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례를 비교해보자. “중국산 활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됐다.” “오스트레일리아산 밀에서 ‘클로르피리포스’가 검출됐다.” 말라카이트 그린은 물고기 양식장에서 미생물 번식을 억제해주는 항균제다. 클로르피리포스는 곡류의 저장·운송 중 벌레의 발생을 막아주는 살충제다. 두 물질 공히 인체 건강에는 치명적이다. 그런데 전자의 사례가 확인되면 언론들이 대서특필한다. 양식어류 기피 심리가 전국을 강타한다. 하지만 후자의 사례는 실제 발생하고 있음에도 전혀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다. 수입 밀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일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것일까.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농산물에 농약을 사용하는 방법을 보면 ‘포스트 하비스트’(post-harvest)란 말이 나온다. 포스트는 ‘후’(後)를 의미하고 하비스트는 ‘수확’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수확한 후에 농약을 뿌리는 것. 농산물을 장기간 보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변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공인된 방법이다. 밀 생산국에서 수확해놓은 밀에 클로르피리포스를 살포하는 것은 포스트 하비스트의 일환인 만큼 불법이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 양식장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하는 것은 공인돼 있지 않다. 그래서 불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포스트 하비스트에 대한 규정이 두루뭉술하다. ‘포스트 하비스트 농산물’의 유통은 허용하되, 국내에서 직접 포스트 하비스트 처리하는 것은 금하고 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훈연 방식에 의한 포스트 하비스트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국산 농산물에는 족쇄를 채우고 수입 농산물에는 아량을 베푸는 모순이 연출되고 있다.

굳이 규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포스트 하비스트는 반드시 피해야 할 구태 중 하나다. 재배 기간 중에 뿌린 일반 농약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수확 전에 농약을 뿌리면 비바람에 씻기고 태양광선에 중화돼 유해성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수확 후의 농약은 밀폐된 공간에 머물다가 곧바로 소비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유해성이 훨씬 크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한 시민기자가 개미를 이용해 수입 밀가루의 독성을 확인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국산 밀가루에 넣은 개미는 멀쩡했지만 수입 밀가루에 넣은 개미는 곧 죽었다는 것이다. 포스트 하비스트의 실상을 알리는 좋은 사례다.

그렇다면 ‘유기농 수입 농산물’은 어떨까. 아무리 유기농 마크가 있다 하더라도 배를 타고 들어온 농산물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거의 대부분 적도를 통과해야 하는 운송 과정은 농산물들에게는 ‘고통의 기간’이다.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포스트 하비스트다. ‘식생활안전기금’이라는 일본 시민단체의 조사 내용이 이 사실을 잘 뒷받침한다. “오스트레일리아산 유기농 밀가루에서 유기인계 살충제 240ppb 검출.” <먹지 마, 위험해!>라는 책에서 이 단체는 이렇게 폭로했다. 일반 밀가루보다 농약이 오히려 더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수입 농산물 문제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고질적인 포스트 하비스트는 늘 안전지대에서 보호를 받는다. 활어 속의 말라카이트 그린이 위험한 것처럼 밀 속의 클로르피리포스도 위험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수입 농산물 거의 대부분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