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정치의 속살 칼럼 목록 > 내용   2005년11월29일 제587호
DJ, 블루스에서 암까지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DJ 대장암 말기설’이 화제다. 60일 시한부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11월 중순부터 여야 인사들 안에서 은밀한 구전으로 떠돌던 이 소문은 지난 11월22일 한 인터넷 언론사가 공식 확인했다고 기사화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동교동 최경환 비서관은 공식 부인했고, 근거 역시 입소문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DJ를 독재자로 비난하고 노벨상 수상까지 시비를 걸며 몇 년째 연을 끊고 살던 YS까지 DJ에게 안부 전화를 한 이유”라거나, “동교동과 가까운 ○○○씨에게 확인했다”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 주류다.

DJ의 건강은 지난 1997년 대통령 선거전 이후 주요한 정치적 이슈로 자리잡았다. DJ 건강 이상설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다. 97년 10월16일 ‘김해 김씨 가을 대제’에 참석한 DJ가 절을 한 뒤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며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본 당시 신한국당 소속 김 의원이 열흘 뒤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건강이상설을 공식 제기한 것이다. DJ가 워낙 나이가 많은데다, DJP 연합으로 집권 가능성도 높아진 만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쪽과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쪽의 공격도 집요했다. 국회 주변에는 ‘DJ 투약 처방전’이라는 괴문서가 나돌고, “DJ가 당 간부회의 때 괌에서 비행기 사고로 숨진 신기하 의원을 찾는 등 치매에 걸렸다”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는 등의 소문까지 양산됐다.

DJ를 후보로 내세운 국민회의는 건강이상설 확산을 막기 위해 첩보전까지 벌였다. 이회창 후보가 12월1일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쟁점화할 것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 김한길·유재건·이강래 의원 등이 DJ를 설득해 비밀리에 연세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토론회 당일에 전격 공개해 바람을 뺀 것이다. 구전 홍보도 총동원됐다. ‘선생님의 블루스’와 ‘오줌발론’이 대표적 사례다. 블루스는 DJ가 당직자들과 단란주점에 갔다가 마담과 블루스를 췄는데, 그 마담이 한 당직자에게 “어머 그 나이에, 선생님도 아랫도리가 묵직하시더라”고 말했다는 내용으로 당직자들이 기자들에게 구전 홍보했다. 오줌발론은 12월2일 텔레비전 찬조 연설에 나선 유재건 의원이 “김 후보 비서실장으로 하루 종일 같이 다니는데 공중변소에서 볼일이 있어 같이 들어갔다. 그런데 (오줌) 소리가 내 것보다 크게 들리더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건강 시비 첩보전의 백미는 대선 투표일 하루 전인 12월17일 오후 4시께 DJ의 친동생 김대의씨가 사망한 뒤의 움직임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정보를 수집하고 최종 확인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고, 국민회의는 이를 감추기 위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유족까지 나서 사망 소문을 부인하면서 언론의 취재 경쟁을 따돌렸다. 국민회의는 당시 은폐 시비와 야당의 흑색 공세를 막기 위해 18일치 조간신문 마감이 막 지난 18일 새벽 1시30분에 팩스로 김씨 사망 사실을 알리는 전술을 택했고, 거의 모든 조간신문의 기사화를 막을 수 있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DJ의 건강은 숱한 시빗거리가 됐다. 당선 직후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 당선자실 내부에는 비밀리에 큰 침대가 하나 마련됐다. 뒤늦게 이를 안 정치권 일각에서는 건강이상설이 제기됐고, DJ 쪽은 오랜 낮잠 습관을 배려한 것이라며 방어에 나섰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한밤중에 갑자기 쓰러져 청와대 인근 군부대에 마련된 대통령 전용 병실로 실려갔다거나, 감기에 걸린 수석 비서관들은 DJ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야당 일각에서는 “국장을 치를지도 모른다”고 거들기도 했다. DJ는 올 들어 청와대에서 통풍기를 틀어놓고 자다 폐렴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혀, 당시 얘기가 헛소문만은 아니었음이 확인됐다.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인 2003년 4월에도 DJ 건강이 여권 안에서 화제가 됐다. 노 대통령 부부와 첫 만찬을 위해 청와대에 온 DJ가 예정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동교동으로 돌아간 뒤 청와대의 몇몇 비서관들이 “DJ가 갑자기 쓰러져 대통령 전용 병원으로 실려갔다”며 “큰일 치르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전했기 때문. 그러나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이었던 서갑원 의원은 “DJ가 너무 힘들어, 더 못 있겠다고 불편함을 호소해 만찬을 일찍 끝냈을 뿐 쓰러지거나 병원에 실려간 일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