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 노 땡큐! 목록 > 내용   2005년10월06일 제579호
구구 팔십일 | 박민규

▣ 박민규/ 소설가


웰빙은 즉, 뺄셈이었다. 그런 눈치를, 이제 우리도 긁었다. 적게 먹고, 업무량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생활의 속도를 줄여 느리게 살고, 한적하게, 그리하여 심신의 여유를 지키는 것이 웰빙이란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되었다. 덜자, 그리고 줄이자, 버릴 것은 버리자, 빈 채로 남겨두자, 빼고 나니 살 것 같다, 이제 좀, 잘 살아보자. 인식의 전환이 있기까지는 - 잘 살아보자 외치며 달려온 지난 50년의 덧셈이 있었다. 개인도 사회도 모으자, 키우자, 찌우자, 채우자로 살아온 웃지 못할 시절이었다. 얼마든지 드세요. 소고기 뷔페가 있었고, 본전을 뽑느라 과식을 하고 소화제를 털어넣던 인간들이 있었다(먹을 땐 꼭 보릿고개 얘기를 했지, 한 오분). 야근에 특근에 잔업에 휴가 반납을 해가며 넓힌 집에, 넓어진 면적보다 두세배 많은 가구를 채워넣고 만족해하던 우리가 있었다.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바쁜 게 자랑이고, 복부 비만을 풍채라 여기고, 큰 차를 타는 게 자랑인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렇다. 이제 그것이 웰빙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알게, 되었다. 비로소 이제 당신도 내 말에 공감하겠지만 웰빙은 즉, 뺄셈이다.

이제 곱셈을 하는 거야

이제 덧셈을 하는 한국인은 없다. 모두가 웰빙을 해서가 아니라, 차곡차곡 예컨대 은행적금 같은 걸 재테크라 믿을 촌뜨기는 한국에 없다. 돈은 그렇게 버는 게 아니란 걸 우리는 알아버렸다. 그런 눈치를, 긁은 지도 오래다. 주식(株式)은 어느새 우리가 일용할 주식(主食)이 되었고, 부동산은 바야흐로 전 국민이 뛰놀고픈 꽃동산이 되었다. 돈은 이렇게 버는 거야, 그것은 곱셈이었다. 큰돈을 굴리든 쌈짓돈을 굴리든, 늙으나 젊으나 우리는 곱셈을 익히고 또 익혔다. 그것은 열풍이었다. 사오 이십, 사륙이 이십사… 칠일은 칠, 칠이 십사… 소고기 뷔페에서 열심히 고기를 집어넣던 일념으로 우리는 구구단을 외기 시작했다. 구구단은, 이를테면 글쎄 얼마 전에 산 주식이 상장되거나, 눈치로 사둔 땅이 덜컥 개발 열풍을 타거나, 시세차익으로 글쎄 얼마를 챙겼지 뭐니 - 로 구술되었다. 제가 요즘 팔단을 외웁니다. 그럼 팔육은? 사십팔! 부럽습니다. 저는 아직 삼단을 외고 있는데. 말하자면 한국인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인식의 전환은 - 실은 덧셈에서 곱셈이 된 것이지, 뺄셈으로 이어진 게 아니었다. 지글지글, 연기 한번 자욱한 우리들의 한국은, 여전히 후끈한 단체환영 소고기 뷔페다. 자, 많이들 드시오. 구구 팔십일, 이제 더는 욀 것도 없다(아차, 요즘은 인도의 십구구단을 외어야 한다지).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웰빙은 나눗셈이어야 한다

웰빙을 해봐서 알겠지만, 당신은 이것이 웰빙이 아님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안쓰럽고, 말하자면 촌스럽다. 즉 소고기 뷔페에 앉아 있는 80년대의 인간, 그 인간의 이마에 맺힌 땀을 쳐다보는 2005년의 인간, 그 인간의 안쓰런 마음 같은 것이 자꾸만 일어 나는 그만 웃지도 못하겠다. 아니 실은 울고 싶은데, 울지도 못하겠다. 미련한 것은 울거나 웃을 감정의 대상이 아니므로, 그런 것이므로. 말하자면 이제 웰빙은 즉, 그래서 나눗셈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괴로운 것은, 어떻다 해도 돈이 많아야 장땡이란 저 간단하고 명쾌한 진리 때문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도, 부정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소고기는 어쨌든 몸에 좋은 것이고, 곱셈은 편리한 것이며, 구구는 팔십일이니까. 불변의 진리를 시시하게 만드는 방법은 빨리 진도를 나가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나누기 시작한다면, 삼단이든 오단이든 각자의 레벨에서 나눗셈을 시작한다면, 곱셈은 곧 누구나 통과해버린 시시한 셈이 되고 말 것이다. 아마도 그 기분을, 웰빙을 경험한 당신은 알 것이다. 구구 팔십일 외치는 게 시들해지는 세상은, 그래서 당신과 내가 얼마나 나눌 수 있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다. 웰빙하자. 구구단은 이제 그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