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용병이었다고요? 용병이라니요.”

수화기 저편에선 훌쩍거렸다. “대답 좀 해주세요. 제가 정말 용병이었습니까?” 그러더니 목소리가 높아졌다. “난 한번도 용병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나라와 국가를 위해서 싸웠지, 언제 우리가 돈 벌러 갔습니까.”

참전군인들은 억울하다며 열변을 토해냈다. 일단은 모두 들어줘야 했다. 그래서 한번 연결된 전화통화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30분 이상이었다. 고엽제전우회원들의 한겨레신문사 습격사건 이후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가 공론화되는 분위기에서 이러한 전화들은 더욱 폭주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개 비슷했다. 첫째, 전쟁은 다 그렇다는 것. 특히 베트남은 전선이 불분명했다는 것(참전군인들은 개별적으로 처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이 말을 수백번 들었던 기자는 솔직히 좀 지루했다). 그래서 기자 양반들은 전쟁을 모른다는 것. 결국 ‘양민학살’이라는 말은 ‘민간인피해’라는 말로 순화시켜야 한다는 것.

둘째, 자신들은 본인 스스로 단 한번도 용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 여기엔 국가안보와 베트남전 참전의 연계성을 설명하는 역사적 상황논리가 꼭 등장했다. 베트남전 참전을 안 했으면, 미국이 남한에 있던 주한미군 2개 사단을 베트남으로 돌려, 북한이 남침했을 거라는 거였다. 궁극적으로는, 남한의 자유수호를 위해 베트남에서 싸웠다는 것이다.

지난 7월6일 밤 11시에 생방송으로 방영된 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주요하게 등장했다. 앞서의 논리는 이날 패널로 참석한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씨와 군사평론가 지만원씨가 주장한 것이기도 하다. <한겨레21>이 제기했던 ‘베트남에서의 양민학살 문제’가 ‘베트남전의 본질과 성격’이라는 원론으로 거슬러올라간 느낌마저 든다. 이날 토론에서 양민학살 문제는 아주 적은 시간 동안 소홀하게 취급됐기 때문이다.

좋다. 백번 양보해 전쟁에선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게 마련이라고 하자. 용병이 아니었다는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도 인정해 주자.(개별 병사들을 용병으로 매도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용병이라고 하는 건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국군이 미군을 위해 돈을 받고 대신 피흘렸다는 의미에서다.) 어쩌면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의 핵심이 아닐 수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베트남전의 특수성을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양민학살’은 명백하게 있었다는 사실이다. 불가피한 민간인 희생이 아니라,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양민학살’은 존재했던 것이다.

그 일부는 <한겨레21>이 꾸준하게 보도해 온 기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증언으로 드러난 바 있다. 학살은, 한국군이 작전 개시 전 “민간인들은 피하라”고 선무방송을 했다는 적 통치지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안전마을’ 내에서도 그런 일은 있었다. 그 결과 ‘한국군 양민학살’을 베트콩의 소행으로 조작한 해병 헌병대 수사계장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양심에 멍에를 지고 사는 것이다(<한겨레21> 310호 26쪽 참조).

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것일까. 더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은 소용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채명신 장군도 토론에서 말했다시피 ‘전쟁에서 불가피한 민간인 피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이고 악랄한 양민학살이 정말 있었는지 공정하게 조사해보면 된다. 채명신 장군 역시 여기에 동의했다. 그 진실이 밝혀질 때 베트남전의 성격과 본질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눈물까지 흘리며 “왜 우리의 명예를 짓밟느냐”는 참전군인들의 항의전화를 받는 심정은 안타깝고 착잡하다. 그리고 답답하다. 그들이 이국땅에서 싸우고 싶어 싸운 것이 아닌데… 누가 그들을 혼돈에 빠뜨렸는가.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고경태 기자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