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역깨기 ] 2001년12월05일 제387호 

학교 자∼알 팔았다?

영주 역사상 최대의 시위를 부른 영주중앙고의 ‘뒤죽박죽 폐교이야기’


사진/ 영주중앙고(현 영주제일고/ 왼쪽 붉은색 건물)와 경북전문대 전경. 영주중앙고는 폐교됐지만 여전히 현암학원 소유로 남아 대학 부속건물로 쓰일 예정이다.


어느날 갑자기 인문계 사립고가 문을 닫는다. 꼭 문을 닫는다고만 볼 수도 없다. 인근의 공립 공업고가 때맞춰 인문고로 전환한다. 사립계 인문고를 다니던 학생들은 인문고로 전환한, 옛 공업고로 편입된다. 그렇다고 옛 공업고 교정으로 가서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 그 학교 그 건물에서 그대로 수업을 받는다. 달라진 건 학교 이름과 주인일 뿐, 선생님들까지도 똑같다.

복잡하고 이상한 ‘폐교’다. 더욱 이상한 일은, 주인은 바뀌었는데 학교터와 건물 주인은 예전 그대로라는 사실이다. 새 학교는 옛 학교 주인한테 세들어 있는 셈이다. 이 뒤죽박죽 폐교 이야기는 지난해 한 지방 중소도시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기업의 폐업이나 인수·합병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학교 통폐합’이 이뤄진 것일까.

‘교육보국 의지’인가 ‘사학재벌 음모’인가

없어진 영주중앙고(경북 영주시 휴천동)는 지난 1975년 학교법인 현암학원이 설립했다. 이사장 최현우(74)씨는 이보다 앞서 72년 영주중앙고 바로 옆에 경북전문대를 설립했으며, 94년에는 4년제 동양대(경북 영주시 풍기읍)를 세운 전형적인 지방 ‘사학재벌’이다. 그는 대구와 경북 구미에도 각각 경북공업고와 경구중학교를 소유하고 있다. 그가 지난 2000년 10월4일 경북도교육청에 영주중앙고에 대한 ‘학교공립화 전환(통합) 인가 신청’을 내면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자식처럼 키운 학교를 ‘헌납’하는 내 마음은 오죽했겠느냐.” 지난 11월29일 영주에서 만난 최 이사장의 일성이다. 영주지역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빚어지는 정원 미달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총대를 멨다고 한다. 그는 운영난을 겪고 있는 다른 학교 설립자들로부터 “4년제 대학까지 갖고 있으니 고등학교는 그만두라”는 압력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부 영주중앙고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은 그의 ‘교육보국 의지’를 훼손한 것인가? 이들은 지난해 최 이사장이 교육청에 학교 폐지신청을 하기 전부터 소문만 듣고 반발해오다 폐지신청을 하고 나자 아예 학교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수백명 규모의 대대적인 거리시위까지 여러 차례 벌였다. 그리고 한달 뒤 폐교 승인이 나자 곧바로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들어가 지금까지 법정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영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까지 벌인 동문들과 학부모들의 행동을 설명하기에, 최 이사장의 설명은 어딘가 개운치 않다. 이들은 생업까지 접어둔 채 영주중앙고를 되살리기 위해 싸우고 있다. 12월6일 내려지는 선고를 지켜보기 위해 전세버스를 대절해 대구에 있는 법원에 몰려간 뒤, 선고 결과에 따라 곧바로 대법원까지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 모든 게 과연 모교에 대한 낡은 집착 하나 때문일까.

“영주중앙고 폐지의 본질은 돈이 덜 되는 고등학교 사업을 처분하고 돈이 잘되는 대학사업을 키우려는 사학재벌의 음모다.” 이 학교 동문들과 학부모들의 판단은 최 이사장의 ‘교육보국론’과 거리가 멀다. 학교 통폐합의 속사정이 다름 아닌 돈에 있었다는 얘기다. 그 작업은 최 이사장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힘깨나 쓴다는 유지들과 관료들이 치밀하게 짠 시나리오대로 만들어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쪽기사 참조).

학교통폐합, 밀실에서 추진됐나


사진/ 지난해 10월 영주중앙고 폐교를 반대하며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는 동문들(영주중앙고 총동문회)


영주중앙고 폐지 과정은 영주공업고의 인문계 전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두 학교의 공식적인 통폐합 과정은 먼저 영주공고에서 시작됐다. 2000년 6월 이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시균 의원을 비롯해 영주공업고 총동문회 주요 인사들, 시장, 도의원, 시의원 등 55명이 영주공고의 인문계 전환 청원을 경북도교육청에 냈다. 실업계 고등학교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들어 학생모집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실제 지난해 영주공고는 정원 304명 가운데 70명이 미달이었다. 그러나 영주의 다른 고등학교보다 정원이 100명 가까이 많고 실업계 고등학교의 신입생 감소가 전국적인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도교육청 관계자도 “영주공고는 도내 실업고 가운데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은 지난해 10월2일 영주공고에 신입생 모집을 지시했다가 사흘 만에 다시 모집철회 공문을 내려보냈다. 영주중앙고가 폐교신청을 낸 바로 다음날이었다.

영주공고의 인문고 전환은 다른 인문고의 폐교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인문고가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형식상 영주공업고가 먼저 인문고 전환 청원을 냈지만, 이미 영주중앙고의 폐교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청원서에 서명했던 상당수 사람들은 영주중앙고와의 통폐합 추진은 몰랐다고 밝히고 있다. 박시균 의원도 영주중앙고 총동문회쪽이 지난해 10월23일 확인을 요구하자 “처음 알았지만 정말 이럴 순 없는 일”이라는 답변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영주중앙고 통폐합 소문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꾸준히 돌고 있었다. 영주중앙고 총동문회와 학부모들이 그해 7월까지 문제를 제기해오자, 최 이사장은 학교재산을 헌납해 ‘단독 공립화’를 추진한다고 약속했다. 최 이사장의 약속에 따라 교직원과 학부모들은 얼마 뒤 단독 공립화를 전제로 한 공립전환 찬성 의견서를 학교쪽에 냈다.

구조조정 근거도 별로 없으면서…


사진/ 영주중앙고 폐교 저지 활동을 벌이고 있는 총동문회와 학부모회 회원들.


물론 최 이사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최 이사장은 기자에게 “단독 공립화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이사장이 도교육청에 폐교요청을 하면서 첨부한 학부모들의 의견서에는 “소문같이 영주공고와의 통합이 되지 않도록 해주시고…”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신청서의 제목은 ‘학교공립화 전환(통합) 인가 신청’이었다. 통합을 전제로 한 공문의 제목에 통합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의견서를 버젓이 끼워넣은 것이다.

밀실 추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는 또 있다. 최 이사장은 “두 학교의 통폐합은 영주시교육발전자문위원회 등 지역 교육관계자들의 모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 뒤 추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두 학교 통폐합문제를 다룬 2000년 10월17일 교육발전자문위 회의록에는 직전에 열린 8월18일 회의에서 통폐합문제가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다. 시민들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이 생략된 것은 물론, 교육발전자문위 논의도 통폐합 신청이 접수된 뒤에야 진행된 셈이다.

영주중앙고의 통폐합 신청이 접수된 뒤 하루 만에 영주공고의 신입생 모집을 취소시킨 도교육청은 다시 한달도 채 안 된 11월1일 두 학교의 통폐합을 최종 결정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영주지역 고등학교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시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민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일을 처리할 만큼 시급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56조는 통합대상 학교 소재지의 지역주민 의사를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영주중앙고는 한번도 정원 미달을 겪지 않아 이 지역 인문고 가운데 신입생 모집이 가장 수월한 학교였다. 통합대상이 될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영주지역 학생수급문제도 과장돼 있다. 도교육청은 2001년 신입생이 1년 전보다 138명이 줄어들고, 2004년까지 해마다 100여명 안팎으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통폐합의 근거가 된 남자 고등학교의 경우만 놓고 보면, 2004년까지 누적 감소인원은 총 144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주지역 전체로 보아도 고등학교당 학생 수는 경북지역 평균보다 34명이 많다. 더욱이 도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는 다시 학생 수가 증가해 2007년에는 오히려 2001년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원이 영주중앙고보다 100명 남짓 많은 영주공고가 인문고로 전환함으로써 남자 인문고의 정원이 통폐합 전보다 오히려 크게 늘어나는 결과가 빚어졌다는 사실이다.

재산 안전하게 지킨 최현우 이사장


사진/ 현암학원 최현우 이사장. "교육보국의 일념으로 영주중앙고를 헌납했다"고 말했으나, 헌납한 건 학교이름 뿐이다.


2000년 10월17일 교육발전자문위원회 회의록에는 일부 위원이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통폐합을 추진하면 혼란이 올 수 있다”며 신중론을 주장한 것으로 나온다. 이에 대해 현암학원 최 이사장뿐 아니라 영주시 교육장까지 나서서 두 학교의 통폐합이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지역사회의 현안임을 거듭 강조한다. 뻔히 보이는 셈까지 애써 무시하며 사학재단과 지역유지, 교육당국이 힘을 합쳐 일을 서두른 것이다.

어찌됐든 최 이사장은 영주중앙고를 떼어내면서도 그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 대신 새로 문을 연 공립 영주제일고는 영주공고에 새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2년 동안 무상으로 옛 영주중앙고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 이사장은 “풍기읍에 있는 동양대 교정은 접근이 불편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부적합하다”며 “2년 뒤 영주중앙고 부지와 건물을 동양대의 평생교육원이나 어학원 등 영주시내 부속건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가 그 재산을 내 호주머니에 넣은 것도 아니고 법인에 귀속시켜 대학교육에 재투자하려는 것인데 뭐가 잘못됐단 말인가.” 돈 나오는 기업 하나 없이 오로지 학교를 통해 ‘영주 최고 갑부’라는 말을 듣는 최현우 이사장의 항변이다.


통폐합과정 불법이었다

현암학원이 2000년 10월 부랴부랴 경북도교육청에 영주중앙고 폐교신청을 내고, 도교육청이 영주공고와의 통합 등 복잡한 절차를 한달도 채 안 돼 일사천리로 마무리한 속사정은 무엇일까. 다음해에 차분히 진행했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영주중앙고 동문과 학부모들은 사학재단을 폐지할 때 학교터와 건물 등 학교재산을 사학재단에 귀속하도록 한 사립학교법 제35조 2의 조항을 지목한다. 이 조항은 농어촌 영세학교의 폐교를 촉진하기 위해 사학재단 폐지시 학교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도록 한 규정(같은 법 34조1항)을 98년부터 2000년까지 한시적으로 중지시키는 내용이다. 당시 현암학원 입장에서는 ‘내년은 없는 셈’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조항의 시효가 다음해에 재연장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초고속으로 진행된 영주중앙고의 통폐합과 학교재산의 현암학원 귀속 과정이 사립학교법 35조 2의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한 불법적 행정처분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법 35조 2 제1항은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를 설치·경영하는 학교법인은 학생 수 격감으로 그 목적 달성이 곤란한 경우 시·도교육감 인가를 받아 해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4항은 “해산 인가신청시 첨부한 잔여재산처분계획서가 타당한지 여부를 교육감 산하의 사학정비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영주중앙고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 학생 수의 격감으로 운영이 곤란한 형편도 아니었고, 도교육청은 사학정비심사위원회 심사도 거치지 않고 재산을 현암학원으로 귀속하도록 결정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운영의 곤란 여부는 교육감이 판단할 문제이며 사학정비심사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것은 학교법인이 해산한 게 아니라 학교법인 아래의 학교 한곳만 해산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도교육청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거꾸로 영주중앙고는 학교법인이 아닌 학교의 해산이기 때문에 특례조항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동문회와 학부모들의 소송을 맡고 있는 이석태 변호사는 “사립학교법 1조(목적)에 따르면 이 법의 주체가 사립학교 각 개체를 의미한다”며 “이에 따라 사립학교법에서 언급한 법인의 해산이란 반드시 법인 전체의 해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학법인이 2개 이상 학교를 운영하고 있을 땐 학교 한곳을 폐지하는 것은 사학법인 일부를 해산하는 것으로 봐야 하고, 반대로 학교를 설립할 때에도 동시에 두개 이상의 학교를 설립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설립 때마다 관련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현우 이사장, 재테크도 짱!

교육사업가 최현우 이사장은 이재에 밝은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영주시는 97년 10월 풍기읍 창락리 일대 2만9천여평에 공영개발 방식으로 온천 휴양단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같은해 11월부터 부지를 매입했다. 그런데 예정부지의 44%에 이르는 1만3천여평은 토지거래허가지역 지정 직전인 그해 6∼7월에 소유권이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갑자기 주인이 바뀐 이들 땅 가운데 2800여평은 최 이사장 집안이 사들인 것이었다. 나머지 땅은 현암학원 이사로 있는 서아무개(51)씨가 비슷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이들 땅은 평당 2만5천∼3만원에 거래되다 영주시에서 사들일 때는 11만∼12만원으로 뛰어올랐다. 불과 몇달 사이에 두 사람이 1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얻은 것이다. 영주에서는 한동안 영주시가 특정인들에게 개발정보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한편 지난 5월에는 영주시가 풍기읍 산법리 동양대 부근 6만여평의 사유농지를 땅주인들도 모르게 동양대 시설부지로 묶으려다 뒤늦게 이 사실이 드러나 땅주인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 땅이 학교 시설부지로 묶이면 동양대는 헐값에 매입할 수 있었다. 당시 영주시는 땅주인 대신 이들 농지와 무관한 사람들만 불러 공청회를 열고 동양대 시설부지 지정 동의서명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주=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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