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무조건 라이브를 강요할 수 있나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이달 초, 일본에 다녀왔다. 보아의 콘서트 취재를 위해서다. 요코하마에 있는 대형 체육관 ‘요코하마 슈퍼 아레나’에 1만2천 명이 운집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기사를 송고하는데 살짝 고민이 됐다. ‘무조건 칭찬만 해도 되는 건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흠잡을 게 없었다. 보아는 2시간 내내 춤추면서도 숨 한번 흐트러지지 않고 라이브로 모든 노래를 불렀다. 반주는 미리 녹음된 MR가 아니라 백밴드의 라이브로 연주됐다. 그들의 연주력 또한 자못 일품이었다. 무대와 조명, 연출과 진행도 과연 음악 선진국 일본다웠다. 그래서 그냥 썼다. 잔소리꾼 엄마도 아니고 잘하는 데 굳이 트집을 잡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데, 보아는 왜 저렇게 라이브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데 한국에선 공연을 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답은 간단하다. 환경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공연 시장이 원체 작기 때문이다. 공연 시장이 작은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공연 인프라의 부재다.
 |

△ 춤도 잘 추고 라이브도 잘하는 보아는 왜 한국에서 공연을 하지 않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공연 인프라의 부재다.(사진/ 한겨레)
|
‘없어 보이는’ 무대 연출의 원인
‘사우나 사운드’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다. 한국 체육관에서 공연을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관람 위치가 조금만 안 좋아도 소리가 울리고 섞인다. 그렇다. 사우나에서 할아버지들이 ‘신고산이~~~~’를 부를 때의, 바로 그 울림과 섞임이다. 비싼 돈 내고 공연을 보러 갔건만 사우나에 온 기분이 들어서야 라이브를 즐길 맛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기존 체육관은 말할 것도 없고 공연용으로 지어진 올림픽홀도 마찬가지다. 사우나 사운드의 원인은 애초 체육관을 지을 때 음향학적인 배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체육관뿐만 아니라 대학에 있는 기념관, 홀 등 대형 공연이 열리는 장소는 다 비슷한 상황이다. 공연을 하기 위한 장소라면 사운드가 좋아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연 기획자나 가수들은 콘서트 장소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거기 사운드 어때?’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어쩌다 한번 체육관 콘서트라도 열려면 아예 음향은 접고 들어가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문제는 또 있다. 해외 뮤지션들이 내한공연을 할 때마다 의문점이 든다. 왜 외국 공연할 때는 화려한 무대 장치를 세우면서 한국 무대는 저리 단출한 것일까. 제작비의 문제도 있겠지만, 어차피 들고 다니는 시설, 한 번 더 설치한다고 해서 몇 배의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답은 이것이다. 갖고 와봤자 설치할 수 있는 장비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공연 DVD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치들은 대부분 세우는 게 아니라 매다는 것이다. 즉, 공연장 천장에 구조물이 설치돼 있어 음향장비, 조명, 무대 몽땅 매달기만 하면 끝이다. 그러나 이런 시설이 안 갖춰져 있으면 철골 구조물을 세워서 여기에 장착해야 한다. 하지만 철근 콘크리트가 아닌 이상 하중이 무거우면 무대가 무너진다. 따라서 설치할 수 있는 무대 장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없어 보이는’ 무대 연출은 이 때문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사운드가 어떻고 무대가 어떻고 다 떠나서, 일단 무대에만 오르면 행복한 게 뮤지션의 심리다. 좋아하는 음악을 눈앞에서 듣기만 해도 더 바랄 게 없는 건 관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있어봤자 수도권이다. 수천 명을 모을 수 있는 체육관 규모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모든 뮤지션이 수천 명을 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소형급 공연장을 찾아다니면서 관객을 만나고 이름을 알리는 건 뮤지션이 엔터테이너가 아닌, 뮤지션 자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일이다. 체육관 콘서트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는 이벤트다. 하지만 그런 공간이 없다 보니 지방에 사는 관객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려면 서울까지 가야 한다. 지방 공연 시장은 더욱 황폐화되고 ‘전국 투어’는 그야말로 다른 나라 얘기가 된다. 중소형 공연장이 진짜 없는 건 아니다. 사실은 넘쳐 흐른다. 군단위 지방자치단체들까지 하나둘씩 갖고 있는 각종 문화회관과 문화센터들 말이다. 이런 공간들을 메우는 콘텐츠가 민방위 훈련 아니면 지역주민 노래자랑밖에 없어서 그렇지, 관에서 발상만 전환하면 얼마든지 콘서트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많다. 관의 발상 전환이란 게 대체 어느 세월에 이뤄지겠냐만.
음반 발매하면 토크쇼 고민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가수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은 방송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은 케이블TV 음악 채널에서도 뮤직비디오를 틀지 않고, 라디오에서도 음악을 틀지 않는다. 그래서 가수들은 새 음반을 발매하면 음악을 들려주기보다는 토크쇼에서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해야 하고, 무슨 가십으로 인터넷 연예 뉴스에 이름을 올릴지 궁리해야 한다. 영화배우는 스크린이, 연극배우는 무대가 있는데 가수에겐 라이브 무대가 없는 것이다. 라이브를 하라고 악플 달기 전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환경도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