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종강의 휴먼 포엠 ] 2002년05월17일 제409호 

난지도, 시다, 그리고 발레

춤으로 편견을 타격하는 <몸> 편집장 박성혜 “걷는 것도 춤이다”


사진/ "춤에 관한 고정관념을 깬다." 월간 <몸> 사무실이 있는 창무예술원 연습실에서.


에라, 처음부터 그냥 솔직하게 나가자. 무용인 박성혜(37)씨는 ‘난지도’ 출신이다. 그걸 굳이 숨기지 않는다.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대학원도 마쳤고 유학도 다녀왔으며 지금은 무용계의 거목 김매자 선생이 발행하는 춤 전문 잡지 <몸>의 편집장이면서 틈틈이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있으니, 누가 봐도 박성혜씨는 ‘무용인’이다. 그런데 ‘무용’과 ‘난지도’는 언뜻 연결되지 않는 단어다.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충돌하면서 ‘양에서 질로 전화하는’ 변증법적 탄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박성혜씨가 바로 그 드문 예다. 난지도에서 살았던 7살부터 14살까지의 세월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들을 배운 시기였다.

가장 많은 것들을 배웠던 쓰레기산

“어느날 부반장인 내 짝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집에 가면서 보니까 쓰레기 더미에서 아버지와 같이 병을 줍고 있는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그 아이는 똑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부반장일 때는 내 친구이고, 쓰레기 더미에서 병을 골라내고 있을 때는 친구가 아니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편견’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춤을 보거나 세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춤에 관한 한 철저히 문외한인 나는 춤이 ‘귀족적 취미’라거나 ‘정신적 사치’라는 무식한 ‘편견’을 갖고 있는데 “그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 아니냐?”며 심기를 건드리자 박성혜씨는 참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치품일 수도 있고 아닐 수 있어요. 정장을 입고 비싼 공연료를 내고 공연장에서 보는 춤이나, 관광버스에서 아줌마들이 추는 춤이나, 다 같은 ‘춤’인 거예요. 차이가 있다면 하나는 보기만 하지만 다른 하나는 같이 춘다는 거지요. 춤은 관찰의 대상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면 돼요.”

옆에 있던 김남수(33)씨가 거든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는 우리가 그런 춤에 관한 일도 하게 될 겁니다.” 김남수씨는 박성혜씨의 영향을 받아 무용 비평에 막 입문한 후배다. 튀는 감각과 넓은 소양으로 많은 사람들을 열등감에 빠지게 하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우리 사회 대표적 ‘네티즌’이다. 박성혜씨는 “내가 김남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어느날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내 몸이 굳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몸이 굳어서 도저히 춤을 출 수 없었어요. 그런데 평범해 보이던 친구가 춤을 추니까 살아오르는 게 보이는 거예요. 매력이 뿜어져나오는 거예요. 춤이 ‘인간’을 담기에 전혀 결함이 없는 매체라는 걸 느꼈지요.” 김남수의 설명에도 나는 계속 무식하게 나아갔다. “진리를 알려거든 우선 부인하라”고 하지 않던가…. “그게 가능해? 춤에 ‘인간’을 담는 게 가능해?” 두 사람은 이제 난리가 났다. 김남수가 마치 유치원생을 앞에 앉혀놓은 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춤도 영화나 연극과 마찬가지예요. 물론 가짜와 진짜가 있어요. ‘문장을 위한 문장’이 몰가치하듯 ‘춤을 위한 춤’은 진짜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아무것도 안 하면서 빈 공간을 가리키며 ‘이게 마임의 정체다’ 하면 이건 사기예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하면서 아무것도 없는 구석을 보여주는 것은 가능해요. 그런 아름다움을 구별하는 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요.”

푸줏간의 고기와 춤의 관계



내가 “너무 심오하다. 나한테는 너무 어려워”라고 계속 엇나가자 이번에는 박성혜가 나섰다. “지금까지 한번도 춤을 춰보지 않았고 평소 ‘춤은 내 인생과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지요? 걷는 것도 다 춤이라고요. 두려워할 거 없어요.”

맞다. 나는 춤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다. 박성혜는 그걸 간파했다. “죽기 전에 내가 그런 경험해볼 수 있을까?”라고 내가 한발 물러서자 “나에게 세 시간만 주면, 지금 당장 경험하게 해줄 수도 있다”고 못을 박는다.

이제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물어보자. “잡지를 통해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은?”

“춤은 고상하고 특별하며 소수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살아남지 못해요. 나이트클럽의 막춤은 이해하면서 공연장의 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같은 시각으로 봐도 괜찮은 거예요. 그렇게 볼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지팡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싶은 거지요.”

그런데 그 일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만드는 잡지 <몸>이 파격적 표지사진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돼지 머리, 남성 성기, 돼지 똥구멍, 푸줏간의 고기, 여성 음모 노출…. 이건 흡사 엽기 시리즈다. 내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물으니 “몸이니까요. 그게 다 ‘몸’이잖아요”라고 간단히 답하는데, 나처럼 생각이 짧은 사람은 설명을 들어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응은 당연히 안 좋았어요. 난리가 났지요. ‘끔찍하다.’ ‘미쳤다.’‘말도 안 된다.’ ‘푸줏간의 고기와 춤이 무슨 관계가 있냐.’ 그런데 저는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춤사위 하나를 바꾸는 데도 20년 걸려요. ‘요렇게 추는 것만이 춤이다’라는 고정관념이 박히면 못 바꿔요. 저는 그것을 바꾸는 사람들을 옹호하고 싶은 거예요.”

그 일에 호흡을 함께 맞추는 사람이 김남수다. 박성혜가 김남수에게 바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무용을 새롭게 많이 봐야 해요. 그런 사람들이 무용계에 많이 들어와서 공연도 자주 보고 춤에 대한 인식도 바꾸면서 나름대로 생산물들을 토해내면 뭔가 되지 않을까요?”

이제 조심스럽게 밝혀야만 될 이야기가 있다. 박성혜는 ‘운동권’ 출신이다.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으나 딱 한 가지만 쓰겠다. 청계천에서 ‘시다’로 일한 적이 있다. 그뒤 발레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에 두번 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 번 수입이 ‘시다’로 한달 동안 뼈 빠지게 일해 번 돈과 같더라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 온기라고는 다리미 하나밖에 없는 곳에서, 발에 동상이 걸려 신발을 찌그려 신고 한달 동안 죽어라 일해서 번 돈이 일주일에 단 두번 일해서 번 돈과 같더라는 것이다.

화가 나는 날엔 구로공단으로 간다


사진/ 무용 비평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후배 김남수씨와 함께 편집실에서.


“회의가 당연히 오지요. ‘이런 고급예술 뭐하러 하고 있나’ 그런 고민하게 되지요.”

박성혜는 오늘도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고해’(苦海)의 바다를 간다. 그래서 비싼 음식점에서 귀한 마님과 동화 속 꿈같은 얘기를 한 날은, 잔뜩 화가 나서 돌아오는 길에 구로공단을 한 바퀴 돌기도 한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적색경보등을 켜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미래가 어떠했으면 좋겠어요?”

“별로 생각 안 해봤어요. 난 ‘뭐가 되고 싶다’거나 은행잔고 같은 것에 별로 관심없어요. 결혼도 마찬가지예요.” 이게 바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물어본 사람이 오히려 부끄럽고 미안하다. 이번에는 박성혜가 지나가는 말처럼 내게 물었다. “지난번 <스파르타쿠스> 공연에 내가 사람들 초대했을 때 왜 안 왔었어요?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는데….”

그런 공연에 내가 제일 먼저 달려올 거라고 생각해주는 박성혜의 공감대가 고맙다. 고백하건대, 무용을 전공한 사람에게도 그런 공감대가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반성한다. 우리 모두 그런 편견을 버리자. 그게 안 되는 사람은 박성혜씨를 찾아가 3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글 하종강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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