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한홍구 칼럼 목록 > 칼럼내용   2005년02월21일 제548호
대한민국 사병은 똥개인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는데 왜 인분 사건이 터졌을까… 언제까지 “까라면 까”라고 강요할 것인가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2002년 가을 <한겨레21> 추석 합본호(427호)는 당시 평균 2만여원에 불과하던 사병 월급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독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지만, 처음 편집진에 사병 월급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문제를 던졌을 때 편집진의 반응은 좀 미지근한 편이었다. 특히 군대 갔다온 남자 기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문제인데 새삼 무슨 얘깃거리가 되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여기자 한 사람이 잔다르크 언니처럼 나서주어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으로 일반병의 월급 문제를 갖고 일을 꾸미게 되었다. 나름대로 공들여 같이 작업하고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가판에 깔린 책을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경험한 ‘화장실의 추억’

표지에 큰 활자로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라고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당 700원이 말이 되느냐고 거품을 물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막상 매우 ‘선정적’인 제목을 보자 민망하기도 하고 또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단 이렇게 나온 거, 제목 잘 달았다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 어느 거지가 아무리 목을 잘못 잡았다고 한들 하루에 700원을 못 벌겠어?’ 하고…. 사병 월급 문제는 임박한 대통령 선거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각 당 후보들이 공약으로 받게 되었고, 불과 2년 사이에 월급은 무려(?) 70% 이상 오르게 되었다. 워낙 출발점이 낮다 보니 70%가 올라도 평균 3만5천원가량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55만 사병의 월급을 그만큼 올리려면 한해에 1천억원 안팎의 예산이 드니 참 비싼 글을 쓴 셈이다.


△ 충남 논산시 유균훈련소 ‘인분 사건’ 실사를 나온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들. (사진/ 연합)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라는 제목을 보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던 때로부터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사병은 똥개인가’를 논해야 하는 더더욱 참담한 현실을 맞고 있다. 세계 최대의 단위부대로, 한국의 모든 훈련소 중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논산훈련소에서 중대장이 화장실 청소가 잘 안 되었다는 이유로 훈련병들에게 변기의 인분을 찍어 먹게 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건이 나자 인터넷에는 온갖 이야기가 난무했다. 나도 찍어 먹었다는 사람도 많았고, 찍어 먹지는 않았어도 변기통에 ‘대가리 박아’를 해야 했다는 사람도 있고, 요즘 군대 많이 좋아져서 안 그렇다며 중대장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견도 상당히 올라왔다. 대한민국에서 사병으로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화장실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도 논산에서 훈련받을 때 화장실 청소 때문에 밥 먹다가 이단옆차기를 당한 적이 있다. 선임하사가 “00번, 화장실 청소시키고 보고해”라고 하필이면 내 번호를 불렀는데, 내무반에 밥이 도착하자 다들 청소하다 말고 ‘밥이다’ 하고 가버린 것이다. “아까 지시받은 놈 누구야” 하는 불호령에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바로 이단옆차기가 들어온 것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는데, 아, 군인은 개만도 못하구나 하는 것을 제대로 실감했다.

인분 사건. 참으로 참담한 심경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군이 사병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2년 전부터 ‘군대와 사회’라는 과목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는데, 첫 시간에는 주로 복학생들에게 ‘나의 군대생활’이란 주제로 체험담을 발표토록 한다. 군 수뇌부의 거듭된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 지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타와 가혹행위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입대에서 제대까지 2년여 동안 뺨 한대 맞은 일 없었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부러운 탄식을 자아냈다.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가운 것은 사실이다.

군대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라는 말이다. 1960, 70년대에는 “지금이 쌍팔년(단기 4288년으로 1955년) 군대냐”라는 말이 있었고, 내가 군대에 잡혀갔던 1980년대 초반에는 “지금이 유신군대냐”라는 말이 유행했다. 어디 말뿐이랴. 실제로 군대는 많이 좋아졌고, 또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와중에 왜 참담한 일이 또 벌어지는 것일까? 뒤이어 고참병의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자살한 사병들 이야기가 연달아 보도되었다. 인분 사건뿐 아니라 사병들의 자살이 크게 부각된 것은 그런 사고가 최근에 갑자기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시민들의 인권의식도 향상되었고, 이제 군도 더 이상 시민사회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성역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 같으면 쉬쉬하고 넘어갔을 일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군대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는 더 빨리 더 많이 좋아졌다. 군에 몸담고 있는 분들은 오늘의 군을 과거의 군과 비교하면서 군이 좋아진 점만 강조하지만, 입대한 청년들이나 언론은 바깥 사회와 군을 비교하게 마련이다. 지금은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독재자들 밑에서 온 사회가 거대한 병영이 되었던 시절이 아니다. 물론 병영국가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놀라운 속도로 민주화와 경제 발전, 교육 기회의 확대를 이룩해왔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은 당연히 개인의 권리의식의 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다. 1950년대에는 군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현대화된 집단이었고, 바로 이 점이 군사독재가 30년간 지속될 수 있는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문맹이 많고, 농촌 청년이 조직생활의 경험도, 과학기술과의 만남도 갖기 어려웠던 1950년대나 60년대에는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라는 말이 나름대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군을 훨씬 앞질러간 80년대 이후 군대가 아무리 많이 좋아져도 민간과의 상대적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폭력의 전가와 화풀이를 강요하는 제도

군이 사망사고의 감소를 위해 구타 근절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군 수뇌부가 여기에 자족해서는 안 된다. 21세기의 군대에서 인분 사건이 벌어지고, 사병들이 고참의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입영 당사자나 가족들 사이에 병역기피 심리가 조성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현재 병역제도의 형평성이 심각하게 손상돼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현역으로 입대한 자식을 둔 부모들은 “빽없는 부모 탓”을 하며 가슴을 치고 있다.

인분 사건이 벌어진 뒤 군 주변에서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논산훈련소 소장 허평환의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중대장이 성격이상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열린우리당 국방위 소속 의원으로 현장을 방문한 뒤 해당 중대장이 열심히 일하다가 조금 지나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는 박찬석 의원의 발언이다. 둘 다 심각한 문제가 있는 시각이 아닐 수 없다. 과연 훈련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분 사건은 성격파탄자인 중대장 개인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물론 휘하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찍어 먹게 한 중대장의 정신상태는 분명 정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대장 한 개인을 탓하기에는 현재 한국 사병들의 인권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고, 특히 사병들을 바라보는 간부들의 태도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다. “군인에게 인권이 있느냐”는 말, 아니 “군인도 사람이냐”라는 말조차 우리 귀에 낯설지 않다. 한국의 국방제도 전반, 특히 병역제도는 구조적으로 사병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 육군 신병들의 훈령모습. (사진/ 한겨레 윤운식 기자)

두 번째 시각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군대 갔다오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군대에서 구타 사고가 발생하면 때린 사람만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맞은 사람도 같이 영창에 간다. 이른바 원인 유발의 책임인데 쉽게 얘기하면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렸겠지, 가만히 있는 놈을 괜히 팼겠느냐는 것으로 그 ‘맞을 짓’을 처벌하는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해 여자가 ‘맞을 짓’을 했으니까 때렸겠지 남편이 아무 이유 없이 손찌검을 했겠느냐와 똑같은 논리다. 그러나 군대에서의 가해자 옹호론은 가정폭력 때의 피해자 책임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때린 고참병은 군대생활 열심히 하는 병사로, 뺀질뺀질한 애들은 고참이 돼도 내무반 어떻게 되든 나서서 군기 잡지 않는데 열심히 하는 애들이 잘하려다가 사고친 걸 엄하게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군 당국은 군대 내의 구타나 가혹행위와 관련해서는 주로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 근절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사병 상호간의 구타나 가혹행위뿐 아니라, 간부와 사병간에, 나아가 간부 상호간에 구타나 가혹행위가 여전히 존재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도 사실 사병이 사병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현행 병역제도- 과도하게 많은 병력이 별다른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불만에 찬 상태에서 24시간 영내생활- 에서 기인한다.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는 간부 내의 가혹행위, 간부와 사병간의 가혹행위의 파장이 사병 내부로 미쳐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 또는 고참의 횡포란 군대의 위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전가이다.

이렇게 폭력이 전가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인성교육을 통해 가혹행위를 막아보겠다는 시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공자님 말씀을 모은 <논어>에서 단연 빛나는 스타는 서른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안회(顔回)이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도다, 하늘이 나를 버렸도다”(天喪予, 天喪予!) 하고 크게 슬퍼했다. 애공(哀公)이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안회가 불행히 일찍 죽고 난 뒤에 학문을 좋아하는 자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렇게 사랑한 안회의 특징으로 공자는 불천노(不遷怒)를 첫 손가락에 꼽았다. 불천노,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다는 것으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두들기는 화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님도 그렇게 어려운 일로 보신 화풀이 안 하기가 인성교육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성교육도 안 하는 것보다야 백번 낫겠지만, 화가 나게 되는 근본 원인을 그대로 둔 채, 그리고 폭력의 전가와 화풀이를 강요하는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인성교육만 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단체기합은 연좌제이자 헌법 위반

2000년대 들어 구타와 육체적 가혹행위는 줄어들었어도 군대생활은 여전히 군대 말로 ‘고롭다’. 표나지 않고 증거가 남지 않는 가혹행위는 얼마든지 있다. 군대 전체가 그렇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몇몇 복학생들이 전하는 구타 근절 이후의 신종 가혹행위 사례를 보면 경찰 열명이 눈을 부릅떠도 도둑 하나 막기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구타 근절 지시 이후 군대 내의 또 다른 변화는 징계입창, 즉 영창에 가는 병사들의 수가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다. 매년 군대 내에서 영창에 가는 사람의 수는 1만명을 넘어 1개 사단 병력에 육박한다. 그런데 현행범으로 체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관의 결정을 거치지 않은 모든 구금은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는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 법관의 결정 없이 행정처분에 불과한 징계를 통해 인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병에 대한 징계로는 강등, 영창, 휴가제한, 근신의 4가지가 있는데 왜 유독 징계권자인 지휘관들은 영창을 선택하는 것일까? 현재 사병들이 받는 월급은 계급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개 4만원이 안 되는 실정이니 장교나 부사관들처럼 감봉을 적용할 수 없다. 사병들은 이미 영내 생활을 하고 있으니, 영내 대기나 외출 금지를 의미하는 근신은 사병들에게 별다른 효과가 없다. 강등의 경우, 장교들과 달리 사병들에게는 약간의 창피함 이외에 그 어떤 실질적인 피해를 가져오지 않는 명예형이고, 계급보다는 입대일자가 우선되는 분위기에서, 사병들은 계급에 연연하지 않으니 강등이 효과를 거둘 수도 없다. 휴가제한의 경우, “1회 5일 이내의 범위 내에서 제한하며 복무기간 중 총 제한일수는 15일을 초과할 수 없고, 휴가 횟수(매 휴가시 최소 5일은 보장)의 박탈은 불가”하다는 등 제한이 붙어 있으며, 지휘관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한 징계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휘관들은 사병들을 징계할 필요가 있을 경우 압도적으로 영창에 구금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 법관의 결정 없이 1년에 1만명 안팎의 사병들이 영창에 구금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 인분 사건 직후의 춘남 논산훈련소 입소식. 군대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인권의 신장을 기대할 수 없다. (사진/ 연합)

인분 사건과 관련해 떠오르는 두 가지 문제는 단체기합과 명령불복종의 문제이다. 먼저 군대와 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는 단체기합은 사라져야 한다. 나의 행동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처벌받아야 하는 단체기합은 대표적인 연좌제이고, 따라서 헌법 위반이다. 군대에서 단체기합을 시키면서 말인즉 연대의식과 단결심을 고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단체기합 받으며 연대의식과 단결심이 고양된 사람이 있는지 알고 싶다. 선생님이나 지휘관이 왜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부당한 처벌을 가하는가에 대한 불만은 잠시뿐, 땀 뻘뻘 흘리고 이 북북 갈면서 ‘원인 제공자’ 욕만 하게 된다. 이렇게 상습적으로 단체기합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을 군대에서는 고문관(拷問官)이라 부른다. 어쩌다 한번 당하는 건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번, 세번 당하고서 고문관 보고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왕따가 달리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고문관들, 당연히 고참들의 보복, 아니 아주 특별한 ‘교육’의 대상이 된다. 이 ‘교육’은 흔히 “말로 안 되는 놈들 손봐줘야지”라든가 “말이 필요 없는 놈”이라는 욕설이 수반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군대에서의 구타 사고는 이런 고문관들 교육하다가 많이 일어난다. 정말 괴로운 건 고문관 자신이다. 내가 잘못해서 나 혼나는 건 괜찮은데 애먼 사람들이 나 때문에 고생하게 되면 미안하기도 하고, 고참들 한 따까리 할 거 생각하면, 아, 이건 생각만 해도 죽음이다. 자살이나 탈영이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니다.

만약 분대장이 불복종을 했더라면…

이런 단체기합이, 또는 군대에서 종종 벌어지는 엽기적인 행동이 정신력을 배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우리는 히딩크가 가르쳐준 것을 벌써 잊어버렸다. 우리는 한국 축구는 체력은 약하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은 일반적으로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체력은 강하고 정신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죽어라 뛰어다니는 게 정신력이 아니라, 승리에 대한 의지와 자신감이 진짜 정신력이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군에 필요한 것은 민주화, 경제 발전, 남북 관계의 개선, 전쟁 양상의 변화에 걸맞게 새로운 병역제도를 만들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병사들을 ‘신성’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복을 입은 민주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갖도록 대접하는 일이다. 그래야 정신력도 나온다.

흔히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인분을 찍어 먹으라는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중대장이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리는 그 현장에 소대장은 없었지만, 기간병인 분대장들은 있었다고 한다. 그들 중 아무도 중대장의 부당한 행위를 만류하지 않았고, 또 대대장이나 헌병, 기무 계통에 사후보고도 하지 않았다. 만약 훈련병이나 분대장이 중대장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들의 권리에 민감한 신세대 훈련병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런 터무니없는 지시에 저항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군형법의 항명죄, 명령위반죄는 ‘적법·정당한 명령’에 한해서만 성립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군인복무규율에는 명령에 대한 복종만 강조될 뿐, ‘적법·정당한 명령’이란 언급은 없다. 군사반란으로 헌법이 짓밟힌 나라, 광주에서 발포 명령을 받은 군인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아픈 기억이 있는 나라에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사람에 대한 보호나, 거부할 의무에 관한 논의가 없었던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저 군대는 ‘까라면 까는’ 곳으로 남아 있다.

인분 사건은 군대 내의 공식 계통을 통해서 알려진 것이 아니다. 기간병들에게 가혹행위에 대한 보고의 의무는 없는 것일까? 왜 훈련병들은 소원수리 등을 통해 알리지 못했는가? 훈련소장은 대책으로 소원수리 잘 써내도록 우체통을 많이 설치하겠다고 하지만, 정말 이 일이 우체통이 없어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우체통이 없어서가 아니다. 소원수리를 써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는 군대다. 군대는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원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막강한 기무부대와 헌병대는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이 알려진 뒤에야 허둥댔다. 사병의 인권 문제가 지휘관의 관심사였다면 이 문제가 바깥에서 터지기 전에 군대 내에서 먼저 터졌을 것이다.

군인인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이 1993년이다. 그동안 한국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우리 사회는 단순히 군의 정치적 개입이 차단된 것에 만족할 뿐, 군대는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다. 군사정권하에서 군인들의 처우와 복지를 위한 수십개의 법령이 만들어졌지만, 일반 사병들의 권리에 대한 규정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 없다. 군인도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군인의 인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사치일까? 도대체 군인에게 어떤 기본권이 주어져야 하고 어떤 기본권이 법률에 따라 제약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군인인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군대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인권의 신장은 기대할 수 없다. 내 인격이 무시당한 경험, 남의 인격을 무시한 경험, 그 상처를 안고 매년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제복을 벗고 사회로 돌아온다. 인권 감수성의 하향 평준화가 군대에서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