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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미안해요 베트남” 베트남전 종전 이후 첫 ‘사과’ 발언… 300만달러 들여 민간인 학살피해 지역에 병원건립도
김대중 대통령이 3년 전의 ‘유감’ 발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에 관하여 베트남쪽에 ‘사과’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 8월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천득렁(Tran Duc Luong)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한국속담이 있듯, 과거의 불행이 있었기에 우리 한국은 베트남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이해와 협력을 구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번 사과로 끝날 일 아니다”
김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단히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상회담 직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논평을 낸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상임대표 이해동) 관계자들도 이렇게 빨리 이뤄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보수진영의 반발 등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을 굳이 꺼낼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베트남전 참전에 관하여 무엇을 사과한 것일까.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들이 입은 고통’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은 이를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국빈만찬 자리에서 했던 또 한 가지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천득렁 주석에게 “베트남 중부 5개성에 병원을 지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부 5개성’이란 쿠앙응아이, 쿠앙남, 푸옌, 빈딘, 칸호아로 베트남전 당시 청룡·맹호·백마부대가 베트콩 수색·소탕작전을 펼쳤던 곳이다. 총 300만달러 규모의 예산이 책정된 이 병원건립 사업은 내년부터 약 3개년에 걸쳐 진행된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에도 중부 5개성에 200만달러를 들여 40개의 초등학교를 지어주기로 하고 현재 20개교 건립을 완공한 상태다. 베트남 중부 5개성은 한국과 베트남의 ‘어두운 과거사’를 상징한다. <한겨레21>이 지난 99년 5월부터 집요하게 보도하기 시작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기사들은 중부 5개성의 피해자들과 그곳에서 작전했던 한국군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 발족된 ‘베트남전 진실위원회’는 평화음악제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사과여론’을 조직하면서 정부를 압박했다. 대통령의 ‘사과발언’과 중부 5개성 지원사업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호치민에서도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 나온다
물론 한계는 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한국현대사)는 “한번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는 일본처럼 어물쩍 넘어가지 않는다는 걸 외교적으로 과시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사과를 하려면 우리가 어떤 고통을 줬는지 철저히 규명한 뒤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대통령만의 사과가 아닌 범국민적 사과운동이 필요하다.” 대척점에 선 비판도 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김 대통령의 주장은 ‘미국 용병으로서 베트남전 참전’이라는 운동권 주사파의 논리와 흡사하다”면서 “고엽제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경솔했던 말”이라는 논평을 냈다. 또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이는 6·25 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서 북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비판했다. 베트남참전전우회 등 일부 참전군인 조직들도 “망언”이라며 반발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국내 인권단체들의 베트남행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기독교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위원장 김정명)는 10월경 베트남 중부 5개성 지역을 방문하여 ‘민간인 피해’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베트남쪽도 소극적이지만은 않다. 호치민의 ‘사이공음반사’는 한국의 ‘베트남전 진실위원회’가 1년 전 제작했던 <미안해요 베트남> 음반을 베트남어로 번역해서 올해 말에 출시할 계획이다. ‘사이공음반사’ 응웬 캇 비(Nguyen Khat Vi) 사장은 “음반출시가 베트남사회에 커다란 공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한국의 인도주의 평화운동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한국과 베트남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원개발과 정보기술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이른바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천명했다. 양국 공동으로 대규모 유전개발에 성공했고, SK텔레콤 등 국내 이동통신업체들은 CDMA 사업진출을 위한 베트남 정부의 승인을 따냈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가 이뤄진다면, 두 나라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것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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