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학원 공화국’이다. 국민소득 대비 사교육비 지출 비중이 세계 최고일 뿐만 아니라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한다. 이젠 ‘학원 중독’이라는 병까지 생겼다.

△ 대한민국은 ‘학원 공화국’이다. 사교육은 계급 현실을 반영하고 확대재생산한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의 한 빌딩에 입시 전문학원들이 몰려 있다.(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한겨레> 10월9일치는 이 병의 증상에 대해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만, 아이가 일단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절대로 끊을 수 없고 학원에 안 간다는 생각만 해도 불안과 초조가 엄습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기사에 인용된 한국교육상담연구원 원장 최원호(한영신학대 겸임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치에서 신림 찍고 노량진으로

“상담을 하다 보면 학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다니는 우리 아이가, 왜 성적이 오르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중학생인 그 아이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오후 4시쯤 잠깐 집에 돌아와 간식을 먹고, 다시 학원으로 뛰어가 이르면 11시, 늦을 땐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옵니다. 아이는 학교 숙제는 원래 안 하고, 학원 숙제를 하기에도 빠듯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잠도 모자랍니다. 다른 사람(선생님, 강사)의 말을 듣고 수동적으로 받아적는 시간으로 하루가 채워지고,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은 단 한 시간도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말은 남의 나라 얘기죠.”

‘학원 중독’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11월1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개최한 ‘청년실업, 대학생의 목소리로 말한다’라는 심포지엄에선 “대한민국에는 세계적 3대 입시 클러스터만 남았다. 대치동 입시 학원가를 벗어나 대학 때는 신림동 고시촌에 머물고, 실패하면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로 몰려드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는 진단이 나왔다.(<국민일보> 11월2일치)

최고의 시험이라 할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해도 학원을 완전히 졸업한 건 아니다. 사법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또 학원에 다녀야 한다. 10월 중순 사법고시 2차 시험 합격자가 발표되자마자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는 당장 4곳의 학원이 사법연수원 예비과정을 개설했는데, 몇 과목 제대로 들으면 강의료만 3천만원이 훌쩍 넘는다.(<경향신문> 10월26일치)

학원을 중심으로 한 사교육은 거대산업이다. 사교육 시장의 전체 규모는 13조6천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3%다(덴마크는 0.3%, 프랑스는 0.4%, 미국은 1.6%). 고용 효과가 별로 없는 정보통신 산업과는 달리 고용 창출도 확실하게 한다. 2004년 8월과 2005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의 대학별·전공별 취업률 자료에 따르면, ‘학원강사직’으로 진출한 수가 1만5789명(10.2%)으로 일반 행정사무 1만1948명(7.7%)을 제치고 ‘대졸자 진출 직업’ 순위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조선일보> 2005년 10월3일치)

△ 사교육은 인원이 제한된 그룹에 들어가려는 경쟁의 결과로 번성한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서울대의 입시 합격자 발표장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합격자 명단을 쳐다보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학원 공화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주력산업은 역시 유치원 이전부터 시작되는 대학입시용 사교육이다. 이 시장은 지방자치단체들마저 후원자로 거느리고 있다. 인구 감소에 고민하는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내 학원을 육성하고 서울 유명 강사들을 초청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열성을 보이는 경북 봉화군은 “번듯한 입시학원 하나 없는 등 열악한 교육환경이 인구 유출의 한 원인이 되고 있어 지역 의견을 수렴, 유명 강사의 강의를 마련했는데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경향신문> 8월16일치)

유명 강사에 열 올리는 지자체

이 정도면 ‘학원 공화국’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학원 공화국’은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탁월한 순발력과 유연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므로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지만, 부정적으로 봐야 할 게 압도적으로 크고 많다.

사교육은 계급·계층 현실을 반영하고 확대재생산한다. 소득이 가장 많은 상위 10% 계층의 사교육비는 소득이 가장 적은 하위 10% 계층 사교육비의 10배가 넘는다. 사교육비 부담은 중·하층 한국인의 삶을 전쟁으로 만든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저출산을 부른다.

당연히 역대 정부들은 모두 ‘사교육비 경감’을 외치고 나섰다. 그러나 다 실패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참담하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03년부터 2006년 6월 말까지 전국 사설 입시학원 수가 66%나 늘어났다. 전국 사설 입시학원(보습학원 포함) 수는 총 2만7724개로 전국 초·중·고교 수(1만889개)의 2.6배에 달한다. 학력 간 임금 격차(고졸 근로자 1인당 월급여액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 이상의 월급여액 지수)도 2002년 149.4에서 2005년 154.9로 높아져 사실상 사교육을 부추긴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원인 규명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 대통령 노무현은 청와대에서 제2기 교육혁신위원 25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면서 “사교육은 특별히 욕심을 내서 특별한 재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며 “대학을 가기 위해, 필수 과제를 위해 사교육을 받는 일은 10년 내에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착각이요, 환상이다. 사교육이 없어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적정 수준의 ‘관리’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관리’를 위한 올바른 방향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과잉 사교육 현실에 대해 평준화 정책에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보수신문들은 ‘평준화 정책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준화 정책을 강력히 비판해왔다.

말이 안 되는 비판도 많지만 말 되는 비판도 많다. <중앙일보> 정책사회 데스크 김종혁의 비판은 말 되는 비판으로 경청할 만하다. 그는 강남의 잘나가는 386 논술학원 강사인 대학 후배 Y의 말을 소개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위선이죠. 학부모의 이중성, 나라의 이중성, 결국은 정권의 이중성. 정부가 평준화를 지키겠다고 입시제도를 억지로 꼬아놓을 때마다 가장 재미를 보는 건 강남 사교육 시장이에요. 이젠 가난한 집 애들이 대학 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됐어요. 그런 걸 지켜보고 있으면 미안하고, 가슴 아프죠….”

이어 김종혁은 “김진표와 김병준 두 분의 전직 교육부총리가 떠오른다. 둘 다 자녀가 외국어고에 다녔다.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거기에 간다는데 그걸 반대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놓고서, 자기는 볼일 다 보고 나서 ‘외고는 경쟁을 부추기고 평준화를 깬다’고 비판하고 나서면 그건 위선이다”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보수신문의 어떤 ‘말 되는’ 비판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평준화 교육을 주장한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공무원 자녀부터 거기에 따라야 한다. 그래야 정상이다. 자기 애들은 외국으로 학교 보내고, 외고·과학고에 보내면서 남들에겐 ‘우리는 평준화를 하고 있다’고 떠들어대면, 그리고 그런 법을 계속 만들어대면 그거야말로 위선이다. …이기기 위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뒤에선 온갖 짓을 다하면서 앞에선 ‘경쟁은 나쁜 거야’라고 말하는 이중성을 떨쳐버리자.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경쟁에서 탈락하면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위선도 이젠 그만두자.”

공감한다. 평준화를 주장하는 관료·정치인·지식인들의 자녀 교육에 관한 이중성은 깊이 따져볼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평준화를 폐지하면 사정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 평준화 찬반에 앞서 기존 학벌 체제 기득권 세력의 양보가 전제돼야 한다. 고교평준화실현 강원교육연대 회원들이 고교평준화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이는 전 서울대 총장 정운찬과 창작과비평 편집인 백낙청과의 대담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정운찬은 “나는 계층 간 이동을 위해 평준화를 반대한다. 지금처럼 18살에 한 번 평가받는 것으로 미래가 결정돼서는 안 된다. 고교 입시가 있다면 좀 어려운 가정에서도 전면적 지원을 통해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고교에 입학할 수 있다. 그런 지원을 고교 3학년 때까지 이어가려면 너무 큰 부담이 돼 부자들에게만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낙청은 “오히려 18세도 못 된 15세나 12세 때 미래가 결정돼버릴 수도 있지 않나”라고 반박했다.(<중앙일보> 3월6일치)

정운찬이 ‘계층 간 이동’을 평준화 반대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건 아무리 봐도 옹색하다. 평준화 이전의 ‘중·고교 입시전쟁’을 겪은 정운찬은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겠지만, 학원의 선진화(?) 등을 비롯해 지난 30여 년간의 사회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고교 입시의 부활은 사교육 전쟁에의 참전 연령을 3년 더 낮출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경쟁의 장점을 역설하는 게 훨씬 더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게 아닐까?

과연 평준화 정책이 모든 문제의 원인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평준화를 지속·강화하는 게 답일까? 그것도 아니다! ‘평준화’ 또는 ‘평준화 폐지’가 답이라고 보는 이분법적 시각이 문제의 핵심이다. 바로 이게 내가 이 글에서 말하려는 논점이다.

평준화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 과잉의 해결책으로 ‘공교육 정상화·활성화’를 부르짖는데, 이 또한 착각이다. 이 착각은 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몰린다는 전제에 근거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가?

“임기 내 해결”, 100% 거짓말

한국은 학력·학벌 자본의 위력이 절대적으로 큰 나라다. 철저한 서열 문화와 더불어 왕성한 인맥 문화 때문이다. 학력·학벌의 가치는 우선적으로 인맥 형성에 있으며, 그 인맥엔 서열이 매겨진다. 서열의 상층부 인원은 제한돼 있다. 그 제한된 서열 그룹에 들어가는 건 실질적인 ‘계급투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평생 지속되는 경쟁력이 된다. 그 경쟁력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몇 가지 통계를 살펴보자.

역대 정부별 서울대 출신 장·차관 비율은 전두환 정부 47.2%, 노태우 정부 60.0%, 김영삼 정부 66.8%, 김대중 정부 46.6%였다. 2003년 7월 현재 13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가운데 12명이 서울대 출신이며, 9월 현재 장관급 인사 중 70%가 서울대 출신이었다. 2004년 10월 현재 전국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127명 가운데 87.4%인 111명이 서울대 출신이었다. <월간중앙> 2006년 2월호가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신상정보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 출신 43명, 연세대 13명, 고려대 12명으로 이른바 ‘SKY’ 출신이 68%를 차지했다. <미디어오늘>이 196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중앙지 편집국장 184명의 출신대학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 64%, 고려대 7%, 연세대 6%로 SKY 출신이 77%였다.

사정이 이와 같을진대, 자녀를 둔 부모로서 어찌 서울대 또는 SKY의 마력을 외면할 수 있으랴. SKY가 안 되면 그 다음 서열의 학벌군에라도 들어가려고 투쟁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닌가?

사교육은 인원이 제한된 그룹에 들어가려는 경쟁의 결과로 번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교육 정상화·활성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공교육의 수준과 품질이 세계 최고를 자랑할 정도로 좋다 하더라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그룹에 들어가려는 경쟁심은 공교육 이외의 ‘플러스 알파’를 찾게 돼 있다.

‘학원 공화국’은 교육정책 때문만에 형성된 것도 아니고 교육정책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님을 인식하는 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한국의 서열·인맥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더불어 인내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정권이 자기 임기 내에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면 그건 100% 거짓말이라고 볼 수 있는 안목이 대중적 상식이 되어야 한다.

사교육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존 학벌 체제 기득권 세력의 양보가 필요한데, 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이 모든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잘 아는 국민은 상위 서열에 들어가려는 각개약진식 전투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낙하산 인사와 전관예우도 원인

장기적인 문화개혁을 추진하려면 기존 학벌 엘리트의 행태를 사교육 문제와 연계해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컨대, 낙하산 인사와 전관예우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좋은 학벌로 한번 출세하면 죽을 때까지 돌아가면서 여기저기 좋은 자리와 기회를 독식하는 기존 풍토를 당연시 여기면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대국민 사기극이다. 끼리끼리 뜯어먹는 문화가 낳은 ‘학원 공화국’ 체제의 수혜자로 살면서 학원들에 감사드리기는커녕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뻔뻔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미친 척하고 평준화 문제로 싸움만 하다 보면 ‘학원 공화국’은 우리의 영원한 숙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