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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위령비의 딜레마 참전군인들이 지어준 하미마을 “비문 내용 수정 안 하면 준공식 못한다”
퐁니·퐁넛촌으로부터 승용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이곳에서도 1968년2월25일 청룡부대원들에 의해 민간인 135명이 학살됐다고 한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이사장 김문구) 회원 30여명은 지난해 5월2일 이곳을 방문해 현지주민들과 함께 ‘위령비 기공식’을 가진 바 있다. 종전 뒤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더구나 위령비 건립장소는 바로 집단학살이 실제 이뤄진 장소이기도 했다. 월남참전전우복지회는 위령비 건립금액 2만5천달러를 전달했고, 주민들은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공사는 무난하게 진행됐고, 지난해 11월 완공을 할 수 있었다.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진입로를 닦았으며 땅 속에 널려 있는 희생자들의 유골을 수습해 공동무덤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완공된지 6개월이 지나도록 참전군인들과 함께 열기로 했던 준공식은 감감무소식이다. 문제의 발단은 위령비 뒷면에 적힌 다음과 같은 비문내용 때문이었다. “1968년 음력 1월24일 청룡부대가 미친 듯이 몰려와 사람들을 모아놓고 학살했다. 마을은 붉은 피로 덮였고 모래와 뼈는 서로 섞였으며 집은 불탔다. (중략) 그러나 이제 과거 전쟁의 고통은 아물어가고 있다. 우리에게 원한을 불러일으켰던 따이한들은 이곳을 찾아와 사죄를 했다.(중략)땅에 묻힌 영혼들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김문구 이사장은 “애초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펄쩍 뛰었다. 지난해 9월15일 위령비 구성 합의과정에서 ‘학살에 관한 비문’은 설계도면에 없었다는 것이다. “명칭을 ‘화해의 탑’으로 하기로 하고 앞에 태극기와 베트남 국기를 동판으로 나란히 새겨넣기로 했다. 그리고 뒤에는 양쪽 추진위원 이름을 5명씩 넣기로 하고 사인했다.” 그는 “양민학살을 잠재우기 위해 탑을 세웠는데 양민학살이 써 있으면 기분이 좋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베트남쪽의 입장은 달랐다. 디엔증사 인민위원회 주석 응웬 반 하이(44)는 지난 9월15일 협의과정에서 확실하게 합의된 것은 준공식 날짜뿐이었다고 밝혔다. “‘학살’내용을 넣지 않겠다는 약속은 한 적 없다. 태극기와 양쪽 추진위원 명단을 새기는 일은 나중에 불가능하다고 통보해줬다. 주민들이 ‘학살현장에 어떻게 태극기를 새기냐’며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비문내용과 관련해서도 주민들이 완강했다는 게 응웬 반 하이의 설명이다. “위령비를 지어준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비문내용까지 간섭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건 우리의 역사이고 과거이며 진실이다.” 그럼에도 김문구 이사장은 “비문에서 학살내용을 삭제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준공식이 가능하리라는 낙관이다. “서신을 통해 베트남쪽과 계속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비문에 나와 있는 학살내용과 ‘청룡’이름만 빼주면 당장 준공식을 갖겠다는 게 내 입장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미마을 전쟁피해자들과 자매결연 사업을 펼칠 것이다. 위령비가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화려한 물질적 시혜만 앞세울 경우 베트남인들에게 더욱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베트남전 과거사 해결과정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쿠앙남=글·사진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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