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마당 > 캠페인 목록 > 내용   2006년01월26일 제595호
[평택 캠페인] 평택 지키기 모금운동 출발!

[평택 캠페인_ 대추리를 평화촌으로!]

시민의 힘으로 1평에 1만원씩 되찾아오자는 의미를 담은 평화의 땅 모금운동
“싸움은 체념을 하는 순간 끝난다”고 말하는 김지태 대책위원장의 호소

▣ 평택=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내 땅에 사람 죽이는 미군 기지가 들어오는 것은 양심상 허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어질 진짜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첫 반응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전쟁-분단-군사독재로 이어지는 지난한 현대사를 헤쳐온 한국 사람들에게 평범한 농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게다가 미국을 등에 업은 정부를 상대로) 싸워 승리하기를 꿈꾸는 것은 해리 포터가 빗자루를 타고 공중을 누비는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김지태 팽성 미군부대 확장반대 대책위원장(대추리 이장)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싸움은 우리가 체념을 하는 순간 끝난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7월 대책위 활동이 시작될 때까지 논 2만여 평을 일구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농민집회에 나가자”고 하면 거절하는 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앞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투사’도 아니었다. 지난 3년의 시간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은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평생 후회하며 한평생을 살 것 같습니다. 옳지 못한 일을 가만두고 볼 순 없죠.”

<한겨레21>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는 평택 싸움을 널리 알리고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1월16일부터 ‘팽택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모금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다. ‘옳지 못한 일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당신의 작은 참여가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하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 비용으로

모금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난 1월3일부터 12일 동안 전국을 트랙터로 순례했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지역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 나주 농민들은 트랙터를 무료로 수리해주고 기름을 가득 채워줬고, 영광·함평 농민들은 트럭을 끌고 나와 우리 트랙터를 다음 도시까지 안내했다. 많을 때는 트럭 40대가 긴 행렬을 이뤘다. 영천에서는 농민들이 골목마다 나와 경찰보다 더 훌륭하게 차량 통제를 해줬다. “우리 농업 지키느라 수고한다”며 트랙터에 음료수를 한 상자 실어주는 공무원도 많았다. 그 환대를 일일이 다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의 투쟁 구호는 “올해도 농사짓자”이다. 많은 농민들이 “올봄에는 우리가 평택으로 트랙터를 끌고 가 당신네 논을 갈아주겠다”고 약속했다. 투쟁 과정에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투쟁에도 도움이 되면서 쉽게 시민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모금을 떠올리게 됐다.

참여 방법은.

=국방부가 미군 부대를 위해 평택에서 수용한 땅이 모두 285만 평이다. 지난해 12월 말 국방부는 법원에 보상금을 공탁한 뒤 땅의 소유권을 이전해갔다. 정부는 사람이 만든 법으로 땅을 강탈해갔지만, 우리에게는 자연법이 있다. 우린 그 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 (법적으로는 의미가 없지만) 국방부가 빼앗아간 땅을 국민의 모금으로 1평에 1만원씩 다시 사오자는 게 모금운동의 취지다. 국방부가 빼앗아간 땅은 우리 부모들이 눈물로 갯벌에 뚝을 쌓아 한 땀씩 개간해 만든 우리 땅이다. 미군은 그 땅에 3m씩 흙을 덮어 채운 뒤 앞으로 100년은 쓸 수 있는 튼튼한 미군기지를 만든다고 한다. 시민의 힘으로 그 땅을 다시 빼앗아오자는 것이다. 한 사람이 1만원씩만 보태면 된다.

돈은 어디에 쓰이나.

=평택 팽성에 미군기지 확장반대를 위한 대책위가 꾸려진 게 2003년 7월이다. 지난 3년 동안 확실히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모든 투쟁에는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무실 운영비·전기세·비품비 등 일상적인 활동도 물론이지만, 집회 하나 준비하려면 돈이 몇백만원씩 들어간다. 이번 트랙터 순례 때도 애초 예산을 1500만원 잡았지만 각 지역의 농민들이 기름값·숙소 등을 지원해줘 예산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동안에는 평택 농민들이 일년에 몇천만원 되는 투쟁 비용을 감당해왔다. 본격적인 불복종 운동이 이어지면 기소도 되고 벌금도 물어야 한다.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부상자도 생겨날 수 있다. 농민들의 힘만으로 그 비용을 다 감당하기 힘들다.


△ 평택 평화의 땅을 지키겠다고 결심한 젊은이들은 1월16일 대추리 어귀에 평화의 텐트촌을 세웠다. 주민들이 버티고 떠난 빈집에 모여든 평화 활동가들도 하나씩 늘고 있다.

앞으로 투쟁 계획은.

=국방부와 협의 매수에 임하는 주민들 때문에 마을에 빈집에 많이 생겼다. 이에 맞서 빈집에 자발적으로 이주하는 평화활동가나 시민들도 많다. 1월16일 마을 어귀에 평화의 텐트촌이 세워졌고, 대추리를 평화촌으로 만들기 위한 빈집 점거운동도 계속되고 있다. 평택 이주자들을 위한 숙소인 ‘평택 지킴이네 집’과 이들을 위한 ‘우리 동네 지킴이 안내소’가 문을 열었다. 평화활동가들이 빈집 3개를 새로 고쳐 입주해 들어갔고, 빈집 2개가 새로 수리 중이며, 수원 여성회·다산인권센터·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사회진보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도 빈집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1월24일부터는 명사들의 ‘일일 대추리 주민되기’ 행사도 열린다. 첫 방문객은 단병호 민주노동당 위원이고, 그 다음으로 박원순 변호사가 마을을 찾는다. 2월10일부터는 평택이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 등 문화예술인들이 주말마다 대추리에서 콘서트도 연다.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미군기지 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www.antigizi.or.kr) 홈페이지에 가면 투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황새울을 지켜주세요

[평택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 현재 모금액 1월20일 현재 43만원

여러분이 내신 성금이 평택으로 몰려오는 미군들의 캐터필러 소음을 멈출 수 있습니다. 성금이 한두푼 쌓일 때마다 “올해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소망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평택 황새울을 지켜주세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모금자명단 김정효 임종진 이정아 김태형 이종근 고경태 곽윤섭 유현산 신승근 김창석 김수병 김소희 조계완 김영배 신윤동욱 김수현 류이근 남종영 길윤형 구둘래 박승화 윤운식 류우종 정인택 정인환 윤강명 이미경 이유진 김난희 전철홍 홍세화 박주희 박임근 박용태 손혜연 김화령 조혜정 김규원 이정훈 김국화 강병수 이영준 최정미 (이상 43명)



어떻게 만든 논인데, 그걸 달라고…

[들이 운다]

밤새 손이 안 보이도록 일했던 바깥양반, 내 손을 잡으며 막 울었지


△ 최종숙(7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70-7

난 헌 대추리(주민들은 미군 부대로 변한 옛 마을 터를 ‘헌 대추리’ 또는 ‘옛 대추리’, 쫓겨난 뒤 새로 정착해 일군 마을을 ‘새 대추리’라고 부른다)에서 쫓겨난 게 아니고 딸 하나 데리고 바깥양반하고 여기 그냥 오두막 하나 사가지고 왔어. 와가지고서 밤새 그냥 손이 안 보이도록 일만 했어, 우리 바깥 양반은. 먹고살 수가 없으니까 도랑이고 어디고 그냥 삽으로 파가지고서 거기다 모 얻어다가 주워다가 심어서 거기서 벼이삭 나면 먹고 그랬슈. 고생 진탕 하다가 돌아가셨어.

여든하나에 가셨는데 운명하실 때 그냥 막 울으셔. 어떻게 장만한 논인데 그걸 달라고 그러냐고. 아 이렇게 내 손을 잡고서 우셨다니까. 사람은 죽을 때 굶어야 죽는 거라고 일주일을 굶더라고. 막판에 나 하나 두고 가니까 생목숨 갈지 말고 사는 데까정 살다가 오라고 하더라구. 아이구, 뭐가 그냥 원통해서 그냥. 할아버지 사진? 머리띠 맨 것도 있고 지팡이 짚은 것도 있고. 그런데 싹 없어졌어.

무릎 이런 데가 죄 골병 들어가지고 아파서 어디 옹그리고 오래 있덜 못해유. 말도 못하게 고생했지. 이런 콘크리트 바닥에서 자식을 낳고 잤다면 말 다했지. 고생한 얘기 어디에다 다 해유. 내가 젊으면 어디 가서 일이라도 해주고 먹고산다지만, 지금 늙어빠져서 갈 때가 다 됐으니 누가 일을 주기나 해유?

우리가 여기에서 60년 살았지. 그렇게 간신히 어떻게 다리 뻗고 잘만 하니까 나가라고. 여기 나가면 어디서 살아, 못살지. 난 그거야. 뭐 숨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그냥 이 집에서 내 생전 살다가 땅속으로 가는 게 소원이지 다른 거 없수. 누구라고 해서 미운 것도 없구. 그런디 여기서 쫓겨난다는 것은 진짜 너무혀. 돈 있으니 딴 데 가 집을 사. 돈 있으니 땅을 사서 벼 이삭을 잘라먹어.

이거 해가면 대통령한테 들어가는겨? 저 노인네도 앉혀놓고 하구려. 옆집 금순네도 가고.

* 인터뷰 평화바람 활동가 두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