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과 사회 ] 2001년04월17일 제355호 

[사람과사회] 시여, 성희롱의 무기여

박아무개 시인의 욕설 같은 글, 창비 인터넷 자유게시판에서 공방 파문



시적 창작의 자유인가, 시의 형식을 빌린 성폭력인가.

창작과비평사(창비) 인터넷사이트 자유게시판은 지난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쑥대밭이 됐다. 발단은 시인 박아무개씨가 올린 장문의 글이다. 제목과 부제목, 부부제목까지 달고 있는 이 글은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가 난무한다. “열린 XX와 그 적들” “벌린 XX” “꼴린 XX” “암똥개” “개XX” “변소” “구더기 몇 마리나 득실댈” 등의 노골적인 표현과 함께 “금-OO”이라며 특정인의 이름이 연상되는 호칭을 넣었다. 또한 특정인 김아무개씨를 둘러싸고 떠도는 소문을 빌려 그를 모욕하고 있다. “금-OO에 대한 또다른 한 명상”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글은 김아무개씨의 전공분야까지 문제삼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같은 글을 문인들에게 우편으로도 발송

박씨는 3월18일부터 사흘간 줄곧 아이디를 바꾸며 같은 글을 올렸다. 3월20일 창비의 웹마스터가 뒤늦게 이를 삭제하자 “웹마스터와의 합의” 운운하며 자신의 실명으로 다시 글을 올렸다.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급기야 창비의 상임고문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지울 것을 요구했다. 그는 결국 “이OO님의 간곡한 권유로 게시판에서 내리기로 한다”고 밝힌 뒤 자신은 “인터넷 시대의 익명의 괴물들과 싸우고 있는 전사, 혹은 전위시인 박아무개”이라며 의기양양하게 글을 지웠다.

그러나 그뒤로도 계속 관련된 글을 올리는 바람에 공방은 끊이지 않았다. 3월27일에는 평론가 반경환씨가 “박아무개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다. 김OO처럼 정조가 헤픈 여자가 아니다”라며, 김아무개씨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자신과 친분이 있는 박씨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반씨는 줄기차게 문학권력 논쟁과 안티조선운동을 들먹이며 네티즌을 자극했다.

결국 두 사람의 언어폭력을 견디다 못한 여성문인 김아무개씨는 지난 4월4일 두 사람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소했고, 여성문화동인 ‘살류쥬’(www.salluju.or.kr)는 연대의 차원에서 소송비용을 공개모금하기 시작했다.

냄비같이 들끓는 인터넷의 속성을 차치하고라도 특정 문인이 특정 문인에 대해 악의적인 폭언을 퍼부어댄 이유는 무엇일까.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한 문인은 “우리 문단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최악의 버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혹여 ‘똥물’튈까 몸사리는 문단의 태도와 남근주의적 여성모독이 바로 그것이다.

창비 게시판에서 글을 지운 다음날 박아무개씨는 “꼼수를 쓰는 집단이기주의자들(대중)의 시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삭제를 당하는 수모까지 겪은 바 있어도 이 아침에 행복한 봄을 느낍니다/ 간밤에 예쁘고 싱싱한 한 새로운 ‘어린 여성천재’와 밤새 인간이 육체를 가진 동물이라는 사실을 서로 기쁘게 확인했었거든요”라며 읽는 이들을 조롱하고 있다.

이 사건의 전후과정을 알고 있는 일부 여성 네티즌들은 최소한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허물어질 정도로 모욕적인 언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사흘간 문제의 글을 방치해 비판받았던 창비는 그뒤로도 박씨에게 공개경고를 하거나 아이피 차단을 검토하는 등의 가시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창비의 고문 중 한 사람은 이에 대해 “민감한 문제라 나서서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다”며 “어린애도 아닌데 어떻게 입에 재갈을 물리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이미 지난 2월 초 하이텔의 40대 메모판에 이 글을 ‘창작시’라며 수차례 올렸고, 같은 글을 문인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형사고소된 지 열흘쯤 지난 4월15일 박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금-OO이란 호칭은 시적 상징과 은유이지 김아무개씨를 뜻한 게 절대 아니다”고 거듭 주장했다(상자기사 참조).

평론가 반경환씨는 지난해부터 통신과 인터넷상에 여성문인 김아무개씨를 실명거론하며 문단권력과 지식권력에 줄을 못대 앙탈하는 천박한 페미니스트로 몰고 간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박씨 옹호론을 펼친 뒤 김씨의 남편까지 수차례 실명거론하면서 사생활을 침해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OO씨께 사과를 드리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장황하게 실어놓아 김씨를 ‘확인사살’하기에 이르렀다.

그 어느 문인도 박씨를 만류하지 않았다



또한 고소당한 당일 ‘법정 출정식에 앞서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문단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처럼 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다가 이름이 거론된 진보인사들이 “반씨의 입장에 대해 들은 바 없고, 설혹 들었더라도 반대했을 것”이라는 내용의 해명글을 올리는 바람에 망신을 사기도 했다. 반씨는 4월1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안티조선 진영에 계속 사이버테러를 당하다 홧김에 한 일”이라고 밝히며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 사건의 옳고 그름은 이제 법률적 판단에 맡겨졌다. 이에 대해 문단 내부의 반응은 어떨까.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여성문인은 “이 사태를 지켜보았지만 너무나 민망하고 모욕적이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며 “우리 문단의 자정능력과 여성으로서 무력감을 깊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른 여성문인은 “이 일이 오랜 문학권력 논쟁과 안티조선 논쟁을 배경으로 한 만큼 발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칫하다가는 술자리나 사적인 영역에서 ‘말도마’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남성문인은 “문제의 글을 올리고 뿌린 박씨는 비난받아야 하고, 문단 역시 방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미온적으로 말했다.

전화통화를 시도한 결과, 상당수의 문인들은 문제의 글을 우편으로 받았거나 논란의 전후과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박씨의 개인적 일이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라 말하기가 곤란하다”며 이야기를 꺼렸다.

박씨는 지난해 5월 술자리에서 한 여성시인을 성추행하고 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에 계류중인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줄기차게 통신에 글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해 왔고, 그를 고소한 여성시인은 직장을 그만둔 뒤 악성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문단의 책임있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박씨를 만류하거나 그의 인신공격적 글들에 정색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을 개인적 자질문제로 치부하며 팔짱끼고 있던 문인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공식적으로는’ 침묵을 지켰다.

창비 게시판 사건은 법률적 판단 이전에 우리 문단에 커다란 숙제를 안긴다. 우리 문단의 허약한 체질이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주받은 시인의 운명’이라는 표현이 유효하던 시절 문인의 기행은 지배질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이해되곤 했다. 하지만 동료 여성문인을 향해 공공연히 성적 비하를 일삼는 행동까지 문학적 기행으로 용인하던 시절은 한번도 없었다.

한 문학평론가는 “문학이 상징권력을 획득한 오늘날, 문인의 행동이 시민의 양식에 반한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포기한 일”이라며 “공적 영역에서 논의돼야 할 사안이 온갖 사적 구설수로 도배된 채 법률적 판단으로 넘어간 것은 우리 문학계에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고 씁쓰레해 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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