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전 선배! → 전 선배님! → 전 대변인님!’
기자가 부른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의 호칭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때마다 거리감이 커졌다. 정치부 기자들은 흔히 의원들을 ‘~의원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성을 붙여 ‘~선배’로 부른다. 언제, 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다만 친근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한때 ‘많은 것’을 공유했던 기자와 정치인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된 유물은 아닌지 추측해볼 뿐이다.
낯선 의원을 선배라 부르는 것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한나라당을 출입하면서 만나게 된 전여옥 대변인을 선배라 부르는 것을 그리 망설이지 않았다. 전 대변인이 한국방송 기자 출신이니, 대충 언론사 선배가 된다고 편하게 맘먹은 것이다.
그러나 선배 호칭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10월28일 이해찬 총리가 국회의 대정부 질문 답변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 아니냐’며 파행 국회를 불러오면서다. 전여옥 대변인은 국회 중앙기자실에서 “망언을 용서할 수 없다”고 브리핑했다. 그리고 기자실을 빠져나오면서 “미친 ×× 아냐”라고 불쑥 한마디를 내뱉었다. 2~3명의 기자들이 곁에 있었다. 기사로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의원총회장에서 다른 한나라당 의원들의 말과 함께 정치부 게시판에 ‘메모’를 올렸다. 그런데 아뿔싸! <인터넷 한겨레>에 메모가 현장 기사들과 함께 올라가 있었다. 서둘러 회사로 전화를 넣어 빼달라고 했다. 거친 욕설을 기사화하는 게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문제의 메모는 <인터넷 한겨레>에 2~3시간 동안 걸려 있었다.
다음날 전여옥 의원실에서 찾아왔다. “전 대변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어떻게 한겨레가 그럴 수 있냐”라고 따졌다. 문제의 메모가 순식간에 온라인상으로 넓게 퍼져나간 것이다. 기자는 무조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품위 없는 내용이 온라인에 올라간 것은 기자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탓이다. 그러나 전 대변인이 그렇게 말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레 선을 그었다. 다행히 큰 탈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그 뒤부터 전 대변인을 선배라 부르지 못했다. 무식한 기자는 한두번 전 대변인과 논쟁을 벌이다 ‘공부 좀 더 하세요’라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기자만의 체험은 아니다. 전 대변인한테 낯뜨거운 무안을 당한 기자들이 더 있다.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데일리 서프라이즈> 등 인터넷 신문 기자들은 그 횟수와 정도가 더 심했다. 자신이 쓴 <일본은 없다>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은 공식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이 아니면 무시된다.
전 대변인은 박근혜 대표의 최측근이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뒤편에서 투덜대지만, 전 대변인 앞에서는 좀처럼 싫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험한 말이 되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것은 둘째치고 밉보였다가 자칫 대표와의 취재 통로가 꽉 막힐까 두려운 탓이다. 기자가 ‘전 대변인님’이라고 부르며 가끔 ‘전 선배님’을 섞는 것도 전 대변인과 최소한이나마 ‘공유’하는 부분을 남겨놨으면 하는 기자로서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이 글이 그 공유마저 완전히 날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욕할 게 있으면 내 앞에서 하라’는 대변인의 평소 말을 변명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