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분명히 사의를 표명했는데 사표를 냈다는 소식은 없다. 황우석 사건과 관련 인책론에 휩싸인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 보좌관은 지난 1월10일 이병완 비서실장에게 구두로 사의를 표명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였다. 하지만 사의를 표명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그가 사표를 냈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고 있다. 박 보좌관실의 한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 이상한 사실은 인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도 아직까지는 박 보좌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수차례 천명하신 원칙처럼 행정적·법적 책임에 대한 근거가 정리돼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곧 단행될 청와대 인사에서도 그를 제외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인사에서 박 보좌관을 제외한 이유에 대해 “지금 검찰 수사와 부처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박 보좌관의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렇게 박 보좌관을 감싸고 도는 동안,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하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저자인 그가 황 교수에게 2억5천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는 얼마나 곤혹스러웠던지 지난 1월17일 설명자료를 배포하면서 ‘청와대의 해명’이 아니라 ‘박 보좌관의 해명’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의까지 표명한 그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청와대와 박 보좌관은 별개’라는 홍보 작업은 매우 어색해 보인다.

청와대의 한 수석은 “최근에 박 보좌관을 봤는데 얼굴에 살이 쏙 빠졌더라. 주변 사람들한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하소연했다는데 정말 조작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해명이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오히려 박 보좌관은 황 교수를 책임관리해야 할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몰랐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그는 황 교수를 지원해주기 위한 권력 내부의 네트워크인 ‘황금박쥐’ 등을 통해 황 교수와 권력을 이어주는 통로 구실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박 보좌관은 사표를 정식으로 내지 않은 것일까? 그가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여기에는 철저하게 노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5일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막연한 분위기로 책임을 묻는 일이 없도록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합리적 인책론이란 그럴싸한 포장으로 박 보좌관을 비호하고 나선 셈이다.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의 박 보좌관 비호를 권력이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미련을 아직도 못 버렸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박 보좌관은 청와대 책임론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 보좌관이 무너지면 청와대 책임론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수 있다는 절박한 사정이 깔려 있다는 얘기로도 해석된다.

애초 약속을 지키지 않은 청와대가 검찰 수사를 지켜본 뒤 박 보좌관의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당분간 그의 청와대 출근은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