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국정원 기조실장 지낸 서동만 교수가 말하는 미사일 해법…“DJ정부 때보다 대북정책 크게 후퇴… 고도의 심리전 승자는 미·일”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북한 문제 전문가로 참여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서동만(50) 상지대 교수를 만나 북한 미사일 사태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서 교수는 북-미 관계를 축으로 진행되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 사이의 직접적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를 위해 단거리 미사일 문제에 대한 남북 직접 대화를 주문했다. “대북정책이 김대중 정부 때보다 크게 후퇴했다”고 진단한 그는 외교안보 라인의 시스템 문제도 거론했다.
언젠가 쏠 거, 빨리 쏜 게 낫다?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가 가장 궁금하다. 또 의도했던 바를 얻었는지, 얻을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관계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북쪽의 인식이 ‘판을 흔들어보자’ ‘국면을 타개해보자’는 쪽으로 정리된 것으로 봐야 한다.
고육지책이다. 대포동 2호가 발사된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볼 때 현재까지는 (북이 보유한 미사일 기술이) 미국이 생각했던 능력은 아직 아닌 것 같다. ‘극약 처방’이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흥미롭고 적절한 표현이다. ‘극약’은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보수세력의 입지 강화, 미국의 강경 대북압박 정책 지속 등이 그렇다. 중국과 한국은 좀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미·일에서 계속 부각했고 한국 정부도 대응을 했기 때문에, 북으로서는 체면상 안 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버렸다. 고도의 심리전이자 정보전이었다. 미·일의 의도는 일정하게 성공했고, 북으로서도 관심을 끄는 효과는 봤다.
‘외교적 카드’와 ‘군사적 억제력’ 가운데 어떤 측면이 더 크다고 봐야 하나.
= 외교적인 면과 군사적인 면이 논리적으로는 분리될 수 있지만, 북쪽의 상황 인식으로 보면 두 개가 겹쳐 있다고 본다. 1998년에는 협상카드의 측면이 강했다. 효과도 있었다. 고위급 회담이 열렸고 미사일 협상도 거의 타결되는 국면까지 갔다. 군사적 억제력 면에서 보면 장거리·중거리·단거리 미사일 모두 발사한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한강 이북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재배치는 휴전선에 배치된 장거리포의 무력화를 뜻하는 동시에 단거리 미사일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준다. 북쪽 나름의 타격력 과시 측면이 있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이번 사안은 연결된다고 본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한했다. 7월 말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온다. 또 9월 중에는 한-미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대북정책 조율의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 미국의 태도가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대화의 조짐이 나타날 수도 있다. 미사일 발사가 주는 교훈은 어쨌든 기존 대응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문제가 될 것이다.
미사일 발사에서 보듯 북한은 지속적으로 우리 정부에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다. 국면을 타개할 방안이 있다고 보는지.
= 정부는 그동안 경고성 발언 이외에 ‘북-미 직접 대화를 하라’거나 ‘6자회담 안에서 하라’는 등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은 적이 없다. 미온적이고 어정쩡했다. 오해할 여지가 있는 말인데, 언젠가 쏠 거였다면 차라리 빨리 쏜 게 결과적으로 낫다는 얘기도 있다. 이제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사일 주권이 없는 상황에서 단거리 미사일이라도 남북간 군사회담의 의제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장거리 미사일은 북-미 간 이슈이지만, 단거리 미사일은 남북간 이슈가 될 수 있다. 검토가 필요하다.
식량 지원을 미사일과 연계하는 건 오버
국정원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보력에서 문제를 보였다는 주장도 있다.
= 기본적으로 위성사진을 판독하는 문제다. 미국 쪽에서 받은 사진을 해석하는 수준이다. 위성사진과 통신감청은 미국의 정보와 한국의 정보가 일체화돼 있다. 다만, 우리가 미국보다 앞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남북 대화에서 생긴 신뢰관계를 통해 북쪽의 의도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성공적인가.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다고 보나.
= ‘계승’은 했지만 ‘발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북송금 특검의 부작용이 있었고 남북 간 신뢰가 손상됐다. 지난해 6·15 행사 때 김정일-정동영 회담을 계기로 지난 정부 말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 추진력으로 대북 전력 제공 약속인 ‘9·19 합의’로 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답보 상태와 후퇴를 거듭했다. 물론 9·11 테러와 부시 행정부 출범 등 외부 여건은 안 좋았지만,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지금 진행 중인 경협사업이라는 게 모두 이전 정부에서 합의된 것을 연장하는 성격이다. 김대중 정부 때 벌어놓은 것으로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새로운 것은 경공업 협력 정도다. 9·19 합의 이후에도 자화자찬 분위기에 휩쓸리면서 합의의 계기는 살리지 못하고 대연정 논의에 묻혀버렸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허송세월했다. 당시 북쪽이 강력히 제기한 이른바 ‘근본 문제’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북쪽으로서는 개성과 금강산, 철도연결 구간 등 군사지역을 내줬는데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경제협력 논리로만 대응했다. (미사일 사건으로) 정경분리 원칙도 실제로 무너지고 있다. 인도주의적 지원인 식량지원 문제를 (미사일 문제와) 연계하려는 듯한 태도는 오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비교해볼 때도 명백한 후퇴다. 결국 정부가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분석이 많다.
경제협력에만 머무는 남북대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관계가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신뢰 구축이 필수적인데, 북쪽이 강하게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문제 같은 것은 논의가 잘될 경우 남북관계 진전의 지렛대 구실을 할 수 있지 않나.
= 남북 모두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사전 정지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얘기 못하는 문제가 되어버렸다. 얘기하는 순간 ‘독도 이슈’처럼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책연구 차원에서 몇 가지 방안이 정부안에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안다. 철도 문제와는 달리 휴전협정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남북이 독자적으로 협의할 수 있고, 잘될 경우 참여정부의 새로운 성과가 될 수도 있다.
기지 문제 지렛대 삼아 요구 관철했어야
한-미 동맹 재편 과정에서 보여주는 정부의 대미정책을 보면 ‘줄 건 다 주고, 욕은 욕대로 먹는’ 구조다. 이라크 파병부터 용산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미국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해주면서도 얻은 게 별로 없다. 이유가 뭔가.
= 정부가 한-미 관계에 올인하는 면이 있다. 대북 관계와 관련해보면 미국이 양보한 건 없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만 봐도 우리는 기지 문제를 지렛대 삼아 우리의 요구를 관철해야 했는데 반대가 됐다. 인사와 정책 담당 핵심 인력의 능력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정부가 외교부와 국방부 등 관료 장악을 못했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나 ‘동북아균형자론’ 등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협상 과정과 어긋나는 문제도 컸다. 그 과정에서 한-미 간 불신이 생겼다. 시스템 면에서 보면 외교·안보 관련 부처들에 대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조정 역량 문제도 있다. NSC는 오히려 김대중 정부 때 상대적으로 잘 운영됐다. 물론 ‘인치’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김대중-임동원 라인이 확고한 중심과 힘을 갖고 일관성 있게 운영된 데 비해 참여정부에서는 노선상의 중심이 명확하지 않은 것에 더해 NSC 사무처의 정책 조정 기능이 확립되지 못했다. 초기에 사무처의 지휘권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가져야 하는데 이종석 차장이 가진 것도 문제였다. 벤치마킹 대상이던 미국 백악관 시스템과도 다른 파행적·이중적 구조가 돼버렸다. 결국 지금은 청와대 통일외교 안보정책실 구조가 됐지만, NSC 조정기능은 매우 취약해져 있다. NSC 사무처를 이종석 차장이 스스로 폐지해버렸기 때문에 현재 NSC 상임위원장으로서 할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외교안보 영역의 개혁은 결국 정보 접근성이 핵심인데 각 국가기관의 견제와 균형이 깨져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맞다. 지금은 거의 외교부 중심의 정보분석 구조다. 국정원의 견제 구실이 상당히 취약해져 있다. 특히 대미 정보에서 문제점이 심각하다. 또 외교안보 부처의 냉전적 관성 등 관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