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3월17일 오전, 나경원(사진 왼쪽) 대변인이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기자실에 들어섰다. “저는 행복한 대변인이었습니다”라는 말로 마지막 브리핑을 마쳤다.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그는 웃으며 기자실을 떠났다. 잠시 뒤 조윤선(사진 오른쪽) 신임 대변인이 기자실을 찾았다. “열심히 하겠다”며 역시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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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원 전 한나라당 대변인(왼쪽)·조윤선 현 대변인.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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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현직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렇게 ‘따로’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나라당을 오래전부터 출입했던 기자들은 오래된 두 사람의 ‘경쟁심’에서 원인을 찾았다. ‘미모 경쟁’이라고 했다. 비교된 기간은 길었다.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선대위에 함께 영입됐다. 조 대변인은 당시에도 공동 대변인을, 나 전 대변인은 이 후보 특보를 맡았다. 당시 한나라당을 출입하던 남성 기자들과 남성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나경원이 더 예쁘다”는 ‘나경원파’와 “조윤선이 낫다”는 ‘조윤선파’가 나뉘었다. 두 사람의 대결구도는 이미 모교 캠퍼스에서 시작됐다. 나 전 대변인은 서울대 법학과 82학번이고, 조 대변인은 외교학과 84학번이다.
2002년 두 사람의 동시 등장과 경쟁은 낡고 경직된 ‘보수당’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여성 대변인의 미모 경쟁은 2007년 대선을 거치면서 더 확산됐다. 지난해 대선 직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자유선진당을 창당하면서 방송작가 출신의 이혜연 대변인을 영입했다. 이 대변인도 미모로 화제를 모았다. ‘이회창 총재는 미인을 좋아한다’는 말이 다시 돌았다. 이 전 총재는 미모를 갖춘 전문직 출신 엘리트 여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선 당시 창조한국당의 사이버 부대변인을 맡았던 김지혜 부대변인도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2001년 미스 서울 진이었던 김 부대변인은 경남 지역 방송인 ‘KNN’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합류했다.
통합민주당에서는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꾸준히 부대변인을 맡았던 유은혜 부대변인이 첫손 꼽히는 미인이다.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문화방송 기자 출신인 박영선 의원이 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문화방송 앵커 출신인 김은혜씨를 부대변인으로 영입한 것도 이런 추세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각 정당과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자리에 미모의 여성들이 전진 배치되는 것에 대한 판단도 달라지고 있다. 90년대까지는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에도 직면했다. 하지만 이제는 탄탄한 전문지식과 사회적 성취를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진출하고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이런 추세를 ‘알파(ALPHA) 걸’이란 신조어로 표현한다. 활동적이고(Active), 리더십을 갖췄으며(Leadership), 끈기(Patience)와 열정(Heart), 야망(Ambitious)까지 두루 갖춘 여성이란 뜻이다.
한국형 알파걸의 대명사는 이 여성 대변인들이 되는 셈이다. 미모과 지성을 갖춘 여성들은 자신의 매력을 무기로 정치판의 거친 ‘수컷’들의 세계를 정면 돌파하고 있다.
독일의 과학전문 저술가인 울리히 렌츠는 <아름다움의 과학>이란 책에서 “미모는 새로운 권력”이라고 정의했다. 미모가 계급이 되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