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01년05월15일 제359호 

“돈벌려면 학교를 세워라”

어느 사학관계자의 생생한 고백…족벌들이 자자손손 말아먹는 이 엄청난 현실!


사진/ 크고 작은 사학분규의 배경에는 족벌세습을 보장하는 낡은 제도가 버티고 있다. 사진은 학생들에게 점거된 덕성여대 총장실 주변.(강창광 기자)


설립자의 처는 이사장, 딸은 학장, 이사장의 오빠는 이사, 이사장의 동생은 매점경영, 아들은 학교건물 공사업자 선정 담당, 외사촌은 서무과장, 학장의 남편은 기자재업자 선정 담당, 학장의 남편 제자들은 경리담당과 시설담당…. 사학의 족벌경영 실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회의원 이사장, 오히려 호통치다

지난 3월 초 사립학교법 개정문제로 국회가 한창 시끄러울 때 한 독자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저는 30년간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다 퇴직 뒤 수도권에 소재한 한 사학재단의 사무국장 겸 전문대학 사무처장으로 일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편지는 조목조목 재단의 비리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는 96년 9월부터 97년 3월까지 6개월간 이 학교에서 일하다, 더이상 공범자가 되기 싫어 사표를 썼다고 한다.

앞서 말한 족벌경영과 함께 이 대학은 전국 전문대학 150개교 평가결과 최하위인 D급을 받았지만 학생을 200명 증원하고 수억원의 국고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사무처장이던 이씨는 이사장이 교육부 실무과장에게 전화 걸어 호통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사장은 당시 15대 국회의원이었다. 이씨는 “왜 너나할 것 없이 국회의원에 줄을 대려고 안달을 하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법적으로 대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사장의 남편은 교수실 하나를 사용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출근해 학장주재의 과처장 회의를 지켜보았다. 사무처는 교수들의 교통비 몇천원을 트집잡으면서도 이사장 남편인 설립자의 장례비 수천만원을 학교 돈으로 쓰기도 했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횡령들은 만성화돼 있었다.

가장 큰 부정은 기본재산 유용이다. 설립당시 재단은 교육부에 약정한 기본재산 100억원 중 30여억원을 금융기관에 예치했으나 잔고증명서만 발급받아 교육부에 보고한 뒤에는 재단장부에 입금기장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교직원 월급을 지불할 수 없어 사무처장 개인명의로 5천만원, 직원 두 사람 명의로 1억원을 빌리기도 했고, 학교건물 공사대금이 없어 재단 계열회사에서 자금을 차입한 뒤 기부금으로 바꿔치기도 했다. 부채 계정과 자산 계정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씨는 “기업생활 30년 동안에는 상상도 못할 부정과 비리가 너무나 손쉽게 저질러졌다”며 “돈 벌려고 마음먹으면 기업할 게 아니라 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기업은 최소한 부정에 가담하고 공모할 필요인원이 있지만 사학은 두세명만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공금횡령이나 유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기업의 최고상속세율이 45%인데 비해 사학은 완전 면세이므로 자자손손 세금 한푼 안 내고 대물림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세무서를 통하거나 사외이사, 노조를 통해 감사·감시를 받지만, 사학은 분규가 없다면 교육부 감사도 받지 않는다.

감사도 업고 상속세도 없는 천국

이씨는 “제가 근무한 사학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수많은 학교에서 비슷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며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 걸로 글을 마무리했다. 교수와 직원은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공개채용하는 것을 비롯해 △교수협의회와 직원노조 구성을 제도화할 것 △이사 3분의 1 이상과 감사 1인은 교수협의회가 추천하는 공익이사(감사)로 할 것 △학장은 교수협의회에서 복수 추천해 이사회에서 결정할 것 △형사처벌받은 이사는 영구히 복귀시키지 않을 것 △일정규모 이상의 사학재단에는 외부감사제도를 의무화할 것 등이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일부 사학재단 이해집단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며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은 적어도 내가 겪은 일들에 비춰볼 때 자신의 돈벌이 수단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셈”이라며 “이 일은 결코 일부 사학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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