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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강의실은 까마득한 저 위에… 숭실대 박지주씨 대학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편의시설 미비로 학습권 훼손당했다”
학습장애를 겪는 초등학생의 투정이 아니다. 왕따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의 하소연은 더더욱 아니다. 제대로 된 편의시설 하나 없이, 도우미 한명 없이 공부하는 장애인 대학생들의 호소다. 95년부터 실시된 장애인 특별전형을 통해 각 대학에 입학한 장애학생은 총 1천500여명. 비좁은 대학문을 통과하긴 했지만 이들에게 캠퍼스는 낭만의 터전이기는커녕 치열한 전쟁터다. 드넓은 캠퍼스의 가파른 언덕, 높은 계단, 비좁은 화장실은 이들을 막아서는 장애물. 악전고투에 지친 숭실대 사회사업학과 박지주(30·3학년 휴학)씨가 이 장애물을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학교를 상대로 “편의시설 미비로 학습권이 훼손됐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지난해 장애인의 입학을 거부한 청주 서원대, 서울교대 등이 아예 대학 입구부터 봉쇄한 경우라면, 숭실대 등 전국 대부분의 대학들은 미비한 편의시설로 장애학생들의 발목을 묶어놓고 있다. 지난해 가을 휴학하기 전, 박지주씨의 일과가 이를 증명한다.
봉쇄된 ‘이동의 자유’
과 사무실에 가는 친구에게 리포트 제출을 부탁하고 1층으로 내려 오기 위해 다시 3명의 힘을 빌린다. 수업이 끝나면 가난한 고학생인 박씨는 책을 빌리러 도서관으로 향한다. 가파른 언덕 위에 있는 도서관까지 가려면 누군가 휠체어를 밀어줘야 한다. 힘겹게 도서관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도 낭패는 계속된다. 엘리베이터가 모든 층에 서지 않는 탓에 다시 관리직원을 불러야 하는 것이다. 서가에선 높게 꽂힌 책을 뽑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청하고 도서관을 나선다. 가파른 언덕길을 되돌아 내려와야 하지만 웬만하면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눈치가 보여서다. 조심스레 휠체어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려오지만 달려오는 차와 부딪힐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밥 먹는 것도 만만치 않다. 학교 식당의 배식대가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춰진 탓에 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박지주씨는 “하루에 수십번씩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피 말리는 일”이라며 “입학 초부터 편의시설 확충을 요청했지만 언제나 ‘다음 학기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한다. 한편 숭실대 관계자는 “올해부터 예산을 확보해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답변했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서는 건물 입구의 경사로, 자동 출입문, 엘리베이터, 유도 블록, 점자 안내판. 장애인용 화장실 등이 필수적이다. 이런 기본적인 시설조차 미비한 상태에서 박지주씨는 심각한 학습권 침해를 당해왔다고 말한다. “교수님들을 한번 찾아뵙기도 어렵고, 과 사무실에 게시된 정보를 제때 습득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동의 자유가 없으니 ‘정보 접근권’도 봉쇄된 거지요. 어렵게 도움을 받아가며 3층 강의실까지 갔는데 휴강이었을 때는 정말 허탈했어요. 학교쪽에서 조금만 신경써서 먼저 연락해줬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학교쪽의 의지만 있으면 풀린다”
편의시설 미비와 학교 당국의 무관심 탓에 장애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당하는 사례는 비단 숭실대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특별전형이 시작된 95년 이래로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몇몇 장애학생들은 자퇴를 했고, 상당수 장애학생들이 휴학중이다. 문제가 심각하다보니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애학생들의 노력도 활발하다. 최근 전주 우석대에서는 엘리베이터 설치문제로 ‘교육권 확보를 위한 비상대책위’가 꾸려져 활동중이고, 한양대 등 몇몇 대학에서는 장애학생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편의시설 확충이 이뤄지고 있다. 한양대 총학생회 산하 장애인권위원회는 △모든 건물 입구에 경사로 설치 △휠체어나 목발을 쓰는 장애인이 신청한 수업의 1층 배치 △이동을 돕고 학습정보를 챙겨줄 도우미제도 도입 등의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이미 연세대에서는 모든 건물에 경사로가 설치됐고, 지난 3월에는 장애인 휴게실과 점자번역실이 문을 열었다. 장애학생들은 학습권을 보장하는 길이 대규모 편의시설 확충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장애인인권확보를 위한 전국청년학생연합(준)’의 김형수 대표는 “무조건 산을 깎고 대규모 편의시설을 만들라는 것은 아니”라며 “장애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학교 당국의 자세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장애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불편을 해소하려는 자세, 어떤 방법으로든지 학습권을 보장하겠다는 학교쪽의 의지만 있으면 학습권문제는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학생들의 불편을 제대로 모르고 짓다보니 일부 학교의 편의시설은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장애학생들이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전용 셔틀버스, 생색내기용 경사로가 그 대표적인 예다. 경사로는 반드시 기울기가 12˚ 이하여야 하고, 미끄럼 방지턱, 양쪽 손잡이, 지붕 설치가 필수지만 이 기준에 부합하는 경사로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대표는 장애학생의 불편을 제때 파악하고, 적절한 지원을 담당할 장애인지원 전담기구 설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재학중인 장애학생이 몇명인지조차 모르는 학교도 있습니다. 학교 환경에 따라 필요한 도움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실사가 우선입니다. 언덕이 가파른 한양대 학생들은 도우미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반면, 평지가 많은 연세대 학생들은 좀더 나은 시설을 요구하는 식이거든요.”
‘편의시설’ 아닌 ‘필수시설’
장애의 종류에 따라 필요한 도움도 다르다. 지체장애인은 이동을 도와줄 도우미가 필요하고, 시각장애인은 인도견과 미리 프린트된 점자 노트가, 청각장애인은 수업시간마다 봉사해줄 수화통역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장애에 따라 개별화된 학습프로그램 지원은 거의 전무한 현실이다. 단국대 특수교육과에 다니는 한 시각장애인은 이렇게 토로한다. “저 같은 시각장애인이 대학에서 공부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다음 학기에 신청할 과목을 한 학기 전에 미리 결정해서 전공책을 구해야 하고, 그 책을 다 점자로 바꿔야 해요. 그 과목 교수님이 바뀌면 그나마도 허사죠. 이럴 땐 녹음된 전공서적이 있는 수업만 들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도 몇 안 됩니다. 매번 친구에게 부탁할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닙니까?” 이처럼 장애학생들을 위한 학습 기자재와 편의시설 확충 요구는 절박하지만, 한편에선 장애인 편의시설에 돈을 들이는 일을 과잉투자로 여긴다. 1명의 장애인에게 돌아갈 혜택을 100명의 비장애인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아니라 ‘필수’시설”이라고 반박한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을 좀더 쉽게 만들어준다’는 편의 개념은 그 시설의 필요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그 시설들은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고위험 사회 속에 사는 비장애인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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