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만평/사진 > 창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7월08일 제517호
산동네 ‘한달 동거’ 쉽지 않네

시민단체 체험단의 ‘최저생계비로 한달 살기’… 방값 · 밥값만으로도 벅찬 ‘61만원’의 빠듯함을 아십니까

▣ 사진 · 글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7월1일 송정섭(앞줄 오른쪽)씨와 김미애씨가 하월곡3동 산2번지로 이사하기 위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다.

송정섭(한림대 사회과학부 1학년)씨와 김미애(전북대 행정학과 3학년)씨는 지난 7월1일부터 서울 성북구 하월곡3동 산동네에서 한달짜리 동거에 들어갔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주최하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에 체험단으로 참가한 것이다.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러나 최저생계비의 생활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점을 알린다는 캠페인의 취지에 완전히 뜻을 같이하고 있어 한방 살림을 하는 것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한달을 지내기 위해 지급받은 최저생계비는 60만9842원이다. 이 금액에는 방값(15만원)이 당연히 포함됐으며, 수도·전기·난방비 등도 이것으로 해결해야 한다.

최저생계비란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지난 199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계측 조사를 바탕으로 최저생계비가 책정됐고, 5년째인 2004년 두 번째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5년 사이 생계비는 별도의 조사 없이 물가상승률 등을 기준으로 결정돼왔다. 2004년 이후의 조사주기는 3년으로 줄어들게 됐다.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최저생계비가 낮게 책정돼 있을 뿐 아니라 생활양식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으나 계측 항목 선정에 유연성이 없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송씨와 김씨 외에도 6명의 하월곡동 한달 체험단이 있으며, 자기 집에서 최저생계비 중 식료품비만 받고 생활하는 ‘내 집에서 한달나기’의 온라인 캠페인 참여자와 1일 릴레이 체험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경험은 올해 이루어질 최저생계비 실제 계측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 둘이 사는 방 벽지의 낙서. 이곳에서 살다 나간 원주민들의 흔적이다.

최저생계비 체험은 체험자들이 하월곡3동 산2번지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들 바로 이웃에 방을 얻어 살면서 실제 생활이 어떤지를 알아보는 데 의의가 있다. 주최쪽은 체험자들의 생활을 최저생활 수준에 근접시키기 위해 일정한 지침을 마련했다.

1. 극기훈련이 아니다. 극단적인 내핍으로 최저생계비를 극복하는 것은 체험의 원취지가 아니다.

2. 1일 3식 준수. 주어진 생활비 안에서 하루 세끼는 꼭 먹어야 하며, 친구를 포함해서 외부인한테 일주일에 두끼 이상 얻어먹어서는 안 된다.

3. 지급된 최저생계비만 쓴다. 신용카드나 현금카드 등은 당연히 쓸 수 없다. 첫날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던 현금과 카드는 압류한다.

4. 한달 동안 꼬박 체험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외박 등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 예정에 없던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뉴스를 즐겨본다는 정섭씨가 생각보다 화면이 잘 나온다면서 희색이 만연하다.

“이크~ 머리를 자르고 온다는 게 시간이 없어서 그냥 왔는데 무척 후회스럽다! 내가 앉아서 고개를 숙인 높이보다 내 머리카락이 더 길다니…. 하는 수 없이 한 손으로 머리를 돌돌 말아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감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샴푸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나중에 싱크대에서 다시 대충 감았다~!) 그러고는 샤워를 하는데 자꾸만 내 팔꿈치가 곰팡이들을 건드린다, 흠…. 샤워하는 내내 쪼그리고 앉은 탓에 다리가 저려서 나중에는 엉거주춤...^^;; 정말 샤워 하나 하는 게 이토록 힘들다니~!! 아무튼 샤워를 끝내고 나니 숙제 하나를 해결한 느낌이다^^”
- 송정섭의 수기 중에서


△ 장마철이라 후덥지근하다. 매일 씻는 것이 고역이다. 미애씨가 막 씻고 들어오자 정섭씨가 “좁아서…”라고 한마디 거든다.

장롱의 경우 내구연수는 20년으로 잡혀 있다. 2인가족에서 장롱을 새로 장만하려면 지급된 최저생계비 중 한달에 1268원씩을 20년 모아서 30만4천원짜리 장롱을 구입할 수 있다. 현실에선 기초수급 대상자들의 가정에 어떤 종류든 장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가구의 경우 새 것을 구입하려면 이런 계산을 따를 수밖에 없다. 완구의 경우 내구연수가 1년이다. 딸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줄 수 있는 비용은 한달에 169원으로 책정돼 있는 것이다. 도서의 경우는 더 현실성이 없다. 매달 282원씩 1년을 모아 3384원짜리 책 한권을 사볼 수 있게 책정돼 있다.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라 먹고사는 것에만 매달리며 한평생 최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인 셈이다. 더군다나 자식들이 최저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금액이다.

결국 최저생계비는 가난을 대물림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 정섭씨가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들에게 나누어주는 반찬을 배달하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산동네로 올라간다. 할머니는 “정성이 가득해 반찬이 아주 맛있어”라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 산 아래 밤나무골 시장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고 있다. 미애씨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깎아주세요”라고 애교를 부려보지만 쉽지 않다.


△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좁은 화장실(왼쪽). 세면과 간단한 빨래도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 그나마 다른 체험단보다 운이 좋아 수세식이다. 첫날 시장을 본 생필품들(오른쪽). 3일 동안 쌀을 포함해 식료품과 가사용품을 사는 데 8만3640원이 지출됐다.


△ 밤골아이네 공부방에서 실태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미애씨와 정섭씨는 한달 동안 여기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이 공부방은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수녀회’에서 이 지역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 2인가구에 지급된 60만9842원에서 방값 15만원과 식료품비 등을 제하고 7월5일 현재 36만4552원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