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문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20대 여성들의 도락, ‘야오이’의 은밀한 사랑에는 엿보는 쾌감이 있다
“변태 맞아요. 그냥 즐기게 해 줘요” 잘나가는 사업가이자 멋진 독신남인 윤현빈(32). 어느 날 저녁, 그의 대학 시절 과외교습 제자였던 서민우(19)를 길에서 재회한다. 어느덧 잘생긴 대학 1학년생이 된 민우. 항상 그를 귀엽다고 생각해왔던 현빈은 민우와 술을 나누고, 그날 밤 현빈은 민우의 매력과 술기운에 휩싸여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마는데…. 민우는 “나는 호모가 아닌데”라며 괴로워하지만 어느덧 현빈에게 사로잡힌 자신을 발견한다. 현빈의 거듭되는 구애에 민우는 볼을 붉히고, 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사랑을 키우며 도시의 밤을 불태운다. 이렇게 야오이물은 동성애자의 현실적 고통을 다루기보다 환상적인 로맨스를 그린다. 이런 점에서 야오이는 동성애물과 구분된다. 동성애물과 야오이를 동일시하는 것은 동성애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성희롱이라고 생각하는 야오이 팬들도 있다. 만화, 소설, 영화, 만화영화, 라디오CD(일본 라디오 성우들이 녹음한 야오이물) 등 야오이의 형태는 다양하다. 야오이란 말은 일본어에서 연유했다. 야마(극적인 부분)도 없고, 오치(반전)도 없고, 이미(의미)도 없다는 뜻으로, 각 글자 머리를 따서 야오이라고 부른다. 속칭 ‘y물’이라고도 한다. 대개 핸섬하고 돈많고 기골이 장대한 ‘능동적 남자’와, 젊고 아담하고 귀엽고 보살펴줘야 하는 ‘수동적 남자’가 주인공이다. 야오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경악하는 이유는 그 내용 때문이 아니다. 이 내용을 보고 즐기는 계층이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이성애자 여성들, 이른바 ‘멀쩡한 여자들’이라는 데 있다. 그 중에는 직장여성과 여고생이 대다수고, 30∼40대 가정주부도 있다. 게다가 야오이의 핵심은 성교 장면이다. 모든 이야기구조는 “그와 그가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배치된 것이다. 이 때문에, 야오이물은 “변태다” “포르노 마니아다”라는 비난을 자주 듣는다. 통신상에 있는 야오이 동아리는 1년에 몇번씩 홍역을 치른다. “어떻게 여자가 이런 소설을 본담”류의 글이 게시판에 올라와 반박-재반박을 거치다 한두 사람이 통신을 떠나는 일도 허다하다. 대개 이런 논의는 여자 대 남자로 전선이 갈려 평행선을 달리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야오이 팬들은 차라리 이렇게 말한다. “변태 맞아요. 그러니까 그냥 즐기게 놔두세요.”
패러디 야오이, 허준이 유도지를 덥친다?
동성애 만화 거기다 야오이는 한 가지 이점(?)을 더 가진다. 남녀관계보다 부담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남녀관계에선 주변 인물들이 끼어들게 되거든요. 부모님 친구 등등….그런데 야오이는 오로지 일대일 관계만 중요해요. 원천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하니까, 순간에 충실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고….”(야오이 팬 신아무개씨·30대·여) “이성간에는 잘못하다가 덜커덕 임신해버릴 수도 있고, 불륜이니 뭐니 복잡하죠. 그러나 언뜻 생각하기에 남자+남자라면 일단 ‘증거’는 남지 않잖아요.”(팬 서아무개씨·20대·여) 이렇게 부담없는 파트너가 밥해주고 청소해주고 목욕시켜주고 심지어 자장가 부르며 재워주기까지 한다. 탐미주의, 신데렐라 콤플렉스, 내 얘기가 아니라는 편안한 거리감,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어서 야오이의 인기를 부른다. 패러디 야오이의 경우는 또 다르다. 패러디 야오이는 이미 나와 있는 만화의 캐릭터를 변조해서 야오이만화를 만들기도 하고, 시중에 알려진 스타들을 묶어서 소설을 쓰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를 팬픽(fanfic)이라고도 부르는데, 팬픽의 강점은 기존에 존재하는 캐릭터를 움직여 쓰기 때문에, 순수창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패러디 야오이만화는 <슬램덩크> <에반게리온> <바람의 검심> 등 인기가 높았던 원작의 주인공들을 동성애 사이로 바꾸는 방식이 흔히 쓰인다. 가령 <슬램덩크>의 두 주인공 강백호와 서태웅이 사랑에 빠지는 식이다. “강백호는 서태웅이 하는 일이라면 질투심을 가지고 보잖아요. 서태웅은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강백호한테 툭툭 한마디씩 던지고. 그런 걸 독자들이 보면서 ‘사실은 얘네들 숨겨진 애인인 거 아냐? 그럼 재미있겠다’ 하고 상상해보고, 그러다가 그렇게 만들어보는 거죠.” 야오이 팬 이아무개(23)씨의 말이다. 최근 나온 가장 엽기적인 창작 야오이는 <순풍산부인과>의 장인 오지명과 사위 박영규가 사실은 애인 사이였다는 이야기다. 허준이 유도지를 사모하여 덮치는 <허준> 패러디도 있다. “이는 원전에 대한 오마주이자, 장난이다”라고 야오이 팬 서씨는 밝힌다. 원전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형놀이 하듯이 장난쳐본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패러디 야오이를 이성애자 남자들도 곧잘 보는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런 야오이는 인터넷 사이트와 통신 팬클럽을 기반으로 생산되고 소비된다. 야오이 만화가 중에는 프로작가들도 있고, 직업만화가 중에서 야오이 소설의 삽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야오이 생산의 주체는 소비자다. 야오이문화는 소비자가 쉽게 생산자로 변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름 그대로 개연성이 있을 필요도, 반전을 만들 필요도 없고, 캐릭터를 빌려와도 된다. 따라서 글재주가 없어도 바로 쓸 수 있다. 인기소설을 통신에 올리면 히트 수는 5천∼6천번을 기록한다. 야오이 소설가 서아무개(31·여)씨는 야오이 소설을 2권 출판한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96년에 야오이 판매전에서 야오이소설을 봤는데,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통신상에 올리다보니 책낼 분량이 됐죠.”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창작되는 야오이소설은 한권에 8천∼1만원 나가는 고가인데도 인기작가의 경우 판매전 한번에 400권에서 500권 정도 팔 수 있다. 국내에서는 야설록프로와 동산출판이 공식적으로 야오이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만화의 경우는 이보다 제작에 공이 드는 편이다. 오프라인으로는 아카(ACA: 아마추어 만화연합)나 야오이소설 동호회 게토에서 판매전과 소모임을 통해서 회원들끼리 책을 바꿔보거나 사본다. 판매행사를 한번 열면 성인만 입장 가능한데도 2천∼3천명씩 몰린다고 한다. 동인지는 한번에 400부 정도 찍기 때문에 나중에 가서는 구하기 어렵다. 이 점을 노려 미리 사두었다가 프리미엄을 붙여 통신상에서 팔기도 한다. 야오이 시장의 규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웬만한 야오이 인터넷사이트의 방문 수는 20만번을 가뿐히 넘어서고, 하루에도 몇개씩 인터넷 야오이클럽이 신설되는 것을 볼 때 그 규모가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불평등한 주종관계의 문제점도 문제는 이 만만치 않은 규모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판매전이나 통신동호회에서 아무리 엄격하게 미성년자를 규제해도, 야오이 사이트들에는 미성년자들을 위한 국경이 없다. 설혹 있다고 해도 해외사이트에서 바로 퍼올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이에 대해 야오이 팬들은 “중고생들이 야오이 보는 것은 걱정된다. 그러나 야오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야오이는 원래 성인여성이라는 한정된 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항변한다.
미성년자 문제 외에도 야오이문화는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동성애 문화운동가 서동진씨는 야오이에 대해 “관계 미성숙자들이 즐기는 장르”라고 규정한다. 동성애를 그린 만화
이민아 기자 mina@hani.co.k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