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이원재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7월20일 제619호
스타벅스는 왜 길목마다 있을까

노출 빈도 높이고 브랜드의 중요도 각인시키는 도시 중심가 선점전략… 경쟁 브랜드가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 원천봉쇄, 월마트도 마찬가지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이주의 용어

전략적 움직임(Strategic Move)

선점 전략(Preemptive Strategy)

도시 중심가를 걷다 보면 쉴 새 없이 마주치는 게 커피전문점 간판이다. 한때 탁구장 간판이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는 언제부턴가 당구장 간판으로 바뀌었고, 이내 PC방 간판이 되더니 이제 커피전문점이다.

커피전문점 밀도는 전성기의 당구장 밀도에 못지않아서, 어떤 지역에 가면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같은 회사 커피전문점이 같은 블록에 두 개 자리잡고 있는 게 눈에 띌 정도다. 같은 회사 커피전문점끼리 같은 손님을 두고 경쟁하게 될 판이다.


△ 도시 중심가에 한 블록이 멀다 하고 빽빽이 간판을 내건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위치 선점 전략은 이웃에 들어서는 경쟁 커피전문점의 마케팅 효과를 압도해버린다.

경영 능력이 떨어져서 매장 위치 선정이 혼선을 빚은 것일까? 물론 아니다. 고도로 설계된 전략적 움직임(Strategic Move)이다. 선점 전략(Preemptive Strategy)을 사용해 세계 커피 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기업, 스타벅스 이야기다.

매장당 수익성 떨어져도 광고비로 충당

스타벅스는 사업 확장기에 미국에서 20여 명의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했다. 매장 위치 선정을 가장 중요한 사업 전략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20여 명의 부동산 전문가는 다시 미국 전역을 지역별로 맡아 해당 지역 부동산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목표는 명료했다. 북미 지역 모든 주요 도시의 모든 중심가를 스타벅스 간판으로 뒤덮는 것이었다.

위치가 중심가의 핵심적인 곳이라면, 그 매장이 코너이든 삼각형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간판을 걸 수 있으면 됐다.

지역 부동산 업자가 최적의 입지를 찾아오면, 스타벅스는 그 수수료의 일부를 부담했다. 가장 뛰어난 전문가를 찾아내기 위해, 임대인이 지불하는 수수료에다 웃돈을 얹어준 것이다.

한 도시의 가장 번화한 중심가에 걸려 있는 간판은 제품 마케팅에 세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이 지역에는 매우 많은 사람이 지나다닌다. 노출 빈도가 높다는 것이다.

여기다 ‘중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중요하고 고급스런 상표’라는 이미지를 사람들 머리 속에 각인시킨다. 많은 금융사가 본점 위치로 집세 비싼 서울 명동을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 도시의 여론 주도층이다. 이들의 소비 행태가 도시 전체 소비 행태를 이끈다. 소비 주도층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적어도 하나 정도의 간판은 중심가에 노출시킨다. 그 매장이 비싼 집세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스타벅스는 이 전략을 좀더 밀고 나갔다. 중심가의 간판은 아예 스타벅스가 모두 장악해버린다는 전략이었다. 아예 다른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설 틈조차 없도록 말이다. 매장당 수익성이 떨어지겠지만, 그 손실은 광고비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스타벅스는 대중매체 광고를 거의 하지 않고도 브랜드 인지도를 빠르게 높였다.

한 블록이 멀다 하고 걸려 있는 도시 중심가의 스타벅스 간판은, 이런 선점 전략의 결과였다. 이미 스타벅스 간판이 빼곡히 걸려 있으니, 다른 커피 회사들은 이제 중심가 매장의 마케팅 효과가 크게 줄어들어버린 것이다.

선점 전략이란 이렇게 상대방이 쓰고 싶어할 것 같은 전략을 미리 예상하고, 먼저 그 영역을 장악하는 전략이다. 상대방이 그 전략을 쓸 때 얻는 효과가 줄거나 아예 손해가 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선점 전략을 포함해, 이렇게 상대방의 대응을 미리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내리는 의사 결정을 전략적 움직임이라고 부른다.

월마트 역시 정교하게 설계된 선점 전략으로 성공 가도를 달린 기업이다. 지역의 중소 상인들을 무너뜨리면서 성공한 것이야 유명한 이야기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중소 상인과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기껏 시장을 닦아두면, 그 시장에 다른 할인점이 들어오면서 또다시 출혈 경쟁이 시작되곤 했다. 월마트가 처음 시장에 나타난 1970년대, 미국 할인점 업계에는 경쟁자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정리되고 월마트 혼자 시장지배력을 갖게 됐다. 그 선점 전략은 이랬다. 우선 할인점이 들어설 만한 중소 도시를 선정한다. 단, 기존 대형 할인점이 없고 작은 규모의 가게들이 지역 유통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도시를 뽑는다. 그리고 그 도시에 진출하되, 도시 전체 상권 규모에 해당하는 규모의 거대한 부지를 확보하고 매장을 짓는다.

월마트, 한국에서 선점전략의 한계를 깨닫다

그 뒤 출혈을 감수한 가격 경쟁으로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나면, 다른 할인점은 웬만해선 진출을 꿈꾸지 않게 된다. 그 도시에는 월마트 하나만 있어도 된다. 다른 업체가 진출했다가는 출혈 경쟁이 될 것이 뻔하다. 그러니 아예 진출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 슬슬 이익을 내기 시작한다. 그런 결과를 노린 게 월마트의 선점 전략이었다.

벼랑 끝 전략은 국가만 쓰는 게 아니다. 기업의 시장 선점 전략도 일종의 벼랑 끝 전략이다. 상대방이 시장에 진입하면 다 같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서, 아예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게 경쟁의 법칙이다. 요즘 들어 월마트가 지역 주민과 ‘상생 경영’을 외치고 나서는 것도, 어쩌면 냉혹한 시장 선점 전략의 한계를 깨달았기 때문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