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민규/ 소설가
슛. 골~인 골~인. 박주영의 슛이 쿠웨이트의 골넷을 가르던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덤블링 다섯번과 공중돌기 삼회전 반에 이은 착지, 그리고 헤드스핀을 하고 싶었으나(모, 몸이, 허리가!) 그보다는 그냥 ‘와아’라고 외치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주영아, 수수해서 정말 미안해). 이어 이동국의 페널티킥 성공과 정경호, 박지성의 릴레이 골이 터질 때까지 아아 나는, 아아 나는.
그런데… 장사는 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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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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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달리 새벽의 감자탕집은 사람들로 들끓었다. 세탁소를 하는 김씨와 자는 아이들을 두고 나온 골목슈퍼의 강씨 부부, 감자탕집 신 사장…. 축구공만 한 머리를 흔들며 우리는 축구 얘기에 열을 올렸다. 이로써 한국은 3승 1무 1패 승점 10점을 확보, 2006 독일 월드컵의 본선행을 확정짓고 - 대단하지 않습니까? 6회 연속이에요, 6회 연속! 김씨의 말에 과묵한 강씨도 술잔을 추켜올린다. 강씨는 기냥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도 했고, 박지성은 나라의 보배, 대한민국 만세라고도 했다. 거참, 이런 날은 좀 마셔요. 몸을 사리는 나에게 신 사장이 핀잔을 준다. 페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처럼, 나는 강씨의 잔을 건네받는다.
화제는 결국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와, 광화문의 붉은 물결과,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으로 이어졌다. 기억만으로도 당장 덤블링과 공중돌기와 착지와 헤드스핀을 하고 싶은 그날의 감동이, 짝짝짝 짝짝 리듬의 파도를 타고 서로의 고막과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새벽의 TV는 여전히 릴레이 골의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였고, 2006 월드컵의 전망과 한국 대표팀의 전력 분석, 선수들의 근황에 대한 리플레이 리플레이 리플레이였다.
장사는 좀 어떻습니까. 문득 그런 질문을 던지자 이 사람, 하며 신 사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축구 얘기나 합시다. 드라이클리닝이라도 받은 표정으로 김씨가 말갛게 미소짓는다. 신사장도 강씨 부부도 따라 웃는다. 우리 엄마가 웃는다, 아빠 주름살 펴졌다. 순간 그런 동요가 나는 떠오른다. 낙(樂)은 축구밖에 없고, 정부는 결국 부동산 투기에 두손 두발 들고, 뭐, 그럴 줄 몰랐다 하고, 항복하고, 장기 불황의 느낌이 이제는 들고, 교육은 힘들고, 일자리는 없고, 빈익빈 부익부, 무전유죄 유전무죄, 무엇보다 돈이 장땡이고, 정치는 어느 놈이 해도 똑같을 거 같고, 그래 그렇지 뭐, 그런 생각도 들고, 짝짝짝 짝짝 그래도 우리에겐 축구가 있으니까, 해서 술을 서너잔 더 걸치고 나자 아아 이곳은, 아아 이곳은
월드컵은 축배일까 고배일까
마치 아르헨티나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묘하게도 아르헨티나여, 울지 마세요(Don’t cry for me Argentina)란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둘리스란 영국 밴드의 목소리(앤 둘리란 예쁜이였지)를 통해서였다. 마라도나가 등장하기도 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울지 말라니. 왜, 울지 말라고 했던 걸까. 울지 않고 자리를 일어선 우리는 한 차례 악수를 나눈 뒤 각자의 집을 향해, 일터를 향해 흩어졌다. 마음 같아선 덤블링 다섯번과 공중돌기 삼회전 반에 이은 착지, 그리고 헤드스핀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그냥 ‘비틀’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지성아, 수수해서 정말 미안해). 집에 돌아와서도 간만에 본 새벽별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새벽별처럼 수수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냥 ‘와아’ 하고, ‘비틀’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이 글을 쓴다. ‘세계화’라는 이름의 이 월드컵은 우리에게 축배(祝杯)일까 고배(苦杯)일까? 나는 더 이상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지 못하겠다. 코리아여, 필승하지 않아도 된다. 부디 이제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코리아여, 울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