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3년07월17일 제468호 

“인재여, 제발 우릴 좀 봐 주세요”

최근 광주·전남지역 등 지방대 연합 움직임 본격화…지방사립대도 특화 등 살기 위해 몸부림

“돈 끌어오려는 ‘꼼수’ 아니야?” “무슨 소리야. 시도 자체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7월2일 오전 전남대에서 열린 광주·전남 지역 5개 국립대 총장 기자회견 현장. 회견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이날 목포대·목포해양대·순천대·여수대·전남대 총장들은 ‘광주·전남 지역 국립대학 연합대학체제 구축을 위한 총장 합의서’에 서명했다. 구체적 추진방안은 앞으로 각 대학이 동수로 참여하는 ‘실무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협의한다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연합·통합 가능한가


사진/ 광주·전남 지역 5개대 국립대 총장들이 7월25일 차례로 서명한 ‘연합대학 구축’ 합의서를 함께 들어 보이고 있다.


발표문이 기대와 달리 평이했던 탓인지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연합대’라는 개념이 통합의 전 단계인지가 궁금증의 핵심이었다. 여수대 김하준 총장은 ‘연합대’의 개념을 ‘교수나 학생들이 캠퍼스를 옮겨다니며 가르치고 공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했다. 다만, “예를 들면 ‘전라대’라는 학교 명칭을 두고 (각 대학을) ‘전라 1대학’, ‘전라 2대학’ 등으로 부르는 방안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해, 대학 통합의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한 국립대 관계자는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합의문에 통합이라는 말을 넣을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빚어졌다”고 털어놨다. ‘통합까지도 고려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자는 주장과 ‘협력대학 체제에서 (발표문이) 더 나가면 내부 반발에 부닥친다’는 반론이 맞섰던 것이다. 결국 “꽃이 피기도 전에 오므라들 수 있다”며 합의문의 수위를 ‘연합대학’ 수준으로 낮췄다.

목포대 조기정 기획처장은 “과거엔 대학들이 ‘통합’ 얘기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 필요성은 수긍하는 분위기로 변했다”고 전한다. 따로 가더라도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고, 추가모집을 통해 학생 수를 채울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통합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지방 국립대도 경쟁력이 떨어지면 도태된다는 위기감이 널리 확산됐다는 이야기다.

이런 움직임은 지방대가 처한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뭔가 바꾸고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배어 있다. 이에 앞서 2001년 5월29일 경북대와 금오공대, 대구교대, 상주대, 안동대 총장이 모여 ‘국립대 발전계획 및 교류분야별 시행세칙’을 만들어 조인식을 했으니 다른 지역도 사정이 비슷한 모양이다.

문제는 과연 대학 연합이나 통합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총론(통합)에는 찬성하는 대학 구성원들이 각론(학과 통폐합 등)에서 자신의 신분문제와 연결되면 ‘결사반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순천대 김훈호 기획처장은 “그러면 남북의 통일이 가능하다는 확신 때문에 추진하느냐”고 되묻는다. 지역 인재를 붙들기 위해서는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하고, 이는 대학간 연합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김 처장의 지론이다. “방학 동안 학점을 교류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요. 전자도서관 구축 등 공동투자 사업도 하면서….”

5개 대학의 통합 노력은 남북이 한반도 통일의 전 단계로 교류·협력부터 시작하는 것과 닮았다. 예전처럼 ‘잘나가는’ 한 대학(전남대)이 ‘콩치고 팥치면서’ 다른 대학들을 아우르려는 ‘흡수통합’ 목적이 아니어야 각 대학 구성원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협력강화→연합구축→통합완료 등의 단계를 밟아나가자는 계획도 닮은꼴이다.

수도권에 다가가려 2캠퍼스 추진


사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전남대 학생들. 지방대에는 뭔가 바꾸고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우선 전통과 지리적 특성을 살리는 부문을 선택해 집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목포해양대와 목포대에 해양·도서 연구를 집중시키고, 순천대에 물리·농업 분야를 특화할 수 있으며, 여수대는 수산부문에 경쟁력을 갖추는 식이다. 이런 협력을 통해 목포권(목포대-목포해양대)과 동부권(순천대-여수대)이 연합을 이룬 뒤, 전남대와 연합하는 ‘1대학 3캠퍼스’ 체제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통합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각 대학의 이해관계가 상충될 경우 후속 사업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구·경북 지역 5개 국립대가 2010년까지 통합하기로 계획을 구체화하고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이 좋은 교훈이다. 광주·전남·전북 9개 국립대도 2001년 합의 교류 협정서까지 교환하며 의욕을 보였지만,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전남대 김현태 기획처장은 “5개 국립대의 노력을 지역 주민들이 지지하고, 교육부가 힘만 실어준다면 통합이 의외로 쉽게 갈 수도 있다”고 낙관했다. 특히 교육부가 현 ‘국립학교 설치령’에 포함된 5개 국립대를 ‘광주·전남 지역 국립학교 설치령’으로 떼어놓을 수 있도록 법제화한다면 통합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교직원들의 신분을 보장해주고, 5개 대학 총장 외에 ‘총총장’(명예총장)에게 예산권과 인사권만 주면 통합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5개 국립대 기획처장들은 15일 목포대에서 첫 ‘실무추진위원회’를 열어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난감해진 것은 국립대보다 사정이 훨씬 나쁜 지방 사립대학들이다. 국립대의 ‘합종연횡’ 움직임을 지켜보는 광주·전남 지역 9개 사립대들은 “실현 가능성이 있겠느냐”면서도 파장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사립대 기획처장들 사이에서도 사립대별로 학과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이 오갔다. 지방대학들의 ‘소리 없는 전쟁’인 셈이다.

사립대라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일부 사립대는 수도권 부근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제2캠퍼스 신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물론 “지방대가 지역을 외면해서야 되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뒤따른다. 하지만 “지방에만 있으면 학생들이 오지 않으니 어쩌겠느냐”는 게 사립대학쪽의 항변이다. 호남대는 충청권에 캠퍼스를 설립하기 위해 지난 1월 천안에 20만평의 터를 사들인 뒤, 지난 3월 교육부에 이전신청 승인을 요청했지만 보류 상태다. 목포 대불대도 충남 당진에 4만평을 구입한 뒤, 제2캠퍼스 설립을 추진 중이다. 대불대 김형만 기획처장은 “서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수능 점수가 낮아지는 것이 현실 아니냐”고 반문한다.


사진/ 조선대는 해외 캠퍼스 운영 등 국제화 부문을 특화하고 있다. 조선대 해외봉사단 학생들이 캄보디아를 찾아 현지 주민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조선대는 해외 캠퍼스 운영 등 국제화 부문을 특화하고 있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은 사립대들은 전자도서관·최첨단 강의동 건설, 기숙사 증축 등 교육 여건을 확충하며 안방에서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해 산업대에서 일반대로 전환한 광주대는 수도권 등 외지 학생 유치를 위해 기숙사 시설을 대폭 늘리고 있다. 한의대 설립으로 이름이 알려진 동신대는 나주시의 특화사업인 생물산업을 키우고 한의학과 연계해 민족의학에 독특한 위치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짰다. 실용교육을 기치로 내건 목포 초당대는 독특한 ‘연구방 제도’를 도입했다.

전문대들도 구조조정 시작

광주·전남 지역 2년제 전문대학들도 도립대학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전남도는 최근 담양대와 남도대학(전남 장흥)을 통합하기로 한 뒤, 학과 통폐합 및 교수 인원 조정 등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방대의 위기는 학생들이 지방대를 선호하지 않는 추세에서 비롯된 경영적 요인이 크다. 전남대 성진기 교수(철학)는 “지방에 수요가 없는데도 똑같은 학과를 운영하기보다 대학간 연합 및 통폐합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며 “지방대의 자구노력도 필요하지만 지방대 출신들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도록 산업의 균형발전을 꾀하는 정부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한겨레 사회부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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