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종강의 휴먼 포엠 ] 2002년05월17일 제409호 

“꼴값들 하고 있네…”

‘동일방직 똥물사건’의 주역 ‘농사꾼 안순애’, 험한 대꾸를 당하면서도 그를 존경하는 이유


사진/ 동일방직 시절. 가운데가 안순애씨. '서늘한 미인'으로 불렸다.


10여년 전쯤이었나, 안순애가 영등포의 내 사무실에 불쑥 나타난 적이 있었다. 지하 ‘다방’에서 차 한잔 마시고 “반가웠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안순애가 나를 흘겨보더니 불쑥 내뱉었다.

“아이구, 잘났어. 그렇게 한점 흐트러짐 없이 잘난 척하는 꼴, 계속 보일 거야?”

나는 움찔해서 도로 눌러앉았고, 그날 우리는 꽤 늦은 시간까지 고기를 몇점 구워먹는 과분한 저녁식사를 했다.

이번에도 안순애에게 전화를 해서 “인터뷰를 한번 하기로 추아무개, 김아무개와 합의했다”고 했더니 안순애는 대뜸 “꼴값들 하고 있네”라고 내뱉었다.

그게 바로 안순애다. 알게 된 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안순애로부터 좋은 말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안순애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가 징역 산 줄도 몰랐던 남편

안순애(46)씨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은 ‘동일방직’ 출신이다. 기억에도 생생한 ‘나체시위’와 ‘똥물’사건의 주역이다. 젊은 여성노동자들이 벌거벗은 채 싸울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연, 똥물을 뒤집어쓰고 강제로 먹어야 했던 그 눈물겨운 이야기는 또 한편의 대하소설이어서 이런 작은 지면에서 함부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인터뷰의 주제는, 충북 음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 안순애’다. 품앗이를 나온 할머니들이 “70년 농사에 이렇게 실한 고추는 처음 본다”라고 감탄할 만큼 제대로 농사를 짓는 알짜배기 농사꾼 안순애의 이야기다.

안순애씨의 ‘화려한’ 경력을 남편 신한철(45)씨는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찾아와서 나누는 대화가 범상치 않고, 이웃의 대학물 먹은 농민운동가들과 어울리는 걸 보면서 충분히 감을 잡아서, 정작 “뭐, 동일방직? 징역을 산 전과가 있어?”라고 알았을 때에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고 한다.

안순애씨는 지금 ‘음성군 여성농민회’ 회장을 맡고 있고 신한철씨도 2년쯤 전에 농민회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는데, 지난 겨울 농민시위 때에는 시위 경험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던 신한철씨가 맨 앞에서 “방방 뛰었다”. 농민 시위대열이 경찰서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 경찰서 정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고 경찰서 마당에는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물샐 틈 없이 들어차 있었는데, 남편 신한철씨가 사람들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경찰서 정문을 타넘었고, 경찰서 마당에 발도 딛지 못한 채 전경들에게 달랑 들려서 ‘닭장차’에 실렸다. ‘닭장차’ 경험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왜 그렇게 혼자 방방 뛰셨어요?”라는 질문에 한철씨가 답했다. “내가 그렇게 넘어가면 다른 사람들도 내 뒤를 따라 넘어올 줄 알았지. 그런데 넘어가보니 달랑 나 혼자더라구. 사실 그때 나는 얼른 넘어가서 문을 따버리려고 했어. 사람들이 확 들어올 수 있게 하려고….”

“농사짓는 꼬라지가 농민과 똑같아야지”


사진/ 파안대소하는 안순애씨와 남편 신한철씨, 그리고 딸 송희. 그들 뒤로 배추씨앗을 심은 모판이 보인다.


순애씨가 옆에서 “경찰서 마당에 발도 못 딛었는데, 문을 따기는, 무슨…”이라며 웃었고 나도 한마디 보탰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군요, 하하….”

신한철씨가 그렇게 잡히고 나자 청년들이 “‘메뚜기 아저씨’(‘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속담 덕에 한철씨는 ‘메뚜기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었다)를 석방하라!”고 요구하면서 트랙터를 몰고 나와 그날 결국 경찰서 정문을 트랙터로 ‘뽀개’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내가 ‘우리나라 농업문제’에 대해 질문을 몇 마디 하자, 두 사람은 일사천리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에 충북에서만 농가부채 때문에 6명이 농약 마시고 자살했어. 농가부채가 왜 생기는지 알아? 퇴비공장 하나만 봐도 그래. 환경친화사업이라고 정부에서 적극 권장하고 농민들은 전 재산 털고 담보잡혀가면서 거금을 융자받아 투자했지. 현실성 없어서 전부 다 망했어.”

“그렇게 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보증 섰던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이 모두 거대한 빚에 허덕이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야. 정부의 농업정책 실패 때문에 생긴 농가부채인데,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지.”

“그 와중에 농협은 고리대금업을 하고…. 농협 이자가 12%야. 시중 이자보다 오히려 더 비싸. 이건 농민을 위한 농협이 아니라 완전히 장사꾼들을 위한 농협이야.”

그것이 바로, 정작 부채가 거의 없는 신한철, 안순애씨가 군청 앞에서 거의 한달이나 천막농성을 하고 경찰서 정문을 넘은 이유였다. 이웃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예로부터 우리의 정서가 아니다.

왕가뭄에 총파업을 했다고 정부와 기업이 민주노총을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놈들이야 건수만 있으면 비난하는 놈들이고….”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투다. 그러면서도 “지난 가뭄은 정말 대단했다”고 혀를 둘렀다. 아무리 늦어도 5월 말까지는 끝냈어야 하는 모내기를 6월23일에야 했다고 한다. “일조량이 워낙 부족할 테니 가을에 수확할 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신한철씨 얼굴에 얼핏 그림자가 지나갔다.

요즘 부쩍 많아진 ‘귀농’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귀농해서 몇년을 고생고생하며 버티다가 결국 포기하고 다시 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후배들 얘기를 했을 때, 안순애씨가 잘라 말했다.

“농사 짓는 꼬라지가 농민들과 똑같아지는 게 쉽지 않아. 오늘도 우리는 새벽 6시에 밭에 나갔다가 12시나 되어서야 아침밥 먹었어. (아하, 그래서 전화가 계속 안 되었던 거로구나!) 농민들은 지난 가뭄 때 거의 한달 동안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어. 집에도 안 들어가고 논 옆에 비닐막 치고 거기서 먹고자고 했다구. 그렇게 똑같이 할 수 있으면 되는 거야. 농민들은 그만큼 절박하고 치열하게 농사에 매달려 사는데 그렇게 똑같이 안 하면 누가 쳐주나? 그게 먹물들에게 쉽지 않지. 보면, 정말 기득권 버리고 농촌에 와서 맨땅에 대가리 쳐박고 고생하는 사람들 있어. 그런데 그 사람들이 농민들에게 ‘우리와는 좀 다른 사람’으로 보이면 안 되는 거야. 농사 짓는 꼬라지가 똑같으면 인정해준다니까.”

“인터넷? 팔자 좋은 년들이나…”

안순애씨는 “송희(9) 아빠가 본래 농사꾼이었으니까 나는 그게 가능했다”고 말했지만 신한철씨는 “저 사람이 처음에 와서 한 1년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두둔했고 안순애씨도 “첫해에 나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봄부터 가을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나가서 품 팔았어”라고 말하는데 눈가에 잠시 주름이 잡힌다.

방 한 구석에 컴퓨터가 눈에 띄었다. ‘안순애도 인터넷을 할까?’ 싶어 말을 꺼냈더니 “저거 고장난 거야. 하드디스크가 맛이 갔대나. 수리비를 17만원이나 달라는데 어떻게 고쳐. 인터넷, 그거 내가 보기에는 팔자 좋은 년들이나 매달려서 찧고 쌓는 거지”라고 했다.

돌아올 시간이 되어, 비닐하우스만 대충 휘둘러본 뒤, 작은 돌멩이들이 깔려 있는 마당에서 발을 몇번 털고 차에 오르자 안순애가 말했다.

“아이구, 저 발 탁탁 털고 차에 올라타는 꼴 좀 봐라.”

예나 이제나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안순애에게 ‘꼴’에 불과하다. 그래도 나는 농민 안순애를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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