 대한 타인의 평가나 칭찬에 대해 “아유, 뭘요. 전 정말 평범하게 생긴걸요”라고 대답한다면 그건 그냥 겸손일까?

난 왜 이런 말들이 자꾸 “나 니들보다 덕 본 거 없어. 나도 니들이랑 똑같은 세상을 살고 있어”라는 소리로 들리지?
혹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자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누려온 혜택을 은폐함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도 애초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한 작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내 외모를 칭찬하면 “인물 덕을 좀 봅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부모님이 부동산을 약간 소유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하는 내 친구는 “집이 좀 살아서 작업하기가 낫습니다”라고 말하다가 업계에서 평판이 나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