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시vs비비 ] 2000년09월20일 제326호 

[시시비비] 태지여, 숨바꼭질 하지 말라

대중과의 소통 상실한 채 무의미한 이미지 놀음… 능란한 상술과 맹목적 추종만 남아


(사진/“싫어서 싫다고 말하는데 문제가 있는가“안티서태지연대 회원들이 서태지를 반대하는 포스터를 들고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서태지 반대운동을 하냐고 묻는다. 왜 반대하냐고? 왜 반대하면 안 되나? 싫은 걸 싫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가? 또 묻는다. 왜 하필 서태지인가? 간단하다. 그가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권력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서태지는 이미 개인으로서의 음악인도,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치밀한 전략을 통해 대중음악계와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거대한 문화권력이 된 것이다. 이 점에서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서태지를 그냥 단순한 개인으로 놔두라는 호소는 설득력이 있다. ‘태지 오빠’ 역시 천재적 감수성을 가졌을 뿐 우리와 같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화 속으로 사라진 ‘문화 대통령’

하지만 그는 이미 이미지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거대 기업의 상표가 되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어느 기업의 제품을 사용해보지 않고도 믿고 구입하는 것처럼 서태지라는 상표는 이미 다져놓은 이미지만으로도 100만장에 가까운 선주문과 이를 뛰어넘는 음반 판매고를 불러일으킨다. 서태지의 컴백을 전후한 파란은 그가 단순한 스타를 넘어서 이미 신화화된 권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눈치가 빠르다는 광고회사들 역시 그 파괴력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요새는 많은 다른 대중가수들도 기획사의 허수아비가 되어 철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지만 그들은 연예인일 뿐 ‘문화 대통령’이라는 저 높은 자리에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이 자리에 오르게 했는가. 무엇이 그에 대한 대중의 숭배를 자아냈는가. 이것을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과 2집으로 90년대 초반 한국 대중음악시장의 판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는 3집에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의식있는 음악인의 위치를 획득하게 되었다. 4집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을 집에 돌아오게 하고, <시대유감>으로 사전심의제도를 국회에 상정시키는 동기제공을 하는 등 그야말로 단순한 스타에서 한 시대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실질적 권력으로 성장해나간 것이다. 무엇이 대중을 움직이게 하는지 알고 있는 이 영민한 친구는 사회적 사안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강력한 그야말로 ‘진짜 정치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대중 연예인에서 출발한 서태지는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면서 대중과 점점 괴리되고 만다. 언제나 팬들이 곁에 있었다고 그는 말하지만 그에 대한 신화화는 그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현실의 모순에 눈감지 않는 사회성을 유지하던 그가 철저히 고립된 개인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산 이후 그에 대한 숭배는 여전했지만 서태지는 솔로 1집과 단지 두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것 이외에는 어떠한 인터뷰도 하지 않으며 팬들과의 소통도 차단해버린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완벽하게 고립되어진 시간에, 그가 정현철이라는 평범한 청년으로 미국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는 동안, 한국에서 서태지는 여전히 남아서 음악적 대명사의 이미지를 구축해나간다. ‘태지님이 있었더라면 우리나라 음악이…’ 혹은 ‘서태지 때문에 요새 음악들이…’라는 극단적인 두개의 이미지로 말이다.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한 개인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안간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자신에게 배타적인 문화권력을 가져다준 사회성을 없애버렸음에도 여전히 문화적 권좌에 눌러앉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이상 대중과 교류하지 않는다. 그의 앨범과 공연 모두 치밀하게 계산된 숨바꼭질일 뿐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활동할 것이다. 서태지가 없는 동안에는 대중이 서태지를 만들지만 막상 그가 활동을 시작하면 대중은 철저히 그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지만 대중의 참여는 철저히 제한되어 있는 서태지 현상.

왜 다시 서태지인가


(사진/안티서태지연대는 서태지가 대중과의 호흡을 상실하고 권력화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그 현상에서 서태지는 개인이 아니라 상징이다. 대중음악이 대중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상징이다. 매니지먼트와 비즈니스만이 횡행하는 대중음악계에 다시 돌아온 그에게 거대자본의 기획으로부터 대중을 구해줄 의향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위장전술과 불꽃이 난무하는 화려한 무대를 통해 대중을 그저 아연한 소비자로 만들 뿐이다.

어제 그가 ‘문화 대통령’이었다면 오늘 그는 ‘문화적 독재자’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의 컴백 공연을 보라. 독재자가 선사하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미리 녹음된 음악에 넋을 잃고 춤추는 사람들. 이미 그들에게 서태지가 무슨 음악을 하는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서태지가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서 음악을 들려주면서 자신들 앞에 서 있다는 사실뿐이다. 서태지가 이번에 들고 나온 것이 첨단의 핌프록이 아니라 이박사류의 뽕짝이었다고 한들 그들은 변함없이 그곳에서 열광했을 것이다.

그들이 불쌍한 것은, 핌프록이 미국의 10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한국의 10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짐작한 서태지의 문화제국주의적인 시각에 속수무책으로 놀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4년7개월의 시간이 고립된 독재자 서태지에게 한국의 독특한 문화적 토양을 잊기에 충분했나보다. 엄청난 권력을 이용해 그저 두어달 돌풍을 일으키고 다시 본토로 돌아갈 것이기에 한국의 문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

생각해보자. 서태지가 바꿔놓고 영향을 끼친 그의 음악은 무엇이었는가. 서태지는 록을 함으로써 사회적 발언을 하는 뮤지션의 자리를 획득했지만 그가 출발했던 랩이나 댄스음악만큼의 가요계에 대한 영향력은 전혀 행사할 수 없었다. 신기한 일이다. 서태지의 새 앨범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튀어나오던 수많은 아류들 중 ‘록 밴드’는 거의 없지 않았는가? 서태지의 록은 이미 서태지라는 상표에 중독되어 있던 팬들과의 소통수단이었을 뿐이며 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했을 뿐이다. 적어도 이번의 핌프록은 그의 최고의 음악적 미덕이라 할 만한 ‘새로운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언더에서는 보편화해 있고 오버에서는 여기저기서 ‘쑤셔놓은’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지가 가지고 나옴으로써 이미 핌프록은 다시 새로운 음악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바로 그의 권력이다.

이제 누가 다시 ‘왜 서태지인가’ 묻는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답할 수 있다. 그의 과도한 권력놀음을 그만두라고 충고하고 싶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대중음악계의 상징이 되어버린 서태지를 통해 돈놓고 돈먹기로 전락한 대중음악 전반에 대해 맺힌 한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행 음악의 발빠른 수입만으로는, 생동감을 잃어버린 발라드와 댄스 일색만으로는, 탁월한 매니지먼트와 탁월한 마케팅 전략만으로는 대중음악에서의 대중의 소외는 치유되지 않는다.

한국에 머무르며 대중과 호흡하라

서태지의 음악적 성공이 대중과 마니아 사이의 접합점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능력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가 대중과 완전히 고립되어 미국에서 내놓은 두장의 앨범에서 그 능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적이다.

서태지는 한국에 머무르며 한국의 대중과 호흡을 같이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획일적인 환경에서 억눌린 젊은이들의 울분을 서태지만의 언어로 체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흠잡을 데 없는 대중의 영웅으로 군림할 수 있는 방법이며 비즈니스맨이나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성공적 문화 마케팅 사례가 아닌 음악인으로서 올바르게 평가받는 길일 것이다.

투표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에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대다수 서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없듯 진정한 대중성은 앨범 판매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서태지가 독재자의 권좌에서 내려와 한 시대를 살다간 의식있는 음악인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소금냄새 비릿한 대중의 땀과 눈물을 맛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작가(zakka@orgio.net) 조약골

(anarclan@yahoo.com)/ 안티서태지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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