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내보내 나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더라.”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사용자가 셔플 모드를 사용하면 아이포드는 저장된 5천곡을 무작위로 섞어 재생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셔플 에피소드가 발생하는 거다. 더 웃기는 건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서는 “아이포드에 귀신이 산다”는 제목으로 셔플 괴담 기사를 다루었다는 거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획기적인 물건이 나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것 같다. 한번은 서로 코드가 잘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가 내 차 안에서 자기 아이포드에 저장된 제 취향의 음악들을 이곡 저곡 마구 들려줬는데 미안하게도 나로선 그때만큼 음악 듣기가 싫었던 적이 없었다. 맛보기식으로 30분 동안 한 100여곡쯤 듣는 동안 나는 웬일인지 머리가 아프고 속도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사실 그 즈음 난 이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더 이상 음악을 듣지 않고 있다. 들어도 귓등으로 듣는다. 왜일까? 이것은 혹시 타락의 징조가 아닐까?” 한때는 영원한 건 음악뿐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음악에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지금은 듣지도 않는 CD를 1천여장이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짐스럽다. 그래서 홍익대 앞 중고 CD 가게에 내다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계산기를 두드려본 적도 있었다. 그렇다. 난 타락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야 어른이 된 것인지도 모르고.
타락하긴 했지만 아주 가망이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난 며칠 전 무리 속에서 퇴행을 자처하며 여봐란듯이 턴테이블을 샀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음악 듣기의 즐거움이 LP 속에 있더라’했고 나는 누구보다 귀가 얇은 사람이었다. 특히 음악평론가 김갑수와 뮤지션 김형태의 영향이 컸다. 음악이 하찮아지는 건 너무 쉽게 얻기 때문이고, 시간과 공을 들이면 뭔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내게 알려줬다.
LP로 듣는 음악은 뭔가 다르긴 달랐다. 일단 소리가 달랐고 그 존재감도 달랐다. 꽤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니 소리가 귀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낙후된 인간처럼 느껴져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