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개혁과 변화를 이루지 못하면 철저하게 몰락할 상황
▣ 글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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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관심하다. 1월24일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의 18대 총선 정강정책 연설이 중계되는 텔레비전 앞을 시민들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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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총선’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피 같은 1월.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의 얼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로 수도권 의원들이다. 지역에 몰두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지역에 가봤자 뭐해. 중앙정치가 안 되는데.” 의원회관에서 마주친 한 통합신당의 초선 의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명함을 내밀면 면전에서 버려. 재래시장에 가면 ‘오지 마라’고 등을 떼밀어. 절망이야 절망.”
수도권의 중진 의원과 정치적 고락을 함께해온 한 고참 보좌관의 말은 한술 더 뜬다. “영감이 내민 명함을 팽개치고 발로 짓밟는 사람을 봤어. 영감 얼굴이 허옇게 굳더라고. 이런 광경은 처음 봤어.”
통합신당에선 의원들끼리의 술자리도 다시 늘었다. 불안한 발걸음은 어디론가 가자고 이끄는데, 갈 곳이 없으니 끼리끼리 모인다.
한국 여론조사 전문가의 1세대 그룹에 속하는 디오피니언의 안부근 소장은 최근 한 공개석상에서 “모두가 ‘안락사’ 당하고 있는데, 아직 체온(임기)이 남아 있으니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이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드러냈다.
당선은 언감생심이고, 공천이라도…
통합신당에서는 최근 ‘신계보’가 형성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당내 양대 계보라고 일컬어지던 정동영계와 김근태계는 이미 해체 단계다. 이를 대신해 손학규 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 손학규계’와 일부 최고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계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공천 때문이다. 당선은 사실상 포기했고, ‘공천 탈락’이라는 창피라도 면해보자는 이들도 많다.
<한겨레21>이 여론조사 전문가 8인에게 의뢰한 총선 예측 결과를 보면, 통합신당의 4·9 총선 의석수는 대략 60석 정도로 수렴된다. 이는 사실상 ‘호남 세력’만으로 선거를 치른 지난 13대(1988)의 평화민주당의 70석, 15대(1996)의 새정치국민회의의 79석에도 한참 못미치는 수치다. 그러나 ‘60석’이란 예상치를 들은 통합신당 의원과 당직자들은 상당수가 ‘낙관적인 수치’라는 반응마저 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은 어디까지 무너질 것을 생각하는 것일까. 통합신당의 한 당직자는 대뜸 “30석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분석은 이렇다.
“통합신당과 민주당의 분열이 계속되면서 호남, 특히 광주·전남에서는 무소속이 약진해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1~2곳에서는 한나라당 쪽 출마자가 어부지리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수도권·충청권은 사실상 전멸로 3석 이하를 차지할 것이다. 비례대표는 현재 당 지지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8~9석이 최대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월15일치 여론조사는 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6.2%라는 통합신당의 전국 지지율도 충격적인데, 서울 지지율은 2.1%였다. 민주노동당(3.5%)이나 창조한국당(2.4%)의 서울 지지율보다도 낮았다. 사실상 의미 없는 정치집단이라는 낙인을 받은 셈이다. 광주·전라에서도 통합신당은 18.7%의 지지율로 한나라당(19.9%)에 뒤졌다. 물론 지역별 분석은 샘플 수가 워낙 적어 통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측면은 있다.
그럼에도 이런 철저한 외면은 통합신당으로선 절망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외면의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 쪽 지지자들이 받은 상처는 더 깊었다.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이제 호남은 통합신당에 대해서도 굉장히 비판적인 지역이 되고 있다”며 “호남에서는 한나라당은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그렇다고 통합신당을 지지할 이유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 노선을 주창해온 민주노동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선 참패 직후인 지난해 12월20일부터 올 1월20일까지 모두 772명의 당원이 당을 떠났다. 권영길 대통령 후보가 기록한 3%라는 득표율에 경악한 이들의 이탈이 줄을 이은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심상정 비대위가 구성된 이후 탈당한 인원은 100명이 채 안 된다”며 “이제 안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55년 체제’ 따라가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4·9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에서 4~6석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 ‘평등파’의 핵심인 조승수 전 의원은 “그것도 낙관적인 예측”이라고 잘라 말했다. 조 전 의원은 “현재 당 지지율로 보면 비례대표에서 3~4석을 얻으면 다행”이라며 “당이 근원적이고 근본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영원히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상황에 큰 흔들림이 없다면 ‘서부벨트’(호남과 충청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진영으로 분류된다)와 민주노동당은 합계 70석을 넘지 못한다. 200석 이상의 한나라당과 20석 수준의 자유신당은 강고한 보수 블록을 형성하게 된다.
60~70명을 배출해도, 국회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17개 상임위원회에 배정될 수 있는 의원 2~3명에 불과하다. 법안과 정책이 실질적으로 검토되고 만들어지는 상임위별 소위원회에는 1~2명 수준이다. 법안은 제출할 수 있겠지만(의원 10명이 모이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자력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물론 수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최재천 통합신당 의원은 “야당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국회의 실종”이라며 “국가만능주의가 판치는 70년대 모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박정희 신드롬’으로 상징되는, ‘효율만능주의’의 국가 모델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정부도, 국회도, 서울시도 모두 한나라당의 파란색으로 뒤덮인 나라에서는 일방통행을 제어할 브레이크가 없어진다. 물론, 이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보였던 오만과 독선, 자중지란의 결과다.
조승수 전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부유세’라는 이슈를, 2004년 총선에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민생중심의 아젠더를 제시해 국민들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며 “그러나 여의도에 진출한 뒤에는 민생을 내팽개친 다수파의 맹목적인 ‘종북주의’(당내 자주파들이 북한을 무조건 추종하고 있다는 뜻)로 지지자들의 외면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18대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자유신당이 220석 시대를 열게 되면, ‘2008년 체제’라는 말이 새롭게 만들어질지 모른다. 일본에서는 ‘55년 체제’란 말이 있다. 1955년 보수당이던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쳐 자민당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영구 집권’ 체제를 갖추게 된 것에서 비롯한 말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오랜 기간 존속했던 보수 대 진보,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의 구도가 무너지고, ‘1.5 정당 체제’(one and half party system)라는 새로운 정당 체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소수당의 의석을 모두 합해도 다수당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1.5 대 0.5) 다수당 독점 체제를 뜻한다. 일본의 자민당 체제를 분석한 용어다.
한국에서도 이 상황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개혁 진영에서는 정치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통령 당선은 이제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광역단체장(미국에선 주지사)으로 능력을 검증받는 이들이 대선에 도전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 대상은 서울과 경기도만 해당된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옛 열린우리당은 서울·경기·인천에서는 기초단체장 1명(구리시장)을 제외하고 전패했다.
지지층 83.3%, 개혁과 변화 주문
국회의원에서도 수도권의 통합신당 중진들이 전멸하고 나면, 18대에선 초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18대 이후에는 능력 있는 인재들이 한나라당이 아닌 초미니 야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 것이다.
1월에 이뤄진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30% 이상이다. 이들의 표만 제대로 이끌어낸다면 100석 가까이 달성할 수 있다. 통합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이들을 제대로 묶을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새로운 진보’ ‘협력하는 야당’을 외치고 나선 통합신당의 손학규 체제는 아직 명확한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월15일 여론조사에 그 답은 나와 있다. 통합신당의 향후 진로에 대해 응답자의 69.0%가 ‘개혁과 변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통합신당 지지층에서는 무려 83.8%가 개혁과 변화를 주문했다. 중도와 실용을 요구하는 답변은 22.2%(지지층에선 14.2%)에 그쳤다.
손학규 대표는 그래도 중도와 실용을 강조하는 쪽으로 당을 이끌고 갈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통합신당 내부에는 신당 논의가 늘 끊이지 않고 있다. 당의 전면적인 쇄신을 주장해온 수도권 일부 초선 의원들은 선명 야당을 주창하는 정책정당을 꿈꾼다. 법률가·사업가·교수 등 전문가 그룹이 중심이 된 정당을 새로 띄워서 창조한국당과 손을 잡는 모델이다. ‘산토끼’(잠재적 지지층)는 포기하고, ‘집토끼’(핵심적 지지층)라도 확실히 붙잡는 전략으로 가자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호남신당론’이다. 호남지역 기반이 든든한 정동영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호남이라는 브랜드를 간접적으로 내세워 수도권의 호남표까지 집결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정동영 전 의장의 측근들이 지난 27일 계룡산에 모인 것은 그 시발점이다.

△ 힘들어도 길은 가야 한다. 대통합민주신당 안산을 지역구의 윤석규 예비후보가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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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체제가 개혁과 변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유권자들의 외면과 이런저런 내부의 자중지란으로 끝장날 공산이 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동향과 분석> 1월호에서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현재 신당의 위기는 과도한 개혁이 아니라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심상정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운동권 정당’ ‘친북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얼마나 씻어낼 수 있느냐가 사활을 가르게 될 것이다.
2004년 한나라당에서 배워라
통합신당과 민주노동당에 등을 돌린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들이 청와대와 국회, 행정부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때, 당신들에게 표를 줬던 지지자들은 더 극심한 양극화의 고통으로 내몰렸다. 우리가 깨달은 것은 ‘당신들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사람들이다’는 사실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는 “2004년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에서 박관용, 김윤환, 강삼재 등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신당은 과거 한나라당의 모습에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 내부에 공천 분란으로 보수 진영의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자신의 지역구 유지는 가능할 것이라고 식으로 가다가는 통합신당은 총선에서 대선보다 더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