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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숨겨진 희생양들
부활하는 족쇄, 재임용
우리는 군부 독재시대에 체제의 이름으로 학자들에게 학문적 제재가 가해졌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체제가 못마땅해 하는 교수들을 강단으로부터 내쫓는 데 이용되었던 제도가 이른바 ‘재임용제’라고 하는 것이다. 그 제도를 자의적으로 적용시켜서 교수들을 합법적으로 캠퍼스 바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 제도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민주화되면서 실상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제도이다. 그런데, 근래에 우리 사회가 신보수화 경향을 보이는 틈을 타서 다시 이 제도의 희생양들이 속출하고 있다. 도덕성이 불투명한 사립대학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지성의 요람이라고 일컬어지는 국립서울대학교에서마저도 이 법이 악용되어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김민수 교수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재임용제도를 악용해서 교수를 부당하게 내쫓은 주체가 비리 사학재단이 아니라, 동료 교수들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충격적이다. 재임용 거부의 표면적 원인은 ‘연구실적 미달’이지만,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살펴보면, 이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심사소견서에는 4장짜리 논문의 5장을 언급하고 있는 등,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갈 정도로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유능한 젊은 학자이다. 진짜 원인은 연구실적 미달이 아니라, 김 교수가 선배 교수의 친일행각을 논문에서 언급했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문제의 논문을 둘러싸고 서울대 미대 안에서 열렸던 청문회(논문에 관한 청문회라니!) 석상에서 녹취된 대화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그 청문회에서 교수들은 김 교수에게 그 부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고, 김 교수가 거부하자 교내학술지 수록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이것은 재임용 문제를 떠나서라도 중대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교수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동료의 학문적 자유를 침해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학자의 주장을 학문적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를 들어 발표기회조차 박탈할 수 있다는 말인가? 1998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김민수 교수는 전화조차 끊긴 연구실을 외롭게 지키며 학점없는 강의를 하며 앞이 안 보이는 투쟁을 벌여나가고 있다. 학생들도 김 교수가 강단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서울대 교수들도 대책위를 꾸려서 많은 애를 쓰고 있다. 김 교수의 복직을 바라는 서울대생과 일반인들 수천명의 서명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미대쪽은 복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대 당국은 그렇다 치고, 서울대 당국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행정적 절차가 문제가 된다면, 신규채용 형식으로라도 얼마든지 구제할 수 있지 않은가? 대학 당국이 문제해결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얼마 전에는 한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영근 교수가 또다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심사대상 논문을 각각 0점과 5점으로 처리하는 등,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심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연구실적이 전혀 없는 다른 교수는 재임용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재단쪽에 해명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야만적 병영 국가, 변한 것은 없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지성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에서마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검열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김 교수와 박 교수의 투쟁은 우리 사회가 겉보기에 민주화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외롭고 고달프다. 예전처럼 이런 문제가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큰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대의 틈바구니에 숨겨져 있는 희생양들이다. 이런 희생양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세력은 여전히 해체되지 않은 채, 끈끈한 패거리의 형태로 온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미시권력들이다. 실력보다는 여전히 줄서기 능력이, 진정한 용기보다는 아부와 교언이 출세의 지름길이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올바르게 살라고 말할 용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야만적 병영 국가에 살고 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정란/ 시인·상지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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